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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사전

<블레이드 러너> “그 기억들 모두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

by 꿀마요 2021. 12. 6.

명대사 사전: <블레이드 러너> “그 기억들 모두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

&amp;nbsp; 이미지=영화&amp;lt;블레이드&amp;nbsp;러너&amp;gt;&amp;nbsp;ⓒWarner&amp;nbsp;Bros.

로이(룻거 하우어)는 전투용 레플리컨트(복제인간)이다. 모든 레플리컨트에게는 생산 후 4년이 되면 급성 바이러스에 의해 죽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주 전쟁에서 활약하던 로이는 짧은 수명에 불만이 생겼고, 동료들과 함께 지구로 잠입했다. 자신들을 잡으려는 전문 요원 ‘블레이드 러너’들을 피해, 생명 연장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뛰어난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헤리슨 포드)에게 동료를 잃은 로이가 복수에 나선다. 로이에게 손가락이 부러진 테커드는 비가 오는 난간에 매달린다. 로이는 추락 직전의 데커드를 내려다보며 ‘두려움을 안고 사는 기분이 어때? 노예로 산다는 건 그런 기분이야’라고 말한다. 데커드는 결국 손을 놓치는데, 그 순간 로이가 데커드의 손목을 잡아 살려준다. 죽다 살아나 어안이 벙벙한 데커드에게 로이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하지 못할 것들을 봤어.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오리온좌의 어깨 위로 포화를 내뿜는 공격함들,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C 광선의 빛이 탄호이저의 바다에 깔린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것도 봤지.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äuser gate.)

그 기억들 모두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 빗속의 이 눈물처럼.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죽을 시간이다.”

(Time to die.)

&amp;nbsp; 이미지=영화&amp;lt;블레이드&amp;nbsp;러너&amp;gt;&amp;nbsp;ⓒWarner&amp;nbsp;Bros.

영화 초반에 설정한 인간-레플리컨트의 이분법적 사고는 관객이 추격자 데커드에게 쉽게 이입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원칙은 뒤로 갈수록 경계를 흐리며 뒤섞인다. 최신형 레플리컨트의 테스트용 제품인 레이첼은 주입된 ‘기억’에 기대어 스스로 인간이라 생각했으나, 사실을 알고 나서 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데커드 역시 그런 레이첼에게 감정이 흔들리고 신념도 흔들린다. 기억뿐 아니라 기억이 새겨진 사진을 보면서도 자신을 의심하는 이들과 달리, 로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 정체성은 ‘직접 경험한’ 기억을 통해 더욱 특별하고 확고해진다. 그런데도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타이렐의 회사 모토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살다 간 로이의 마지막 저 한마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미지=영화&amp;lt;블레이드&amp;nbsp;러너&amp;gt;&amp;nbsp;ⓒWarner&amp;nbsp;Bros.

로이를 비롯한 레플리컨트들은 대부분 인간이 아님을 인지하지만,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죽기 싫어서’ 명령을 거역하고 지구로 돌아왔다. 살겠다고 선택한 행동 때문에 수명을 단축하고 말았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운명에 맞선 것이다. 로이는 자신의 창조주 혹은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존재(타이렐)로부터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는 울면서 그의 두 눈을 찔러 죽인다. 이 장면은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 분명하다. 오이디푸스는 뒤늦게 자기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을 원망하며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오이디푸스의 이 선택은 자신을 운명의 노리개로 만든 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의지를 대표하는 행동이다.

이미지=영화&amp;lt;블레이드&amp;nbsp;러너&amp;gt;&amp;nbsp;ⓒWarner&amp;nbsp;Bros.

클라이맥스의 로이에게서는 또 다른 신화의 원형이 발견된다. 로이는 그저 ‘인간보다 인간다운’ 존재로 그려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후의 그는 반라의 모습으로 데커드(인간)를 굽어본다. 우주(하늘)에서 온 로이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려 했으며, 그의 동료들을 죽인 죄를 지은 인간이다. 로이는 그 인간을 용서하고 구해준다. 그리고 위 대사처럼 자기가 온 하늘에 대해서, 인간이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전해주고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때의 로이는 ‘손바닥에 못이 박힌’ 상태다.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수많은 SF 영화의 대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사일 것이다. 이오인 콜퍼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무한정 수명이 늘어난 와우배거’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우연한 사고로 불사의 몸이 되었고, 이후 우주 곳곳을 누비며 매우 오래 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많은 것들을 보고 겪어온 캐릭터다. 그가 하는 말 중에 한마디가 로이의 대사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하지만 상대도 듣자마자 이 영화의 대사라는 것을 눈치챌 만큼 유명한 대사였기에, 와우배거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며 멋쩍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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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