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혹은 치킨이나 짜장면 등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매콤달달하고 쫀득한 떡볶이를 꼽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올해 초 모 음식평론가가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주장했을 때 논란이 뜨겁게 일었던 이유도 그만큼 떡볶이가 우리에게 존재감이 큰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차려 먹는 한끼 식사가 아닌 간식이고 특히나 학창시절 추억을 상기시키는 대표적인 메뉴로 떡볶이가 갖는 이런 특별한 정서는 한국영화에서 어떻게 활용되어 왔을까?
너의 결혼식
영화 <너의 결혼식>은 전학생 환승희에게 한 눈에 반한 주인공 황우연의 십년에 걸친 첫사랑 연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은 떡볶이 매니아인 승희를 따라 매번 수업을 땡땡이 치고 떡볶이집으로 향한다. 여기서 우연은 승희와 가까워지고 또 택기의 괴롭힘을 피한다는 얄팍한(?) 구실을 내세워서이긴 하지만 승희로부터 ‘사귀자’는 허락까지 얻어낸다.
이후 뜻밖의 사건으로 헤어지게 된 우연이 승희와 재회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 역시 떡볶이다. 승희가 다니는 대학에 무작정 입학은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방법을 골몰하던 우연이 떠올린 아이디어가 바로 학교 주변 떡볶이집을 뒤지는 것. 우연의 생각은 적중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된다. 이 장면은 실제 떡볶이집에서 촬영했는데 서울 청량초등학교 근처 무우떡볶이라는 곳이라고. 전부터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등 유명했는데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더욱 인기라고 한다.
말죽거리 잔혹사
<말죽거리 잔혹사>의 떡볶이집 씬은 한국영화에서 가장 여러 번 패러디된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학교 앞 떡볶이집의 섹시한 여주인이 주인공인 남고생을 유혹한다는 과감한 설정과 주인공 현수 역을 맡은 권상우의 풋풋한 매력, 그리고 떡볶이집 주인을 연기한 김부선의 농염함이 어우러져 개봉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극 중 고등학교 이름인 정문고를 유하 감독이 졸업한 상문고에서 따 왔을 정도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화한 영화다. 배우 김부선이 이 영화에 캐스팅된 후 극 중 떡볶이집 주인의 행동이 너무 비정상이라고 느껴져 고민하자 유하 감독이 이 에피소드 또한 자신의 실제 경험담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는 후문이 있다. ‘못잊어 떡볶이’라는 떡볶이집 역시 상문고등학교 옆에 있던 메트로분식이라는 곳을 모델로 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폐점해 찾아가볼 수는 없다고.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서로를 절대 믿어서는 안되는 범죄자와 경찰이 상대를 믿고 감정에 흔들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파국을 그린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극중에서 세비로 차림의 깡패 두 사람, 재호와 병갑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만난 장소가 바로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이 우글거리는 떡볶이집이다. 변성현 감독이 조직 내부 쿠데타를 모의하는 두 사람이 접선할 법한, 듣는 귀가 없는 안전한 장소로 어디가 좋을까 고심하다 고른 장소라고. 원래는 31개맛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를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섭외가 어려워 유사한 느낌을 주는 떡볶이집으로 결정한 것.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은 신림동 녹두거리 미림여고 앞에 위치한 미림분식이다. ‘불한당원’이라 자처하는 매니아 관객들이 성지순례 하듯 이 곳을 찾는다는데 영화에서 재호와 병갑이 앉았던 자리는 8번 테이블이라고 하니 방문할 생각이 있는 이들은 참고해도 좋겠다.
리틀 포레스트
한겨울 텃밭에서 뽑아낸 배추로 만든 된장국, 눈 치울 때 그만인 김치 수제비, 가벼운 나들이갈 때 준비해가면 좋은 쌈밥 도시락, 엄마만의 비법 레시피로 만든 감자빵 등 차례차례 등장하는 음식이 곧 스토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리틀 포레스트> 극중에서 주인공 혜원이나 엄마가 아닌 다른 인물이 요리하는 장면이 딱 한 번 나오는데 바로 친구 은숙이 떡볶이를 만들 때다. 요리에 능숙하지 못한 은숙도 나름대로 자신 있게 만들 수 있고 또 어릴 때부터 함께 부대끼며 자라온 소꿉친구 혜원, 은숙, 재하의 우정을 잘 보여주는 메뉴로 떡볶이 이상의 선택지가 있었을까? 결국 너무 맵게 만들어져 눈물을 쏟아내며 먹는 바람에 재하로부터 “둘이 싸웠어?”하는 오해를 불러오긴 했지만 말이다. 잠시 쉬어 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요리를 못해도, 재료가 좀 모자라도 괜찮으니 마음 내킬 때 떡볶이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영화처럼 소꿉친구를 불러다 나누어 먹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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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앤건 = 글: 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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