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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교실

본의 아니게 성평등의 상징이 된 악마 [바바둑]

by 꿀마요 2022. 7. 25.


저주받은 동화책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영화 [바바둑]은 한편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신화를 꼬집는 영화다. 여기에 우연한 사건이 겹쳐서 악마 바바둑은 성평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악몽에 시달리던 아멜리아는 오늘도 자신을 찾는 아들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그러나 그녀의 현실은 악몽보다도 더 힘겹다. 7년 전 아이를 출산하러 병원에 가는 길에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과잉행동 장애의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지 가끔은 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거기에 생활고와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는 워킹맘이 모성을 지켜나가야 하는 현실은 간밤의 악몽보다 더한 공포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아들은 책장에서 발견한 ‘미스터 바바둑’이라는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조금 어두운 이야기 같았다지만, 점점 소름 끼치는 그림과 끔찍한 내용에 아멜리아는 책을 덮어버렸다. 그림책은 사실 악마의 저주가 담긴 금서였고 그때부터 아들의 상태가 더 심각해지더니 바바둑이 우릴 죽일 거라며 발작을 일으킨다. 아멜리아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만 대책 없는 동정과 차가운 경멸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아멜리아가 책을 태워버리자 이제 아들을 괴롭히던 환각이 아멜리아를 덮쳐온다. 이번엔 아들이 바바둑으로부터 엄마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아멜리아는 그림책의 내용처럼 기르던 개를 죽이고, 아들마저 위협하는 괴물이 되어간다.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아이를 지켜내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다. 마치 뱀파이어에 대항하는 십자가나 강시를 이겨내는 부적처럼, 공포영화 속의 모성은 언제나 악령 따위 떨쳐버리는 위대한 아이템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바바독>은 그런 모성신화에 기대지 않았다. 오히려 모성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과 헌신을 강요받는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악령이 주는 공포의 무게는 워킹맘  개인에게 덮쳐오는 일상의 공포보다 절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대책없이 상처만 전시하거나 무책임한 희망으로 얼버무리지 않는 전개도 신선하다. 이런 점 때문에 <바바둑>은 모성신화에 대한 담론을 다룰 때 자주 다루는 작품이다.  



거기에 작년엔 재밌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넷플릭스가 이 작품을 LGBT 섹션으로 분류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 때, 네티즌들이 관련한 짤방을 경쟁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무지개 깃발 앞에 바바둑을 합성하는 식의 이미지가 한동안 SNS에서 유행했었다. 나중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바바둑은 넓은 의미에서 성평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심지어 트럼프를 조롱할 때도 바바둑의 이미지가 자주 활용된다.


출처 : @jacobbullards

<바바둑>은 주로 배우로 많이 알려진 ‘제니퍼 켄트’가 연출한 작품이다. <바바둑>의 전신이 된 단편영화 <몬스터> 이외에 이렇다 할 연출작이 없었던 그녀의 첫 장편이였지만,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서 61회 후보에 올라, 55회 수상하면서 그 해 가장 훌륭한 공포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또한 어머니 아멜리아를 연기한 엄마 ‘아멜리아’역의 ‘에시 데이비스’는 이 작품으로 2014년 타임지가 선정한 연기자 TOP 10에 베네딕 컴버배치, 줄리안 무어, 에바그린, 틸다 스윈튼 등의 굵직한 배우들과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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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앤건 = 글: 김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