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에 만나는 소설가 출신 감독들
문학에서 영화로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오는 11월 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얼핏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제 ‘거위를 노래하다’는 당나라 천재시인이 7살 때 지은 동시에서 따온 구절이라고. 소설가 출신인 장률 감독다운 작명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문학에서 출발해 영화로 넘어온 감독은 의외로 많지 않다.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시인, 소설가 출신 감독들을 만나본다.
이창동
<버닝>으로 8년만에 돌아온 감독 이창동이 소설가 출신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가 당선되며 소설가로 등단한 후, <소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소설집을 발표하며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순문학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던 중 친분이 있던 박광수 감독으로부터 <그 섬에 가고 싶다> 시나리오 집필 제안을 받게 되는데 당시 소설가이던 이창동은 각본을 쓰는 대신 조감독으로 현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그렇게 마흔이 넘은 나이에 영화 현장에 뛰어든 것이 영화 인생의 시작이 되었다. 그 뒤 박광수 감독과 한 번 더 손을 잡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써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하고 1997년,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 데뷔를 하는데 이 작품으로 그는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 국내 영화제를 휩쓰는 한편 로테르담, 밴쿠버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도 주목받는 감독으로 일약 급부상하게 된다.
장률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장률 감독의 열 번째 장편 극영화다. 그의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2001년 영화감독인 친구와 술 마시고 싸우다 ‘영화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내뱉은 데서 출발했다. 홧김에 던진 말을 지키고자 연출한 단편영화 <11세>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게 되었던 것. 그렇게 영화를 시작하기 전 장률 감독은 꼬박 십년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원래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등단해 소설가로 활동하는 한편, 연변대학 중문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가 펜을 꺾은 계기는 바로 천안문 사태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발생 후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가 정부로부터 창작 활동을 금지 당했던 것이다. 장률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 가운데 그가 절필하기 전 집필했던 소설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오래 전 중국에서 출간된 데다 필명으로 발표를 했던 터라 어떤 소설이었는지 알 길이 없고, 감독 자신도 소설과 영화는 별개라며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하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등 강남 3부작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폭력과 욕망에 대해 탐구해온 유하 감독의 출발점은 시였다. 1988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무협지의 스타일을 빌려와 80년대 사회상을 유희적으로 풍자해낸 첫 시집<무림일기>로 주목받은 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통해 당대의 스타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두번째 시집이자 대표작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직접 영화화해 감독으로 데뷔하는 데 성공하지만 안타깝게도 흥행과 비평에서 실패한다. 이후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천일마화> 등을 발표하며 시와 수필 창작에 전념하다 십년이 흐른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다시금 메가폰을 잡게 되는데 이 작품이 흥행을 거두며 본격적인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천명관
<고래>, <고령화 가족>으로 알려진 소설가 천명관이 감독으로 데뷔한다. 소설가 김언수의 장편 <뜨거운 피>를 각색한 느와르로 배우 정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무려 오십 대 중반의 늦은 데뷔다. 그러나 첫 소설인 <고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전에 천명관 작가가 먼저 몸담았던 곳이 영화계였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북경반점>의 각본을 집필하는 등 9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에 드나들며 감독 데뷔를 준비해왔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도 <이웃집 남자>의 각본을 쓰는 등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는데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게 된 것. 감독 데뷔작이 될 <뜨거운 피>는 90년대 초반 부산 변두리 구암이라는 가상의 장소를 배경으로 마흔 살 삼류 건달 희수가 사랑하는 여자 인숙, 그녀의 아들 아미와 함께 하는 새 삶을 꿈꾸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낸 이야기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을 그린 비열하고 비루한 느와르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19년 초 크랭크인 예정이다.
저작권자 ⓒRUN&GU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런앤건 = 글: 정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