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몰라도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정보들. 이번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두 번째 2차대전 영화 <퓨리>다.
1. 철저한 리얼리티 추구
과거를 다루는 영화에서 고증을 통한 당시의 완벽한 재현은 역사적 상황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전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세계 대전이나 한국전쟁 등 현대 전쟁이 배경인 영화들은 결코 왜곡되어선 안 될 중대사를 다루기 때문에 특히나 철저한 고증이 필수다. 또 다른 이유는 사진이나 영상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적당히 넘기거나 꾸며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차대전이 끝나가던 무렵을 배경으로 한 영화 <퓨리>는 고증한 내용의 재현을 넘어, 당시의 시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듯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 세계 각지 박물관들의 협조를 얻어 영화에 등장하는 무기나 의상을 모두 당시에 실제로 사용했던 무기와 의상으로 채워 넣었다.
2. 전쟁 다큐멘터리
현대 전쟁의 이미지는 당시의 기록 영상에 의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있다. 따라서 전쟁 영화들은 이 기록 영상들과 닮아 보이려고 애쓴다. 90년대 이후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HBO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이 있다. 이 두 작품 이후 한동안 모든 전쟁영화가 전투 장면을 낮은 앵글의 핸드헬드 촬영으로 묘사했다. 이는 전투 중 총알을 피하고자 고개를 숙인 채 뛰어다녀야 했던 종군 기자들이 담아낸 리얼리티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또 기록용 카메라에 주로 사용되던 16밀리 필름의 조악함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일부러 거칠게 만드는 블리치 바이패스같은 후반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퓨리>의 화면 질감이나 카메라 움직임이 거칠게 느껴진다면, 그 의도는 전쟁영화의 정공법을 따르려는 것이다.
3. 리얼리티 추구의 극치
이 영화는 진짜 무기와 의상뿐 아니라 더 대단한 것을 박물관에서 빌려온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는 전차 <퓨리>에 탑승한 전차병 5명이고, 이 영화는 그들이 탑승한 <퓨리>라는 전차의 활약에 관한 영화다. 따라서 감독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전차가 가짜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작진은 2차대전 당시 실제로 활약했던 전차들을 영화에 이용했다. 퓨리는 미국의 M4 셔먼이라는 전차다. 셔먼은 2차대전 당시부터 많은 대수가 생산되었고, 전후에도 우리나라나 이스라엘, 남미 등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활약했기 때문에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반면 셔먼의 라이벌 혹은 숙적으로 활약했던 독일군의 티거 탱크는 생산 대수부터 아주 적었다. 다행히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측이 포획한 한 대가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이라는 곳에 있었고, 최근에 실제 기동이 가능하도록 수리도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결국 영화에는 다섯 대의 실제 셔먼 전차와 한 대의 티거 전차가 등장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등장하는 티거 전차는 실물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든 레플리카다. 그때는 아무리 스필버그라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매니아들은 이런 데서 만족감을 주는 영화를 더 선호한다.
4. M4 셔먼
‘퓨리’라는 이름을 붙인 탱크의 정식 모델명은 M4A3E8 이다. 뒤의 E8이라는 번호 때문에 ‘이지(Easy)에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셔먼이라는 별칭은 영국군이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명장 윌리엄 테쿰세 셔먼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여준 것이다. 셔먼은 중(中)전차에 해당하며, 향상된 현가장치 등을 바탕으로 민첩한 기동성을 보이면서도 중(重)전차에도 어느 정도 대적할 만한 화력(75mm 전차포)을 갖추고 있어, 미군 참전 초반 아프리카 전선에서 미군 기갑부대의 주축 장비로 크게 활약했다. 하지만 독일군은 곧 이보다 훨씬 강한 화력과 방어력을 갖춘 티거 전차를 만들어 냈고, 서부전선에서 셔먼은 오랫동안 티거만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티거에 의해 너무 쉽게 파괴되고 불타오른다고 하여 론슨 라이터라고 놀림 받기도 했다. (론슨 라이터의 광고 문구는 “한 번에 불이 붙는다.”였다.)
한 대의 티거와 대적하기 위해 보통 네다섯 대의 셔먼이 필요했다. 먼 거리에서부터 서 너대의 셔먼이 하나씩 파괴되며 시간을 끄는 동안 살아남은 한 대가 접근하고 뒤로 돌아가 비교적 장갑이 약한 측면이나 후면을 노려서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셔먼을 약한 전차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오히려 셔먼이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티거 전차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기본적인 체급 차이가 결정적이긴 했지만, 티거가 대단히 뛰어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고성능 전차였던 이유도 크다.
5. 티거
독일의 우수한 과학 기술이 만들어낸 티거 전차는 88mm 전차포를 장착하고 80mm에서 최대 110mm에 이르는 두꺼운 장갑으로 막힌, 무게가 56톤에 달하는 중(重)전차다. 셔먼의 75mm 포탄 정도는 웬만한 거리에서 튕겨내는 방어력을 갖췄으면서, 포속까지 빠른 88mm 포는 심지어 3천 미터 떨어진 셔먼의 장갑을 관통할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 정도 덩치에도 소련의 35톤급 중전차에 밀리지 않는 기동력까지 보유해 연합군 측은 좀처럼 대적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는 502 전차대대가 미군 1기갑사단을 괴멸시킨 적이 있고, 소련에서 벌어진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이라는 전투에서는 단 두 대의 티거가 소련군 탱크 34대를 파괴하는 전적을 세우기도 했다. 소련이 2차대전 중 잃었던 2만여 대의 기갑 장비 가운데 5천여 대를 티거가 파괴했다고 한다.
놀라운 무기이지만 워낙 고가의 전차인데다 전장 한복판에 있던 독일이 가동할 수 있는 공장 수도 제한되어 있어 만들 수 있는 수가 너무 적었다. 반면 미국은 본토가 대서양 건너에 떨어져 있었고, 또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산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미군은 셔먼 전차를 5만 대나 생산해 내었고 끊임없이 유럽에 투입했다. 아무리 티거 전차가 2차대전의 상징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명품 무기라고 해도 이런 물량공세에 의한 열세까지 극복할 수는 없었다.
6. 전차 대원의 구성
한 대의 전차에는 다섯 명의 대원이 탑승한다. 브래드 피트는 전차장 일명 ‘워대디’ 돈 콜리어 중사역을 맡았다. 전차장은 전차의 전체적인 운행과 공격 방식을 지휘한다. 포를 운용하고 발사하는 포수는 샤이어 라보프가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바이블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성경에 따르는 정의로운 인물인데, 적에게는 냉정하고 가혹하다. 포에 포탄을 장착하는 장전병 쿤 애스는 늘 두려움 속에 사는 남자인데, 존 번탈이 연기했다. 라틴계 미군이자 전차 조종수인 고르도 역할은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또 다른 걸작 <엔드 오브 왓치>에 나왔던 마이클 페나가 연기했다. 끝으로, 원래 기관총 사수의 전사로 긴급 충원된 신병 노먼 역에는 <퍼시 잭슨> 시리즈와 <노아>의 로건 레먼이 출연한다. 그는 생존을 위해 전쟁의 부조리함에 서서히 물드는 인물이다. 평범한 삶에서였다면 결코 감당하기 힘든 이런 스트레스를 워대디의 지휘력과 퓨리 팀원들과의 전우애 덕분에 극복하면서 성숙해져 간다.
7. 진짜 사나이 브래드 피트
63년생인 브래드 피트는 믿기지 않지만 벌써 50대다. 니콜라스 케이지나 한석규보다도 형이다. 그 정도면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군 하사관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이다. 워대디는 아마도 1차대전에도 참전했던 베테랑일 것으로 보인다. 백전노장 전차장을 노련하게 연기하기 위해 신병 훈련소에서 전차 전투에 관한 전문 교육을 받았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은 배우들 전원을 한 달간 신병 훈련소에 보내 군사 훈련을 받게 했는데, 50대인 브래드 피트는 그 젊은 배우들과 똑같은 훈련을 빠짐없이 모두 소화했다고 한다.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고, 권총은 당시 최전선의 미군에게는 잘 지급되지 않던 스미스&웨슨 M1917을 소지하고 있다. 또 개인 화기는 독일군에게서 빼앗은 명품 돌격소총인 슈투름게베어(StG) 44를 사용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에서도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군 역할을 연기한 적이 있고, 최근 아내인 안젤리나 졸리는 12월에 개봉할 또 다른 2차대전 영화 <언브로큰>을 연출했다.
8. 그 밖의 출연진
샤이어 라보프는 이 역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자기 이빨도 뽑고, 촬영 기간에는 샤워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심으로 몰두한 나머지 실제 기독교도가 되었다고 한다. 존 번탈은 이 영화 이전에도 HBO 드라마 <퍼시픽>을 통해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군 해병을 연기한 적이 있다. 마일스 병장으로 나오는 스콧 이스트우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로 <아버지의 깃발>에서도 2차대전 미군 병사로 출연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루시어스 말포이를 연기했던 제이슨 아이작은 윈드토커에서 2차대전 미군 장교 역으로 출연했었고, 닐 조던 감독이 리메이크한 <애수>에서도 2차대전 당시의 인물을 연기했다. 다만 그때는 신부님 역할이었다.
9. 전차가 나오는 다른 작품
65년 작 <발지 대전투>는 후반부의 대규모 전차전 장면으로 유명하다. 2차대전 말 상당히 중요했던 발지 전투를 다루지만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게 윤색된 면이 있다. 영화에 셔먼 전차로 나온 것은 실제로는 M-24 채피 경전차이고, 티거2라고 나온 것은 M-47 패튼 전차였다. CG로 전차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대에 매우 실감 나는 전차전 장면 연출을 구현해냈다. <패튼 대전차 군단>은 2차대전의 영웅이자 포악하고 호전적인 태도로 탈도 많았던 조지 S. 패튼 장군에 관한 영화로, 조지 C. 스캇의 열연이 돋보인 걸작이다. 패튼 장군은 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 등지에서 맹활약했던 미군 제2기갑사단의 창설멤버이자 2대 사단장이었으며, 셔먼을 주축 전력으로 삼고 승승장구하게 한 장본인이다. 퓨리 부대원들의 소속부대가 2기갑사단이며, 45년 연합군이 마지막으로 베를린으로 진격할 때 가장 먼저 베를린에 입성한 미군 부대이다. <켈리의 영웅들>(1970)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도날드 서덜랜드가 나오는 2차대전 배경의 코믹 모험극이다. 러시아의 T-34탱크를 개조해서 티거 탱크로 등장시켰다. 2007년 핀란드에서 만든 <탈리 이한탈라 1944>는 2차대전 당시 소련의 침략을 당한 핀란드가 독일의 지원을 받아 고전 끝에 국경을 지켜냈던 탈리-이한탈라 전투에 관한 영화다. 실제 전쟁에 쓰였던 T-34 탱크나 독일의 FW190 등이 등장한다. 또 러시아의 2012년 작 <화이트 티거>는 자신을 죽일 뻔 했던 독일의 한 티거 탱크에 집착하는 소련 전차부대원의 이야기로 영화를 위해 티거 전차의 레플리카를 제작했다고 한다. <걸즈 앤 판처>는 미소녀 여고생들이 각종 전차를 타고 다니는 애니메이션인데 엽기적인 설정이긴 해도 실제 전차들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놀랍도록 정교하다.
10.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그는 10대 때 가출해서 LA의 우범지대에서 지낸 적이 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트레이닝 데이>의 각본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이 작품 전에는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의 <U-571>의 각본을 감수했었는데, 이는 감독이 18세에 입대해서 잠수함 승조원으로 근무했을 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독특하고 터프한 경력을 가진 감독답게 그는 <스트리트 킹>, <다크 블루> 등 군과 경찰에 관한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 왔다. 감독 데뷔작인 <하쉬 타임>의 주인공 크리스찬 베일은 아예 군인 출신의 경찰 지망생이다. 특히 2012년 작품인 <엔드 오브 왓치>는 셀프 카메라로 자신들의 삶을 촬영하던 두 경찰이 주인공인 모큐멘터리다.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는 액션 연출이나 평범한 경찰관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한 고찰 등이 뛰어나게 묘사되어 2012년 최고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히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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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