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멜로영화의 건재함을 증명해내고 있는 영화 <너의 결혼식> 흔한 첫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남자 주인공 황우연의 짝사랑의 대상이 되는 여자 주인공 환승희 캐릭터를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40대 중년의 남성 감독이 뼈대를 세운 캐릭터에 살을 붙인 것은 바로 환승희를 연기한 배우 박보영이었다.
(※ 본문 내용은 영화 <너의 결혼식>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우 박보영이 <너의 결혼식>에 출연을 확정한 것은 2015년이다. 투자배급과 상대역 캐스팅 등으로 난항을 겪다 촬영을 개시한 것은 무려 2년이 흐른 2017년 9월이 되어서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박보영은 감독과 환승희 캐릭터의 감정과 전사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연기를 하면서도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은 남녀 스태프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물어가며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했다는데 그렇다면 박보영의 제안으로 바뀐 장면들은 어디일까?
[하숙집 스틸]
영화에서 우연은 승희와 재회하기 위해 필사적인 수험생활을 거쳐 명문 한국대 입학에 성공하고 드디어 승희와 다시 만난다. 우연은 승희가 사는 하숙집에까지 따라 들어가는데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승희가 우연에게 ‘저기가 우리 하숙집’이라고 알려주는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보영은 ‘나 남자친구 있어’라고 먼저 말을 꺼낼 만큼 선을 확실히 긋는 승희가 이런 말을 한다면 괜히 여지를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감독과 상의 끝에 이 대사는 삭제되었다.
[소정 소개 스틸]
의상실습실에서 승희의 친구 소정(신소율 분)이 승희에게 우연을 소개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후 우연을 만난 승희는 소정을 소개받지 않겠냐고 묻는다. 이 장면을 두고 박보영은 승희가 우연에게 왜 소개를 시켜주려 하냐고 감독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석근 감독은 ‘승희는 우연이를 순전히 친구로 생각해서 소개를 시켜주려 한 것’이라고 답했다고. 이에 박보영은 나를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른 여자를 소개받겠냐고 묻는 행동은 자칫 다른 의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의견을 냈고 이를 반영해 일부 대사가 수정되었다고 한다.
[춘천 산토리니 스틸]
모처럼 잡힌 광고 촬영에서 잘리고 낙담한 승희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우연은 석양이 아름다운 장소로 데려간다. 옛날 얘기로 기분 전환을 한 두 사람은 미묘한 눈빛을 교환하게 되는데 우연이 키스를 하려는 찰나 승희가 고개를 돌린다. 애초에 시나리오 상에서는 이 장면에서 둘이 키스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보영은 ‘환승희’가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여자친구가 있는 우연과 분위기에 휩쓸려 키스를 해버리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우연을 연기한 김영광 역시 박보영의 해석에 동의했고 논의 끝에 승희가 고개를 돌리고 나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 씬에는 “나는 너가 편하고 좋아. 그런데 넌 여자친구가 있잖아.” 라는 대사도 있었는데 이 역시 ‘여자친구가 있잖아’ 하면 사실상 우연에게 ‘헤어지고 오라’는 얘기가 되지 않냐는 박보영의 의견이 반영되어 ‘나는 너가 편하고 좋아’ 라고 하면 우연이 “그럼 됐어”하는 대사로 정리되었다고.
[이별장면 스틸]
승희부의 장례식장에서 우연이 결정적인 말실수를 한 뒤 승희가 우연에게 mp3플레이어를 돌려주며 헤어지자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원래 이석근 감독은 박보영에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매몰차고 차갑게 돌아서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우연이가 “차라리 날 때려”하면서 자책하자 ‘환승희’를 연기하는 박보영은 눈물이 나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이때 돌아서서 펑펑 울며 걸어가는 승희의 모습은 사랑을 너와 내가 함께 했듯이 이별 역시 누가 맺음을 지었건 간에 둘 모두 마음을 다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연과 승희 스틸]
남자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된 여러 멜로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매력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사랑에 실패하는 영화에서는 특히 그랬다. 이 영화의 결말은 사랑이 이루어지냐 아니냐가 아닌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며 관계를 통한 ‘성장’에 대해 말한다. 우연을 성장시켜 준 승희 캐릭터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말이다. <너의 결혼식>에서 박보영이 바꾸어 낸 대사 한 줄,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그만큼 의미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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