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가정부> 생각만큼 수상하지 않은 그녀 최지우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지우히메(최지우)가 컴백작으로 고른 것이 일본 원작의 리메이크 드라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놓고 역수출을 노린 캐스팅이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던 것은 사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마지막회 시청률 40%를 찍었으며 역대 일본드라마 시청률 순위 3위에 빛나는 <가정부 미타>라고 하니 의심은 확신에 가까웠다. 뭐 이런 식이라면 안전하게 흥행보증이 되지 않겠어? 그러나 2회까지 방영된 시점에서 한 마디로 요약되는 감상소감은 이렇다. “너무 비슷한데”.
가정부 박복녀(최지우)는 끔찍하고 아픈 과거를 비밀로 간직한 채 모든 감정 표현을 거세시키고 로보트처럼 행동한다. 오직 자신이 맡은 일만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 수행하는데, ‘명령하면 -> 실행한다’ 이렇게 인풋과 아웃풋의 아주 간단한 로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동전만 넣으면 작동하는 기계 같다.
아무리 봐도 수상한 여자 주인공 설정은 이제까지의 한국 드라마 역사상 보기 드문 캐릭터이긴 한데, 근데 어쩌지. 마침 최근에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몰아서 두 번이나 봤다. <직장의 신> 미스김이 그러했고 <여왕의 교실> 마여진도 그랬었다. 보통의 인간들이 가진 능력 이상의 실력을 다방면으로 발휘하는 미스김도 봤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얼음처럼 대하던 마여진도 봤다. 그리고 그 둘 다 비밀스러운 과거 설정과 함께 무표정하고 싸늘한 얼굴과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 과장된 설정의 감정 없는 말투를 구사했었고. 대체 일본사람들 사이에서 로봇 같은 여자가 무슨 이유로 대유행인가 싶지만, 이 작품들 모두 일본 원작을 두고 있다는 점까지 똑같다.
이러한 설정만으로도 이미 시작하기도 전부터 식상함을 줄 위험이 다분한 <수상한 가정부>는 불행히도 내용을 까보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능력자 미스김이 직장 내에서 고군분투 하던 모습은 고대로 능력자 박복녀(최지우)가 막장 가족 내에서 고군분투 하는 모습에 겹쳐 보이고, 아이들에게 따스함이라곤 한줌도 없이 대하는 싸늘한 마여진의 모습 또한 4남매를 대하는 박복녀(최지우)의 태도와 닮아 있다.
인물 설정과 세세한 에피소드까지 고스란히 가져온 이 드라마가 살아가기 위해선 뻔하지만 연기력이 정답일 텐데, 발음 문제에 항상 민감했던 여배우의 어색한 끊어 읽기 호흡과 무미건조한 말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화면에 대고 속삭이게 된다. 복녀님(최지우) 차라리 웃어요…
이 드라마가 기댈 곳은 극 흐름상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하는 4남매 뿐인데, 이 아이들의 연기력도 어딘가 삐그덕 삐그덕 하다. 문제아 두결과 모범생 세결 형제가 주고 받는 대사의 합은 보고 있는 우리집 안방의 공기까지 어색하게 만들 만큼 위태위태 하고, 막내 은결이는 연기 보다는 귀여운 얼굴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그나마 고군분투 하는 것이 첫째 딸 한결 정도이니, 빵빵한 지원군이 없는 상황 속에서 미스김이나 마여진에 비해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내야 하는 박복녀 캐릭터를 소화하기엔 안타깝게도 지우히메께선 너무도 청초하고 러블리한 세월만을 살아오신 건 아닌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이쯤에서 생각하게 된다. 드라마 리메이크란 뭘까?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의 설정을 고대로 가져와서 우리나라 배우들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높은지를 확인하는 것? 그러나 장면과 세트까지 고대로 베끼는 수준이라면 과연 매주 이틀 저녁을 할애하고픈 마음이 들까? 우리는 이미 <하얀 거탑>이나 <닥터진>, <직장의 신> 같은 꽤 잘 만든 일본 원작의 드라마를 경험해 본 바, 관건은 한국 정서에 거슬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황 설정과 배우들의 연기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쨌든 <수상한 가정부>는 가사도우미에게 반말로 손찌검을 하는 십대 청소년이나 유치원생의 자살을 돕는(?) 가사도우미의 설정 등을 기괴한 코미디 정도로 받아들여야 속 편한 감상이 가능할 것이다.
이미지 = SBS
글쓴이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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