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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스타 비하인드

할리우드로 간 엄친 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수현

by 꿀마요 2021. 12. 1.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한국 로케이션 촬영을 다녀간 것이 1년 전 이맘때다. 한국 관객이 이 영화에 각별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여러 달 전의 일이다. 비중 있는 한국인 캐릭터에 국내 여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40:1의 경쟁을 통해 뽑혔다는 배우 수현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낯선 얼굴이었다. 드라마에 출연했던 적이 있을 뿐이고, 영화는 한 편도 찍은 적이 없었다. 이제야 첫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수현은 앞으로 2주 안에 가장 화려하게 부상할 라이징 스타 중 한 명이다.

수현(Claudia Kim, 본명 김수현)은 1985년 1월 25일생이다. 그녀의 프로필 첫 줄에는 2005년 한중 슈퍼모델 대회 1등이라고 적혀 있다. 전에는 모델이나 연예활동을 한 적이 없다. 미디어 경력은 아리랑TV 인턴기자 활동 정도로 끝이었다. 수현은 원래 언론인 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TV 앵커의 꿈을 키워왔다. 대기업 해외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부터 미국에서 6년간 살았었다. 덕분에 그녀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 이화여대 국제학과를 다니며 교내 영자신문의 기자도 했고, 코리아 타임즈의 인턴도 했었다. 그렇다고 연예계에 관심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노래와 영화를 좋아했고, 앵커가 되는 데도 유리한 점이 있을까 싶어 슈퍼모델 대회 접수 마지막 날 참가를 결정했다고 한다.

우승하자마자 연예계 여러 분야에서 많은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 앵커의 꿈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신문과 방송국 인턴 생활에서 짧게나마 느꼈던 점을 돌아봤다. 한국에서 여성 앵커로서의 길이 녹록지 않고 기대와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6년 된 꿈을 미뤄놓기로 했다. 1년간은 모델 활동만 하면서 연기 수업을 들었고, 2006년 드라마 <게임의 여왕>에서 드디어 연기자로 데뷔했다.
  

이미지=SBS드라마<게임의 여왕>


주인공 신전(주진모)의 친한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이면서, 신전을 두고 은설(이보영)과 삼각관계에 놓이는 변호사로, 데뷔작부터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21살의 수현은 서른 살 가량의 전문직 여성으로 보여야 했으며, 쿨하고 도도한 태도가 점점 질투로 변해가는 것을 표현해야 했다. 인간미, 의리, 질투 등의 여러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을 받았다. 로스쿨 유학을 다녀온 캐릭터때문에 제작발표회 때 영어실력에 관한 질문을 받았었는데, 이때부터 토익 만점 여배우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 드라마 이후 몇 편의 CF를 찍었지만 다른 작품은 하지 않았다. 아직 연기가 자신의 길이라는 확신이 없어서 한동안 연예 활동을 일체 하지 않았다. 학업부터 마치고 진로를 고민했다. 아직 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녀는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는 데 늦은 나이가 아니니 과감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오랜 꿈을 놓는 아쉬움은 있었겠지만 수현은 연기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이미지=KBS 드라마 <도망자 플랜 B>



2010년 <도망자 플랜 B>로 복귀할 때 그녀는 유리엘이라는 예명을 썼다. <추노>의 곽정환 감독과 천성일 작가가 다시 뭉친 작품이고, 비, 이나영, 다니엘 헤니 등의 국내 탑스타들과 <영웅본색>의 적룡, <쉘위댄스>의 다케나카 나오토 등 화려한 출연진이 등장했다. 수현은 카이(다니엘 헤니)의 개인 비서인 소피 역할이었다. 국제 사업가이자 로비스트인 카이의 사업뿐 아니라 사생활, 심지어 사랑에 관한 일도 모두 처리하면서, 한 번의 거절도 한 줌의 이기심도 없는 절대적인 충성심이 돋보였다. 냉정하던 그녀도 카이를 점점 사랑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카이의 반대 세력이 심어둔 심복이라는 반전을 보여줬다. 이 반전이 후반부 소피의 명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카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차마 따르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보스를 찌르는 처절한 시도가 실패하기도 한다. 카이를 노린 킬러를 막으려다 사투 끝에 안타깝게 죽는데, 발톱이 빠지기 직전까지 간 격렬한 연기로 호평 받았다. 냉정한 카리스마와 목숨 건 순애보를 골고루 보여준 수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이듬해 드라마 <로맨스 타운>에서도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부유한 집 외동딸 역할이었다. 이전 드라마들보다 비중도, 임팩트도 작았지만 이런 엄친딸 캐릭터는 수현에게는 맞춤옷처럼 잘 어울렸고, 역시 무난하게 소화해 냈다. 수현은 이 드라마를 찍는 동안 짬짬이 책을 번역했고, 종영 직후에 번역서 <그 여자의 방>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미지=KBS 드라마<브레인>


다음 드라마 <브레인>부터는 다시 본명으로 활동했다. 이 드라마의 장유진도 엄친딸에 재벌 딸이었다. 대신 이번엔 조금 파격이 있었다. 스무 살 때의 불같은 사랑으로 생긴 딸을 키우는 미혼모이고, 무모하면서 허술한 면도 드러난다. 강훈(신하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에게 순애보를 바친다. 그의 앞길에 날개를 달아주는 여자가 되겠다는 대사 때문에 ‘날개녀’ 장유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결같던 차도녀의 모습에 모성애와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다양한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마블 스튜디오의 한 한국 관계자의 아내가 이 드라마에서의 수현을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마블이 한국 여배우 오디션을 준비할 때, 이 아내는 남편에게 수현을 적극 추천했다. 주로 한국의 톱 여배우들과 접촉하려고 했던 비밀 오디션 명단에 수현의 이름이 포함되는 계기가 이렇게 마련되었다는 설이다.
 

이미지=MBC 시트콤<스탠바이>

2012년에는 전진수 감독의 시트콤 <스탠바이>에 출연했다. 세련된 외모와 안 어울리게 털털하고 직선적이면서도 허당 끼가 다분한 예능 피디 수현 역으로, 이제까지의 배역들과 가장 다른 역할이었다. 원래 노래를 좋아하고 가수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그녀는 OST에도 참여했다. 젊은 여자 연기자에겐 민망할 수 있는 겨드랑이 털 관련 에피소드 등을 연기하면서도 수줍음 없이 해내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 시트콤부문 여자 우수상을 받았다. 

 

이미지=MBC 드리마<7급공무원>

2013년 드라마 <7급 공무원>의 최미래는 국정원 적대 조직의 요원이다. 주인공 한길로(주원)의 직장 상사로 위장해 생활하면서, 길로와 서원(최강희)의 연애에 끼어들게 된다. 로맨틱 스파이 코미디라는 이 작품에서 악역 미래는 스파이물의 긴장감을 담당했었다. 극 초반 특별 출연한 엄태웅과 연인이자 동료 요원으로 함께 활약한 장면들은 드라마의 무게감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엄태웅이 살해되면서 하차했지만, 복수심이라는 뚜렷한 명분이 생긴 그녀는 혼자서도 중심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점점 로맨틱한 면으로 치우치면서 미래 캐릭터도 중심을 잃고 귀엽고 장난스런 사랑 방해꾼이 되어 갔다. 어쨌거나 시청률은 끝까지 좋았고, 수현의 연기도 제 몫을 다 했다. 특히 긴 팔다리로 선 굵은 액션 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을 다시 증명했고, 할리우드 관계자들도 이를 눈여겨 본 듯하다.

그리고 마블의 오디션이 있었다. 철저한 보안 때문에 수현은 자기가 어떤 영화의 오디션을 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자기도 어릴 때 마블 코믹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떤 영화의 어떤 배역이라도 영광스럽게 참여하려고 했다고 한다. 캐스팅 확정이 되고 난 뒤에야 자신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은 꿈같은 기회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디션에 최선을 다할 이유가 충분했다. 오디션보다는 협상과 조율을 통해 캐스팅을 결정하려던 몇몇 톱스타들과는 다른 입장이었기에, 그녀의 성실한 오디션은 마블에게 검토할 여지를 더 많이 주었다. 조금이라도 신선한 이미지를 찾던 마블의 까다로운 기준에도 만족스러운 조건을 갖췄던 것이다.

개봉일이 다가오면서 예고편과 정보들이 조금씩 공개되었다. 오디션 당시에는 수현의 배역은 악역일 것으로 소문이 났었다. 지금 알려진 역할은 토니 스타크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헬렌 조라는 유전학자로 어벤져스의 조력자라고 한다. 헬렌 조는 마블 코믹스의 세계에서 아마데우스 조라는 천재 한국인 히어로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즉, 헬렌 조의 등장은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에 아마데우스 조가 등장할 수 있는 복선이 되는 것이다.
 

이미지=넷플릭스 드라마<마르코폴로>



<어벤져스> 캐스팅을 계기로 수현은 헐리우드에 진출했다. 니콜라스 홀트 주연의 독립영화 <이퀄스>에 캐스팅된 상태이며, <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마르코 폴로>에서 우구데이 유목민 공주인 쿠툴룬을 연기하고 있다. 쿠툴룬은 쿠빌라이 칸의 사촌이자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대립한 카이두(릭윤)의 딸로, 남자 전사들과의 힘겨루기에서도 지지 않고 전장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한 여장군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자신이 인정한 쿠빌라이의 장군과 전장에서 사랑을 키워 혼인하기도 한다. 모든 출연진이 싸우는 장면들을 직접 소화한 드라마인데, 전사인 쿠툴룬은 특히 액션 연기의 비중이 높고 게다가 상대는 모두 남자들이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테지만 수현은 여유와 카리스마를 잃지 않고 캐릭터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는 현재 두 번째 시즌을 제작중이다. 쿠툴룬은 세계사에서 유래가 드문 여장군인 만큼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된다. 여자이면서도 황실 안 여자들의 암투에서는 한발 비껴있는 인물이고, 그녀의 특별한 부부관계는 두 부족의 대립이 첨예해 질수록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국내에서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그녀가 맡았던 배역들처럼 현실의 수현도 엄친아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토익 만점이라던가 지성을 겸비한 미녀라는 수식어는 그녀의 재능을 한정 짓기도 했고, 연기에 도움이 되는 재능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동안 스타의 자리를 차지하진 못했지만, 무리하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들을 맡아 역할에 충실했다. 그리고 한 번 주어진 기회를 멋지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는 운이 아니라, 원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재능들이 만든 결과였다. <어벤져스>나 마블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할리우드에 연착륙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 덕을 볼 것이다. 그렇게 찾아온 제2, 제3의 기회들을 어떻게 살려 나갈지는 앞으로의 그녀의 노력에 달렸겠지만, 과거와 현재까지의 작품들을 돌아보고 나니, 후광보다 그녀 본인의 재능이 더 밝게 빛나는 연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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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