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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교실

세대 갈등에 대한 공포, 존 카펜터의 '저주받은 도시'

by 그럽디다. 2021. 8. 6.

이미지=영화<저주받은 도시>, ⓒUniversal Pictures

 

<오멘>이나 <악마의 씨>처럼
아이가 공포의 근원인 영화들이 여러 편 있다.

 

작가들의 지독한 냉소 때문이 아니라, 출산과 육아에 수반되는 책임감의 변주일 때가 많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고민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저주받은 도시> 아이가 두려움의 대상인 공포영화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오멘>데미안보다 무서운 아이들이 아홉 명이나 몰려다닌다.

 

미드위치라는 외딴 마을이 배경이다. 평화롭던 이곳에서 어느 ‘X파일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마을의 모든 주민과 동물들이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가 여섯 시간 만에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명의 여자가 동시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엔 남편이 장기 출장 중인 여자와, 성 경험이 없는 여자도 있었다. 결국, 시에 아홉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는 사산된다. 아홉 아이는 모두 예쁘고, 은발에 창백한 피부를 가졌다. 이성과 논리에 따라서 조숙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감정 표현이 일절 없고 냉정해서 상대방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독심술과 초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필요 없는 어른들을 제거하면서 점점 마을을 장악한다.

 

이미지=영화<저주받은 도시>, ⓒUniversal Pictures

 

윈덤의 SF 소설 <미드위치의 뻐꾸기> 원작이며, 1960 영국에서 먼저 영화화됐었다. 위의 줄거리는 1995 카펜터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의 줄거리다. 60년도 영화는 원작에 충실한 편으로, 아이들의 정체에 관한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과 주인공인 교사가 아이들과 벌이는 팽팽한 심리전이 서스펜스의 핵심인, 지적인 SF 영화였다.

 

리메이크 영화는 폭력과 고어 장면이 늘고, 멜로드라마틱한 요소가 추가되며 달콤하고 끈끈한 영화가 되었다. 원작과 60 영화팬 대부분은 리메이크작을 졸작으로 여긴다. 일반 관객과 카펜터 감독의 팬들도 대체로 비슷했다. 당연히 흥행도 저조했고,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영화 후보에 오르는 확실히 실패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리메이크를 좋아하는 팬들도 적지 않고, 여러 출처의 공포영화 베스트 목록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미지=영화<저주받은 도시>, ⓒUniversal Pictures

 

원작과 오리지널 영화에서 아이들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교복과 통일된 스타일, 각이 잡힌 단체행동, 일체의 개인적 감정을 숨기고그들 공동 목표를 위해 매사에 냉정하고 단호하게 구는 모습 등이 비인간적으로 묘사된다. 이들에 대적하는 사람들은 군인, 경찰이 아니라 교사와 과학자 지식인들이 중심이고, 이들은 서구의 자유주의를 대변한다.

 

이미지=영화<저주받은 도시>, ⓒUniversal Pictures

 

리메이크작의 특징은 가족주의와 영웅적 희생 미국적 가치가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위협이 만한 인간을 모두 죽인다. 다른 아이들은 그것이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라고 한다. 주인공 앨런(크리스토퍼 리브) 인간의 가치관에 공감하고 적응해야 생존하고 진화할 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인간(환경) 지배대상으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맞춰가야 한다는 것은 진화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카펜터 감독은 원작엔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넣었다. 아홉 아이 유일하게 이성 짝이 없는 아이, 데이빗이다. 아이들은 모두 남녀 쌍으로 줄지어 다닌다. 출생일에 사산된 아이는 데이빗의 짝이었기 때문에, 데이빗만 행렬의 뒤에서 혼자 다닌다.

 

영화는 사건의 발단인 집단 기절사태 전의 도입부에 10분이나 할애한다. 그동안 애정 충만한 쌍의 부부와, 같이 모여 축제를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의 화기애애함을 보여준다. 특히 남자 배우 크레딧에 번째로 소개되는 인물 프랭크(마이클 페어) (린다 코즐로브스키) 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강조한다. 그런데 집단기절로 인해 가장 먼저 죽는 인물이 프랭크다. 영화 시작 12 만에 죽는 남자의 존재감을 이렇게 키워가면서 미망인이 질의 상실감을 강조한다. 질은 아이가 프랭크의 마지막 선물인 여기게 되고, 남다른 애착을 보이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질이 낳은 아이가 바로 데이빗이다.

 

이미지=영화<저주받은 도시>, ⓒUniversal Pictures

 

앨런의 아내 바바라(카렌 ) 아이들의 초능력에 의한 희생자다. 바바라가 딸의 초능력에 의해 자기 손을 끓는 스프에 담그고, 혼란스러움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다가 결국 절벽 아래 바다로 뛰어내리는 일련의 시퀀스는 상당히 경제적이면서도 충격적으로 연출되어 있다. 그리고 충격이 고스란히 앨런의 상실감에 무게를 실어준다. 오리지널의 주인공은 학교 교사여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영화 내내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앨런은 의사이고, 외에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는 없었다. 아이들을 두려워하는 마을 분위기 때문에 학교가 엉망이 되자 교장인 질은 존경받는 의사인 앨런이 아이들을 맡아 가르칠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일을 부탁한다. 하지만 아내의 자살로 행복이 박살 난 앨런은 냉소적인 허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앨런은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도 보지 않기에, 부탁을 거절한다.

 

이미지=영화<저주받은 도시>, ⓒUniversal Pictures

다시 데이빗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이 짝이 없을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없지만, 적어도 죽은 짝이 어디에 있을지를 궁금해한다. 의문이 데이빗을 대열에서 이탈하게 하고, 묘지를 헤매다가 멜라니(메레디스 샐렌저) 앨런을 차례로 만나게 한다. 성 경험이 없었는데 임신했던 여자가 멜라니다. 유일하게 아이를 사산한 것도 그녀다. 그날 이후 멜라니는 오랫동안 방황했다. 데이빗은 그녀가 겪는 혼란의 이유가 자신이 찾는 아이 때문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가 자살할 것을 예감한다. 실제로 멜라니는 직후에 자살한다. 멜라니의 자살은 유일하게 자의에 의한 것인데, 데이빗은 미리 그녀의 자살 이미지에 동요를 느낀다.

 

미망인 질의 아들인 데이빗은 어쩌면 자기의 허전함과 엄마의 상실감의 공통점을 느끼면서 자랐을 것이다. 여기에 멜라니와의 교감이 뭔가를 발동시킨다. 번째 묘지 장면에서 데이빗은 아내의 무덤을 방문한 앨런에게 다가가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 준다. 손길에서 앨런은 아이들이 인간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데이빗의 존재를 바라보며 끝까지 희망을 믿고, 마지막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아이들 모두를 없애면서도 데이빗을 구해낸다. 데이빗의 생존은 새로운 공포의 여지를 남긴 열린 결말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데이빗이 변화해 과정을 보면 소통을 통한 해피엔딩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지=영화<저주받은 도시>, ⓒUniversal Pictures

이렇게 보면 카펜터의 <저주받은 도시> 구현하는 공포의 실체는 원작과 다르다. 원작이 공산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시대의 경계심을 아이들에게 투영했다면, 카펜터는 세대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고민을 투영한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대 갈등의 원인이 공감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각색의 방향을 잡았다. 당장 우리 사회에 대입시켜도 이질감이 없는 이야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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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