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한 여자를 익사시킨 뒤, 시체를 인형처럼 만드는 엽기 살인마가 체포된다. 그의 집에서 나온 비디오를 보니, 납치한 여자를 유리로 된 감방(셀)에 가둬놓고, 40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물이 나오는 장치로 익사시켰다.
아직 한 명의 희생자가 어딘가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발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범인을 취조할 수 없다. FBI는 인간의 무의식(꿈)에 접속할 수 있는 특수연구소의 도움을 받는다.
연구소의 심리 치료사 캐서린(제니퍼 로페즈)이 들어가 본 연쇄살인마 칼 스터거(빈센트 도노프리오)의 무의식은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비주얼로 가득하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등 위대한 고전들과 닮았고, 현대미술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도 대미언 허스트, H.R. 기거, 오드 너드럼 같은 작가들의 초현실적 이미지들을 참고한 장면들이 많다.
캐서린은 드디어 스터거의 마음속에 사는 마왕과 대면한다. 어린 시절, 부친에게 학대받은 스터거의 마음에는 강하고 파괴적인 마왕이 자라났다. 마왕은 방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망토를 휘날리거나, 악마의 뿔을 단 모습으로 스터거의 무의식을 지배해왔다. 캐서린은 마왕에게 압도당해서, 현실과의 분별력을 잃어버린 채 마왕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더 셀>은 이런 낯설고 가학적인 이미지들을 함부로 뿌려놓기만 한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희생자를 구하고, 꿈속에서 스터거의 억압된 자아까지 구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한다. 무의식 세계의 이미지들도 이 뚜렷한 목적과 방향에 따라 나열되어 있다.
사실, <더 셀>의 이야기는 엽기적 살인자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수사물로, 토머스 해리스의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을 연상시킨다. 조현병으로 살인을 반복하는 범인이 나오고, 납치된 다음 희생자를 찾아야 한다는 점 등 이야기의 큰 얼개가 비슷하다. 저널리즘 문학의 진가로 평가받는 토머스 해리스의 작품들에 비하면 <더 셀>의 이야기는 허술한 편이다. 캐릭터들은 설득력이 약하고, ‘의식 공유기’라는 SF 설정은 생뚱맞다.
하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범인의 심리가 표출된 연출, 그리고 무의식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초현실적 화면으로 표현한 독특하고 강렬한 상상력은 이런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더 셀>은 분명 2000년대 가장 기억에 남을 스릴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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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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