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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사전

<유주얼 서스펙트> “뉴욕은 비가 올 거라더군.”

by 꿀마요 2021. 12. 6.

명대사 사전 : <유주얼 서스펙트> “뉴욕은 비가 올 거라더군.”



카이저 소제는 세계 각지의 어지간한 큰 범죄에 모두 관련된 거물이다. 범죄자들 사이에 소문이 무성하지만 아무도 그의 실체를 모른다. 지금까지 그를 알게 된 사람은 모두 죽었다는 뜻이다. 적이나 배신자가 생기면 그 가족까지 몰살시킨다고 하는 데다가, 적에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 자기 손으로 처자식을 죽였다는 전설 때문에 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게 된다. 다섯 전과자는 그런 악마 같은 인물에게 찍힌 것이다. 생각 없이 훔쳤던 물건이 카이저 소제의 소유물이었을 줄이야. 애초에 뉴욕 경찰서 유치장에서 다섯이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그의 계획이었을 줄이야.

이미지=영화<유쥬얼&nbsp;서스펙트>&nbsp;ⓒPolyGram&nbsp;Filmed&nbsp;Entertainment


카이저 소제의 대리인 코바야시(피트 포스틀스웨이트)는 이 다섯에게 간단하지만 위험한 임무를 맡긴다. 카이저 소제의 경쟁 조직인 남미 갱들이 마약 거래를 위해 항구에 들어왔다. 이들은 9,100만 달러어치의 마약을 팔 예정이다. 네 사람은 그 거래를 방해해야 한다. 그들을 모두 죽이고, 배와 마약을 태워라. 희생이 따르겠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 돈 9,100만 달러를 나눠 가져도 좋다. 거절한다면? 상대는 카이저 소제다. 즉, 이건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고 명령이다.

두려움에 달아난 펜스터(베니치오 델 토로)는 다음 날 바로 시체로 발견되었다, 화가 난 그들은 카이저 소제의 존재를 부정하며 복수를 위해 코바야시를 잡았지만, 총구를 마주한 코바야시는 키튼의 애인을 데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하크니의 아버지, 애리조나에 사는 버벌의 숙부, 뉴욕에 사는 맥의 조카도 죽을 거라고 한다. 그들에게 애초부터 선택권은 없었다.



언덕에 차를 대고 배를 감시하던 넷은 고민한다. 남미 갱들만 있을 때 습격하면 그나마 적은 수를 상대하면 된다. 하지만 돈은 없다. 거래가 시작된 뒤에 습격하면 죽여야 할 머릿수가 배로 늘어나니 그만큼 위험이 커진다. 맥(스티븐 볼드윈)과 하크니(케빈 폴락)는 돈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어차피 살 확률은 낮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대가를 받겠다. 장애가 있는 약자인 버벌(케빈 스페이시)은 망설인다. 맥은 버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말을 한다.

“해내지 못할 일이란 없어 (There’s nothing that can’t be done).”

다수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버벌은 체념 어린 대답을 한다.

“확실히 죽을 걸 알고도 들어가야 한다니, 믿을 수가 없네 (I just can’t believe we’re gonna walk into certain death).”

이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한다. 차 안의 공기가 침묵으로 더욱 무거워진다. 시선을 피하고 있던 맥이 끝으로 한마디를 던진다.

“뉴스에서 뉴욕은 비가 올 거라더군 (News said it’s raining in New York).

이미지=영화<유쥬얼&nbsp;서스펙트>&nbsp;ⓒPolyGram&nbsp;Filmed&nbsp;Entertainment


상황과 무관한 뜬금없는 대사 같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다니냐?”와 견줄만한 명대사다. 열 명과 싸울지, 스무 명과 싸울지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맥은 가족이 있는 뉴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일은 어차피 가족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하니 내 목숨은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는 의지의 표명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애인과 새 출발을 꿈꿨던 키튼(가브리엘 번)의 갈등을 보여줬다. 이들과의 범죄에 동참하기를 망설인 건 키튼 뿐인 것처럼 그려졌었다. 하지만 이 대사는 그들 모두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전과가 있는 이들은 뭔 일만 터지면 경찰에게 용의자로 지목되곤 했다 (usual suspect). 아무 때나 범죄자 취급 하는 경찰에 대한 불만. 세상에 대한 불만이 다섯 사람을 다시 범죄로 몰아넣었다. 애초에 범죄가 좋아서 저지르고 다닌 막장들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족도 있고, 가족을 위해 희생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대사를 통해 드러낸다.

 



또 이 대사에는 이들의 관계에 관한 의미도 담겨 있다. 이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뭉쳤고, 서로 믿지 못해서 LA까지 동행해 왔다. 하지만 세 건의 범죄를 함께 하면서 동료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뉴욕을 언급한 이 말에 담긴 속뜻은 이렇다. 내가 죽으면 너희가 내 몫을 고향의 가족에게 전해주겠지. 사나이인 만큼 상대에게 감성적인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알고 나면, 앞에 적은 버벌의 대사가 무척 소름 끼친다.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가족들의 목숨까지 담보로 잡고 있는 카이저 소제 본인이 한 대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솜씨 좋은 악당들이라는 것은 앞선 활약을 통해 보여줬다. 적이 수적으로 우세하긴 해도, 맥의 말처럼 불가능한 임무는 아니다. 위험이 아주 큰 건 사실이지만 모두 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버벌은 ‘확실한 죽음’이라고 못 박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남미 갱들과 구매자들을 모두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때 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하크니의 등 뒤에서 총을 쏘고, 맥의 목덜미에 칼을 꽂고, 키튼까지 죽인 것은 카이저 소제 본인이다. 나머지가 확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카이저 소제는 이미 모두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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