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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익스프레스

정신나간 미국식 코미디의 위대한 시작, <켄터키 후라이드 무비>

by 꿀마요 2023. 5. 3.

 

아직 AFKN이 공중파 티브이에 잡히던 어린시절, 미국의 프로그램들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침에 켠 티브이에서 나오던 <세서미 스트리트>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한국보다 다채로운 구성이 재미있었다. 알아듣지 못 해도, 대충의 이야기와 교훈이 전달되었다. 그러나 같은 채널에 나오는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에피소드 중에는 <서세미 스트리트>보다 대사가 적은 것이 많았고, 대부분이 엎어지고 넘어지는 큰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어 얼핏 더 이해하기 쉬울것 같았지만, 방청객들이 왜 웃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언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한국사람처럼 웃기기 힘든 인종도 없다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웃을 준비를 하고 코미디를 본다고. 한국의 관객들은 ‘어디 한번 웃겨보시지.’하며, 팔짱부터 낀다고. 어느정도 맞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미국식 코미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서로의 얼굴에 파이를 던지는 것이 그렇게 나뒹굴 일인가.

 

그런식의 ‘과잉’이 못 내 불편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켄터키 후라이드 무비>를 보게 되었는데, 이건 뭐 ‘과잉’ 정도가 아니라, 저열한 유머의 상상력을 우주까지 날리는 수준이었다. 같이 본 친구와 함께 ‘피식’거리다가 점점 나 뒹굴게 되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친구도 웃고, 그런 친구를 보면서 나도 웃는 웃음의 난반사가 일어났다. 결국은 파티에 온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에 파이를 던지고야 마는 과잉의 난장판이랄까. 미국식 정신나간 코미디의 극한, 바로 <켄터키 후라이드 무비>다.

 

정유회사에서 청소년들의 여드름을 모아 기름을 생산하고 있다
오감체험 영화관 . 관객 뒤에 직원이 서서 영화 내용에 따라 향수도 뿌려주고 얼굴도 문질러주고 딥키스도 해준다 . 물론 , 직원은 남자다

 

영화는 SNL같은 스케치 코메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화판 SNL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영화 내용의 전부가 패러디 광고, 가짜 뉴스, 고전영화 패러디, 다큐멘터리 패러디 등으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60~70년대 B급 영화와 섹스플로테이션 필름을 그야말로 진하게 패러디했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가짜 영화 예고편 &lsquo; 위험에 빠진 카톨릭 여고생들 &rsquo;. 상당한 위험에 빠져있는것 같아, 얼른 구해주고 싶다

 

 

의료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 두통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 . 미성년자나 철없는 어른들은 따라하지 말자

 

다루는 방법이 좀 서툴러서 그렇지 미국 내의 인종문제도 다루고 있다. 영화 내에 등장하는 코너에서는, 마치 베어그릴스같이 야생의 위험을 찾아나설 것 처럼 이야기하는 쇼 호스트가 안전장비를 모두 갖추고, 사지에 들어가는 전사처럼 잔뜩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그가 찾아 간 곳은 흑인동네였고, 동네 골목에서 노는 흑인들 한 가운데에서 “NIGGERS!!!”(깜둥이들)라고 외치고 도망가다 잡혀서 쳐맞는게 고작이다.

 

그럴싸한 로고와 그럴싸한 모습에 비해 그가 하는짓

 

한국인도 나온다. 한국계 미국인 영화배우 에반 C. 킴과 한국 합기도의 전설 한봉수 사범이 등장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Fistful of dollars를 패러디)은 이소룡의 용쟁호투를 대놓고 패러디한다. 이 코너는 홍콩 무술영화를 패러디 했는데 어째서인지 주연배우 두명이 다 한국인이다. 감독은 여느 중국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뭔가 심각한 말은 영어로 안 하고 자기들끼리 중국어로 하는 장면을 찍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봉수 사범이 실제로 한 한국어 대사는 아래와 같다.

 

“한국말로 무조건 말하라니 한심하군. 우리 한국사람들이 들으면 정신 나갔다고 말할 게 아니야. 아무튼 하라니 할 수 밖엔. 결과는 어떻든 간에 말이야. 이런, 미국에서 영화생활 하려니 한심하군 그래. 한심한 처지가 한두번이 아니야.” 심지어 한봉수 사범은 나중에 자신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을 몽땅 돌격시킬 때 외친 명령은 “김치, 짜장면, 짬뽕, 챠우멘”이었다.

 

영화는 홍콩에서 시작된다 . 홍콩이라 쓰여있으니 홍콩인거다

 

중국인인척 하고 있는 에반 C. 킴과 고 한봉수 사범
영화의 시작점이자 종결자 , 뉴스앵커 .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영화는 이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다가 영화 초반에 나왔던 뉴스의 앵커가 나와서 “저는 이 영화 내내 바지를 입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깔끔하게 끝난다. 이 영화, 기막히다. 대체 누가만들었나 궁금해서 크레딧을 봤더니 감독은 <블루스 브라더스>의 감독이었던 존 랜디스였다. 게다가 각본은을 보고 더 놀란것이 80년대 미국 코미디를 완성 시켰던 데이빗 주커, 짐 에이브러함스, 제리 주커의 이름이 한줄로 써 있었다. 이들은 훗날 <에어플레인>씨리즈, <총알탄 사나이>씨리즈, <무서운 영화>씨리즈 <못 말리는 람보> 씨리즈등을 따로 혹은 같이 연출했었다. 개그 천재들의 여명기는 이렇게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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