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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사전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의 독백

by 꿀마요 2021. 12. 7.

명대사 사전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의 독백

이미지=영화<조제,&nbsp;호랑이&nbsp;그리고&nbsp;물고기들>&nbsp;ⓒIMJ&nbsp;Entertainment



영화에는 두 명의 조제가 등장한다. 여주인공 쿠미코(이케와키 치즈루)는 스스로를 ‘조제’라고 부른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소설 속 조제는 영화의 조제가 읽는 소설의 한 대목을 통해 등장한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베르나르)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조제는 대답한다. “나도 알아요.”

 



영화에서 읽은 부분은 여기까지지만, 뒤에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중략)...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흔들리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베르나르는 고비마다 왔다 갔다 하는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와 같다. 또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묻던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와도 같다. 이들과 달리 두 명의 조제는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초연하고 여유롭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조제’라는 여자들은 냉정하고 냉소적인, 감정이 메마른 사람 같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들은 사랑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만큼, 지금 느끼는 감정이 진실하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확고한 인식이 있기 때문에 조제는 이별 앞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츠네오를 웃으며 보내줄 수 있고, 남겨진 혼자만의 삶을 질주할 수 있다.

이미지=영화<조제,&nbsp;호랑이&nbsp;그리고&nbsp;물고기들>&nbsp;ⓒIMJ&nbsp;Entertainment


츠네오는 조제를 부모님께 인사시키려고 마음먹었지만, 여행 도중 현실의 무게를 깨닫고 생각을 바꾼다. 조제는 츠네오의 마음이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온천이 있는 료칸 대신 물고기 조명이 있는 러브호텔에서 조제는 츠네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야한 짓’을 허락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제있잖아, 눈 감아봐. 뭐가 보여? なあ、目閉じて。何が見える?

츠네오아무 것도. 그냥 컴컴해. なーんにも、真っ暗。

조제거기가 전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다 밑. 난 거기에서 헤엄쳐 나왔어.

そこが昔うちがおった場所や。

深い深い、海の底。うちはそっから泳いできたんや。

츠네오왜? なんで?

조제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짓을 하려고.

あんたとこの世で一番エッチな事するために。

츠네오그랬구나... 조제는 바다 밑에서 살았구나.

そっか…ジョゼは海底に住んでたのか。

조제 그 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 있을 뿐이지.

そこには光も音もなくて、風も吹かへんし雨も降らへんで、

シーン…と静かやねん。

츠네오 외로웠겠다. 寂しいじゃん。

딱히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야.

別に寂しくはない。初めから何にもないねんもん。

ただ、ゆっくりゆっくり時間が過ぎていくだけや。

난 다시 그 장소로는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언젠가 네가 떠나고 나면, 길 잃은 조개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うちはもう二度とあの場所には戻られへんねやろ。

いつかあんたがおらんようになったら、迷子の貝殻みたいに

独りぼっちで海の底をコロコロコロコロ転がり続ける事になるんやろ。

그렇다고 해도, 그것도 역시 좋아.

でもまあ、それもまた良しや。

조제가 가난한 장애인인 자신의 현실을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엔 현실 도피도, 자기 연민도 없다. 조제는 오사카인 특유의 유머 감각과 현실 인식을 지녔다. ‘네 무기(장애)가 부럽다’며 어리석게 질투하던 카나에(우에노 주리)와는 달리, 자기 처지를 남과 비교하지 않는 당당함을 갖췄다. 또, 학교가 아니라 주워온 책에서 익힌 남다른 지식체계(살모넬라나 루미놀 반응 같은 잡 지식)를 바탕으로 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개성 있는 캐릭터다. 그 세계를 어둡고 고요한 심연으로, 츠네오를 만난 것을 세상으로 헤엄쳐 올라온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조제다운 상상력이다.

이미지=영화<조제,&nbsp;호랑이&nbsp;그리고&nbsp;물고기들>&nbsp;ⓒIMJ&nbsp;Entertainment


이 상상력을 통해 조제는 인어가 되었다. 다만, 현실에는 지느러미를 다리로 변신시키는 마법도, 왕자와의 영원한 사랑도 없다. 자신의 삶이 암울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고독과 무기력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결국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전과 달라지게 마련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담담히 수용한다. 사강의 조제가 아름다운 부잣집 딸로 설정된 점과는 다르지만, 인생은 가차 없다는 진리를 인정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캐릭터를 동일하게 계승하고 있다. 이 대사는 다나베 미유키 원작 소설에는 없고, 시나리오작가 와타나베 아야가 만들어 낸 대사들이다. 내용만 읽어봐도 아름답지만, 이케와키 치즈루(조제 역)의 나른하면서도 확고한 오사카 사투리로 들었을 때 신비한 리듬감과 함께 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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