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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할리우드 코미디 [낫싱 투 루즈]를 한국에서 만든다면?

by 꿀마요 2021. 11. 28.

전형적인 할리우드 코미디 [낫싱 투 루즈]를 한국에서 만든다면?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만약 내가 제작자가 되어 유명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면, 감독은 누구를 섭외하고 배우는 누구를 캐스팅할까? 공상에는 돈이 안 든다. 원빈이든 전지현이든 마음대로 부를 수 있다. 네 번째 리메이크 제안서는 할리우드의 코믹 버디영화 [낫싱 투 루즈] (Nothing To Lose, 1997)

 


우연히 강도와 피해자로 만난 T(마틴 로렌스)와 닉(팀 로빈스)은 티격태격하다가 서로의 사정을 알고 의기투합한다. 닉이 자기 회사 보안체계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사장실의 금고를 털기로 한 것. 닉은 아내와 사장의 불륜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하고 T는 가족의 분유값을 넉넉히 얻게 될 것이다. 여기에 다른 흑백 콤비 리얼 강도가 끼어들면서 둘은 죽을 고생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우정이 싹튼다. 여러 가지 오해가 풀리고 나서 둘은 훔친 돈을 제자리에 갖다 두고, 가족을 위해 명예와 가난을 택한다.

도식화된 인물 배치부터 우연과 과장을 거듭하는 사건들까지, 매우 전형적인 할리우드  코미디영화다. 캐스팅이 특히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단신의 코미디언 마틴 로렌스야 그렇다 쳐도, 195cm의 팀 로빈스는 [야곱의 사다리]나 [쇼생크 탈출] 같은 진지한 대작들 (특히 거장 로버트 알트만과의 연속된 작업들) 로 인해 아카데믹한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심지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 [데드 맨 워킹]으로 오스카 감독상 후보까지 오른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런 팀 로빈스가 몸을 사리지 않고 만든 중후한 슬랩스틱이 마틴 로렌스 특유의 톤 높은 코미디 연기와 시너지를 내며 95분 동안 유쾌한 웃음을 웃게 하는 데 성공한다.

* 리메이크 포인트
90년대 미국의 코미디지만 2010년대 한국 현실보다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현실엔 지역, 인종, 성별, 학력 등 수많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많은 중국교포를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차별을 견뎌야 하는 곳이 한국이고, 심지어 그들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보는 위험한 편견 또한 만연해있다. 높은 이혼율, 최악의 출산율 등 전통적인 가족 해체의 위기가 눈앞에 닥친 것도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것들을 영화 속에서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각색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 감독 추천

육상효 – [방가방가]를 비롯한 그의 영화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현실을 오기로 극복해 나가는 코미디들이었다. 그와 ‘명배우’ 김인권이 호흡을 맞춰 만드는 영화들은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재곤 - 단편부터 꾸준히 코미디를 만들어오고 있는데, 영화 한 편 안에 웃음을 촘촘한 밀도로 배치하는 실력이 탁월한 듯. 원작보다 풍부한 웃음이 기대된다. 이야기를 더 넓은 공간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임찬익 – [체포왕] 은 대립한 두 캐릭터 간의 티격태격이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두 배우의 개성도 잘 살아있는 한국 버디 영화 중 하나다. 언제 힘을 주고 어디서 힘을 빼야 하는지 잘 알고 조율을 잘했다. 과장이나 개인기 일변도로 흐르지 않는 코미디를 기대하게 하는 감독이다. 

* 배우 추천
 


- 닉 빔 (팀 로빈스) 은 주먹도 제대로 휘두를 줄 모르는 샌님이다. 아내의 외도에 깊이 좌절하고, 넋 나간 연기는 어느 심리 드라마 못지 않았다. 그 부분이 잘 살았기에 그 허우적대는 슬랩스틱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지적이고 교양있는 성공한 화이트칼라 이미지의 남자배우라면 다음과 같다. 

김태우 - 영화에서 그가 주먹질 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샌님’ 이미지를 이렇게 완벽하게 체화하는 주연급 남자배우가 또 있었나? 이렇게 연관을 지어놓고 보니 팀 로빈스가 맡았던 다른 역할들도 다 잘 소화해낼 것 같다.

주상욱 - 성공한 화이트칼라 하면 실장님들이 떠오르고, 실장님 하면 역시 주상욱이지. 완벽하고 당당해 보이는 그가 아내의 외도에 어깨가 축 처지고, 이내 발끈하여 찌질한 복수를 꿈꾸는 거다. 예능에서 자주 보여준 수다스러운 허당 면모를 고려하면 그의 코미디가 더 기대된다.

설경구 - 송강호, 김윤석, 최민식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거물 남자배우 중 설경구만이 이 역할에 어울린다. 아내 때문에 망연자실해 있다가 강도를 당하자 될 대로 되라는 듯 미친 사람처럼 난폭운전을 해댈 때의, 복잡 미묘한 그만의 땡깡 연기, 이미 여러 번 본 것 같지만 또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 T. 폴 (마틴 로렌스) 은 능청스럽고 비아냥에 뛰어난 수다의 황제다. 매사 자신만만하지만 외모는 억울하게 생겼다. 배경과 외모 때문에 재주가 있어도 취직이 안 된다. 쉴 새 없이 사람 속을 긁는 깐족 캐릭터지만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사랑스러운 남편, 친근한 아빠임엔 틀림없다. 억울한 외모와 무대뽀 기질과 다정함을 함께 지닌 남자배우라면 다음과 같다. 

김인권 - 어떤 대사도 맛깔나고 자연스럽게 해내는 명배우. 그보다 자연스럽게 대사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는 남녀 통틀어 김해숙, 나문희 정도밖에 없지 않나 싶다. 억울하게 생긴 외모는 그가 가진 훌륭한 무기이고. 깐족 연기 또한 최고 레벨이다.

오달수 – 외모 때문에 취직이 어려운 남자 설정, 강도질을 해도 동정심이 먼저 일어날 남자 설정인데, 오달수 이상 가는 배우를 찾기가 힘들다. 많은 명품조연이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십 년 넘게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배우. 비슷한 이유로 고창석도 꼽을 수 있겠다.

임창정 – 강도 같은 범죄를 얼마든지 저지를 듯한, 그러나 내 가족에겐 한없이 따뜻한, 알고 보면 소심하고 겁많은, 수다와 깐족으로 듣는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그런 캐릭터를 찾는다면 단연 “한국에 임창정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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