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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스타 비하인드

<조선 명탐정2: 사라진 놉의 딸>의 최무성

by 꿀마요 2021. 12. 1.

'응답하라'의 택이 아버지로 가장 눈에 익은 배우 최무성. 그러나 알게모르게 멋진 역할을 진짜 많이 했던 배우 최무성입니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최무성의 초기작들을 만나봅니다. 


<조선 명탐정 2: 사라진 놉의 딸>은 감독과 두 주연배우 외에도 1편에 참여했던 스탭 대부분이 함께한 작품이다.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듯, 전작에서 사망 처리된 배우 두 명을 부활시켜 출연시켰다. 한 배우는 우정 출연하듯 잠깐 얼굴을 비치는 정도인데, 다른 한 배우는 아예 새로운 역할로, 그것도 4년 새 훨씬 비중이 커진 역할로 등장한다. 전례를 보기 힘든 파격 캐스팅의 수혜자가 된 라이징 스타, 최무성이다.
 

사진 = MBC 드라마 <기황후>(좌), 영화 <악마를 보았다>(우)

최무성(본명 최명수)은 1968년 2월 12일생으로, 지난 시간에 소개한 유승목보다도 한 살이 많다. 많은 명품 배우들이 그랬듯 최무성의 시작 또한 연극이었다. 그가 처음 연기를 시작한 연희단 거리패는 한국 연극계의 거목 이윤택 연출가가 대표로 있는 극단으로, 오달수, 윤제문, 곽도원 등이 이곳 출신이고, 이민정도 여기서 연기를 배웠다. 이후 예성 동인, 신기루 만화경 등의 극단을 거치며 연극 무대에서 연기했고, 일본의 도쿄 비주얼아트에서 영상 연출을 전공하고 돌아온 이후로는 연기뿐 아니라 연극 연출가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최무성의 첫 영화는 2002년 <남자 태어나다>였고, 본격적으로 영화에서 활동한 것은 2005년 <극장전>부터다. 2006년 조민호 감독의 <강적>에서는 경찰 강력반 반장을 맡아, 자신을 나락으로 끌고 가는 동료 하성우(박중훈)를 끝까지 신뢰하는 인간적인 연기로 호평받으며 ‘제2의 송강호'라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 조민호 감독은 최무성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연기 몰입이 뛰어난 배우’라고 평하며, 차기작 <10억>에서도 그를 찾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참회하는 윤수(강동원)의 발을 씻겨주며 "물고기가 변하는 건 마술이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기적입니다."라고 원작의 명대사를 읊어주는 신부님 역할을 연기했다. 2007년 <열 세살 수아> 에서도 수아의 이웃집 아저씨이자 엄마(추상미)의 친구 역할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역할이었다.

 

사진 = 영화<열세살 수아)(좌), 영화 <사람을 찾습니다>(우)

최무성이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였다. 그는 반성 없는 살인마 정철진 역할을 맡아 치가 떨리는 열연을 보여줬다. 전작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까지 유일한 주연 영화인 2008년의 독립영화 <사람을 찾습니다>에서는 사람을 개취급 하는 개만도 못한 인간, 원영 역할을 맡았다. 탐욕과 화풀이와 같은 혹독한 악행을 하면서도 어딘가 선한 그림자가 감춰져 있는 연기로 호평받았다. 2010년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서 맡은 태주는 장경철(최민식) 못지 않은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인육을 먹으며 섬뜩한 웃음을 웃는 연기로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최무성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도 <악마를 보았다>를 본 관객은 누구나 산장의 인육 살인마를 기억하게 되었다.

섬뜩하고 폭력적인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수수하고 인간적인 연기를 한다. <음란서생>이나 <방자전>에서 보여준 능청스런 모습은 코믹하다. 최무성은 배역에 따라 옷을 갈아입은 듯 전혀 다른 분위기를 뿜는다. 그러나 배역이 달라도 그의 얼굴은 큰 차이가 없다. 스스로는 자신의 외모가 ‘평범하기 때문에 가능한가보다’라고 얘기한다. 함께 작업해 본 감독은 그가 배역에 깊이 몰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단역 위주의 필모그래피이긴 하지만 대략 6~7년동안 해마다 세 편 가량의 장편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다. 캐스팅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깊이있는 변신에 대한 신뢰가 크기 때문이었다.

 

사진=영화<연애의 온도>(좌), 영화<조난자들>(우)

<악마를 보았다>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올라가고,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풍산개>등에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JTBC의 일일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에서 일에 치이는 페이 닥터면서 기러기아빠로 나와 시청자들의 연민을 자아내는 연기로 대중성을 증명했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서는 수트에 안경을 쓴 엘리트 공무원의 모습으로 또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연애의 온도>의 김과장 역할도 불륜을 저지르는 어리숙한 회사원 역할로, 찌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연기했다.

JTBC가 야심차게 내놓은 스릴러 <무정도시>는 세상에 그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마약단의 실력자 ‘사파리’ 문덕배는 돈과 권력을 위해 언제든 조직을 배신할 수 있는 야비하고 폭력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언제나 선한 삶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고, 현실에 집착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한다. 살벌한 유행어 “아시겠습니까?”를 내뱉으며 사악한 자세를 갖추고 있으나, 눈빛에는 항상 내면의 충돌이 비춘다. 드라마의 팬들은 사파리의 입체적인 캐릭터에 열광했고, 최무성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사파리 때문에 드라마를 본다는 팬들의 고백이 줄을 이었다.
 

사진=JTBC 드라마 <무정도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에서도 멋진 남자 역할이었다. 기승냥을 지키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또다시 환관이 되어 돌아와 기승냥을 끝까지 섬기고 보호하는 충신 박불화 역할로 팬을 늘렸다. 이제는 감독이 아닌 시청자가 먼저 찾는 배우의 대열에 들어섰달까.

2015년 <미생>의 후속작으로 방영중인 <하트 투 하트>의 안집사 역할도 최무석이라는 배우의 장점이 잘 녹아 날 만한 역할이다. 고회장 집안의 궂은일을 묵묵히 도맡아 하는 것이 기황후의 박불화와 비슷한 캐릭터인가 싶지만, 알고보면 집사 일뿐 아니라 회장의 아침 트레이닝을 돕는 근육질 사내라는 반전에, 과거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충격과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가슴아픈 사연도 간직한 입체적인 인물이다.

2011년 <조선 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최무성의 역할은 소소했다. 정조 대왕의 밀명에따라 움직이는 탐정 김민(김명민)을 후방 지원하는 의금부 도사 역할로, 김민과 은밀히 접촉해 의견을 좀 주고 받는 게 전부였다. 접선 과정이 재밌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동문수학한 과거가 짐작되는 말투로 대화만 나누는 밋밋한 역할이었다. 그가 이제껏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존재감이 적었다. 칼을 맞는 장면조차 없이 죽고, 그대로 이야기에서 퇴장했다. 그 사이 두 편의 드라마를 찍었고, 최무성의 인기는 많이 높아졌다. <조선명탐정2: 사라진 놉의 딸>의 제작진이 이런 점을 고려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전편에서 함께 한 배우와 시리즈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도 확실치 않다. 어쨌거나 전편에서 한 역할로 죽은 배우를 후속편에서 아예 새로운 역할에 캐스팅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배우에 대한 무한한 신뢰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관객 기만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주어진 역할은 저잣거리의 왈패 혹은 산적 집단의 두목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불법적인 일이라도 의뢰받아 처리하며, 눈도 깜빡 않고 사람을 죽이는 악당이다. 김민과 서필(오달수) 때문에 조직이 전원 관군에 체포되었다. 이후 감옥을 벗어나 김민과 서필을 죽이려고 쫓아 다닌다. 복수를 다짐하며 자신의 팔뚝을 물어 뜯어 흉터를 새기는 악을 보여준다. 끝내 붙잡은 김민이 일말의 양심에 어필하자, 결정적인 순간에 조력자 역할로 돌아선다. <무정도시>에서의 탐욕과 냉정함, <악마를 보았다>의 섬뜩함에다 인간적이고 지적인 면모까지 뒤섞인 입체적인 인물로, 배우 최무성과 어울리는 역할이다. 그리고 아마도 <조선 명탐정>의 속편이 계속될 때, 김민과 서필 콤비에게 든든한 조력자, 해결사 역할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연기가 캐릭터를 그려가는 과정이라면 배우는 밑그림이다. 역할에 맡게 그 위에 선을 보태고, 명암을 넣고, 색을 입힌다. 어떤 작품을 해도 또렷하고 분명한 밑그림에서 시작하는 배우들이 있다. 20여년 전 최종원, 양택조가 거의 모든 한국 영화마다 감초처럼 얼굴을 비추기 시작할 때부터, 현재의 고창석, 라미란까지, 조연으로 성공하는 배우들은 강하게 드러나는 본인의 개성으로 주로 어필해왔다. 현실보다 과장된 몸짓과 애드립으로 영화의 웃음을 책임지는 것이 조연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사명이었다. 최무성은 다르다. 그는 소위 역할을 ‘따먹는’ 연기를 할 줄 모른다. 그가 맡은 배역에서 배우의 개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최무성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리얼리티다. 본인이 납득할만한 리얼리티를 뽑아내기 위해 역할에 깊이 몰입하고, 그 결과 최무성은 사라지고 작품 속의 인물만 남는다. 최무성은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자신의 밑그림을 지운다. 그리고 흰 도화지 위에 자신의 캐릭터를 그려 나간다. 수십 편의 작품에 나와도 매번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배우라면, 관객도 믿고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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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