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은 숙녀나 소년에게도 오지만, 신사에게도 온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시절 미국 영화에서 봐온 그야말로 ‘멋있는’ 신사들의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있다. 물론 단순히 점잖떠는 신사가 아닌, 여성에게 배려심 깊고, 운전은 한손으로 하며, 술도 단숨에 마시고, 담배연기에 더 이상 눈이 맵지 않은 그런 신사들 말이다.
신사의 아이템은 여러가지가 있다. 열면 종소리 나는 라이터, 발등부분이 촘촘히 위빙된 구두, 알 카포네가 입을법 한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앞 주머니에 가지런히 꽂힌 행커치프 등등. 그러나 완연한 봄의 한 가운데 진짜 신사가 되고자 한다면, 주말의 명화 속 클라크 게이블처럼 신사 중의 신사가 되고 싶다면, 추천하는 핫 아이템이 있다. 바로 크라바트이다.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출연했던, 늠름하고 잘생긴 캐리 그랜트가 평소에 즐기던 아이템도 크라바트다. 벽에 팔을 기대고 비스듬이 서서 여성에게 말을 건네는 그의 모습은 ‘멋’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크면 저렇게 멋있는 어른이 될까?’ 라고 무럭무럭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 계기는 바로 그의 크라바트 때문이었다. 그는 셔츠 안에 크라바트를 메곤 했는데, 넥타이도 아닌 것이 스카프도 아닌 그것의 존재를 알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크라바트를 찾아보기 쉬운 영화는 17~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다. ‘삼총사’가 리메이크 될 때마다 볼 수 있고, 영화 <향수>같은 중세나 근대 배경의 영화에선 어김없이 크라바트를 볼 수 있다.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도 크라바트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자칼의 날>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폭스도 멋진 크라바트를 착용하고 나온다 (이러한 영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일본 만화 <고르고 13>에도 종종 크라바트를 한 킬러가 등장하곤 했다). 최근에는 <세븐 사이코패스>에서 크리스토퍼 월켄이 멋진 크라바트를 메고 나와서, 중후하고 음산한 중년의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원래 크라바트는 이름 그 자체가 프랑스어로 넥타이라는 뜻이다. 본래 목을 감싸는 보온의 용도로 사용되었던 크라바트가 간소화되어 타이 형태로 정착된 것이 현재의 넥타이다. 이것을 잘 알려주는 그림을 보고 싶으면, 당장 인터넷 백과사전이나 검색엔진에 헤겔이니 칸트니 하는17~18세기 학자들의 그림을 검색해 보라. 그들이 목에 메고 있는 천이 바로 크라바트다. 크라바트는 말했다시피 넥타이의 용도로 사용되었기에 원래는 셔츠 바깥에 착용하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그 자리를 넥타이에 내 준 관계로 셔츠 안에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나 실크로 만든 크라바트는 고급스럽고, 남자를 안정감있게 보이게 한다.
이제 모든 패션아이템들은 남녀의 구분없이, 노소의 구분없이, 심지어는 때와 장소에 관련 없이 교차되고 그 의미가 마음껏 달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직은 굳건히 남자의 아이템으로 남아 있는 몇 가지가 있다면 크라바트가 아닐까. 스키니나 롤업 팬츠가 범접할 수 없는 그곳에, 신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