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속 인어 '불온한 아름다움'

by 꿀마요 2021. 11. 26.

[캐릭터 사전] 불온한 아름다움, 인어. 

인류에게 바다는 다스릴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불가해한 공간이었다. 다만 이렇게 거대한 바다에도 인간과 똑같은 무엇인가가 자기들만의 위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상상할 따름이었다. 지금까지 소개된 대부분 캐릭터가 그렇듯, 동서고금에 인어에 대한 이야기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어는 하체가 물고기 모양인 아름다운 여인의 형태로, 주로 멀메이드(Mermaid)라고 불린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리는 요망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인어 관련한 영화에는 유독 좋은 노래가 많다.)이 자체로는 ‘바다의 여인’이란 뜻이다. 드물게 남자 인어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머만(Merman)이라고 불린다. 이런 ‘반인반어’ 형태를 찾아보면, 그리스의 정령 네레이스, 바빌로니아의 오안네스, 시리아의 데르케토 등 정말 다양한 이름과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정약전이 편찬한 <자산어보>에 인어로 추정되는 다양한 물고기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는 일찌감치 영화의 소재로 쓰였다. 1914년 무성영화 <넵툰의 딸> (Neptune's Daughter)에서 인어를 만나볼 수 있다. 흔히 수중발레 선수들에게 ‘인어’ 같다는 표현을 하는데, 최초의 수중발레 선수로 기록되어 있는 아네트 켈러먼이 육지의 왕과 사랑에 빠지는 인어 역을 맡았다. 

 

    
글리니스 존스도 유명한 인어였다. 인어가 육지 남자를 유혹한다는 기본적인 플롯을 현대적인 코미디로 해석한 <미란다>(1948)와 후속작 <매드 어바웃 맨>(1954)에서 그녀는 매력적인 인어 미란다 역을 맡는다. <넵툰의 딸>의 인어가 흑발인 데 비해, <미란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금발미녀 인어의 전형을 보여줬다. 인어 이야기는 영화로 옮겨지면서 주로 유부남을 유혹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미란다>가 전도유망한 유부남 의사의 가정을 파탄 냈다면, 1948년 제작된 <인어의 노래>에서의 인어는 불혹을 훌쩍 넘긴 장년의 가장을 유혹한다. 
  


본격적인 수중촬영 장면이 가능해지면서 제대로 인어를 보여주기 시작한 작품은 <티뷰론의 인어들>(1962)이다. ‘플레이보이’의 스타 모델이던 다이안 웨버가 인어 역을 맡았으나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 나중에 감독이 다이안 웨버의 ‘스폐셜’한 장면들을 덧붙여 <아쿠아 섹스>라는 야릇한 제목의 디렉터스 에디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인어영화는 1984년 대릴 한나 주연의 <스플래시>다. 어린 시절의 인연을 찾아 뉴욕으로 흘러온 인어는 인간처럼 변신한다. 인간 세상에 낯설어하는 그녀의 실수담은 미녀의 백치미로 곧잘 포장되었다. 1994년엔 홍콩에서 금성무와 종려제가 <스플래시>를 리메이크한 <인어전설>이 발표되었다. 인어는 이렇게 주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소비되곤 했는데, <아쿠아마린>(2006)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하이틴 코미디물이었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자리 잡은 인어 캐릭터와 좀 다른 영화들도 있다. <인어의 유혹>은 돈에 눈이 먼 서커스단 일행이 인어를 잡아서 배에 싣고 도시로 돌아가던 중, 포악한 괴수로 변신한 인어에게 몰살당한다는 내용이다. 설정은 <킹콩>과 <에일리언>에서 마구 섞어 놓았다. <인어자매 이야기>는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어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온 인어 이야기였다. 여기에서 인어는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지고지순한 여인상이 아니고, 인간에게 당당하게 복수하고 인간 세상의 여러 재미도 만끽하는 주체적인 현대여성으로 그려진다. 일본 애니메이션 <인어의 숲>은 불사를 위해 인어의 고기를 먹으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철학적으로 스펙트럼이 넓은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가장 입체적인 인어 캐릭터는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에 나오는 그녀들일 것이다. 젬마 워드, 토니 버스커, 베흐제 프리스베등 당대 제일 잘 나가는 모델 겸 배우들이 잔뜩 출연했다. 특히, 얄궂게도 선교사와 사랑에 빠지는 베흐제 프리스베의 매력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의 인어들은 아름다우면서 무섭고, 보호해주고 싶으면서 도망치고 싶다. 이제야 보게 되었지만, 우리가 신화 속에서 접했던 인어와 가장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인어는 인간의 막연한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영화 속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주로 소비되었다. 촬영 기술이 발달 되면서 신화 속에서 묘사된 캐릭터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다. 물론 멋없게도, 인어라는 것은 술 좋아하는 옛날 바다 사나이들이 긴 항해에 지쳐, 바다표범이나 듀공을 잘못 본 것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글쓴이 임정원
저작권자 ⓒRUN&GU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