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학원호러’라는 장르를 구축한 공포영화 [여고괴담](1998)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다.
모두의 이야기, 여고괴담 시리즈
1편의 이렇게 시작했다. 은영(이미연)은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에 교사로 돌아온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창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박기숙 선생님이 갑자기 자살한다. 또한 3학년 3반의 담임 선생님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은영은 10년 전 자신의 친구였던 진주의 죽음이 일련의 사건들과 관계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사건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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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은 학교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거대하고 암묵적인 공포를 효율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탐정물처럼 은영이 학생 중 누가 귀신인지 찾아가는 전개방식도 신선했다. 영화는 당시 서울 62만 명, 전국 250만 명(통합전상망 구축 이전의 추정치)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요즘 같은 멀티플렉스 상영시스템이 구축되기 전 작품으로는 실로 대단한 숫자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2009년까지 다섯 개의 시리즈를 만들어내며, 학원호러물의 인기를 주도했다. 그중 김태용, 민규동 감독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성장 자체에 대한 공포를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었다.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여고괴담 시리즈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전체를 두고 봐도 분명 새로운 자극으로 기억되는 작품이었다. 이후, [분신사바], [고사: 피의 중간고사], [신데렐라],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 그리고 최근에 [능력소녀]까지 한국형 학원호러는 다양한 작품으로 변주된다.
어쩌면 전설의 고향
[여고괴담]은 당시 막 개방된 일본문화의 영향아래 있다고 평하는 관객이 많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여곡성], [월하의 공동묘지] 등, 오히려 원혼을 다룬 한국식 호러클래식을 답습한 작품에 가깝다. 가부장적인 사회질서 속에서 고통받던 여인의 ‘한’을 극한의 경쟁구조 속에 발버둥 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로 대체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귀신이 등장하고 난데없는 화해로 마무리된다.
화해를 하는 방식 또한 문제였다. 지나치게 신파와 계몽으로 치닫는 분위기 속에 요즘 같아선 ‘귀신이 설명충’이라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장광설이 이어진다. 그것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교사들의 성추행, 욕이 섞인 여고생들의 일상어로 쌓아놓은 작품의 현실감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꼴이었다.
‘둥! 둥! 둥!’ 하는 효과음과 함께 순간이동했던 귀신(최광희)의 움직임은 제법 그럴싸했지만, 이외에 푸르스름한 조명으로 일관하는 ‘전설의 고향식’ 미장센은 허술한 면이 없지 않다. 학원공포물의 원조라고 할 수 있고 최근 클로이 모레츠, 다코다 존슨, 미아고스, 틸다 스윈튼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고 있는 [서스페리아](1977)의 만듦새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럼에도 [여고괴담]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공포다. 오늘도 지옥같은 교육환경 속에서 고통받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기성세대가 되어 학교로 돌아온 은영(이미연)은 여전히 ‘늙은 여우’와 ‘미친개’가 쏟아내는 폭력을 막아서지 못 한다. 시스템의 공고함을 핑계삼아 맥빠진 위로를 건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20년이 지나, [여고괴담]을 다시 보고 있는 우리들도 그동안 무엇하나 바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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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앤건 = 글: 김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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