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극적 효과가 진부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분노로 이어지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 즉시 신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블라드의 태도는 분명 유치하다. 400년 이상 고뇌와 외로움 속에 살다가 미나를 만났을 때의 감격은 이해할 만하지만, 미나에 대해 드러내는 감정이 소유욕과 다를 바 없고 조나단에 대해서는 질투일 뿐이다. 긴 세월이 주는 현명함, 악마가 되겠다던 사람의 결의,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카리스마 따위는 흔적도 보이지 않고, 하이틴 연애 소설에서 무수히 반복하는 미숙한 감정들만 끈적인다.
감정선이 이러니 연기 연출에도 한계가 보인다. <드라큘라>에서 배우들은 모두 허공에 떠 있는 편이다. 개리 올드만의 드라큘라 연기는 분명 대단하다. 그는 많은 메이크업을 선보이며 젊은 신사부터 늙은 광인, 야수와 군주, 사랑에 슬퍼하는 남자와 비열한 악마까지 오갔고,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돋보인 것은 발군의 표현력과 강렬한 에너지 때문이다. 캐릭터의 감정에 모 아니면 도의 단계밖에 없으니 배우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과 광기만 오가는 드라큘라 연기는 모든 순간이 클라이막스다.
미나는 초반, 순수한 성적 욕망과 정숙함에 대한 강박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중반 이후 그녀의 태도가 변하는 계기들은 앞서 설정한 이런 고민과는 무관하다. 원작 소설의 미나는 드라큘라의 추격을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며 능동적이고 지적인 근대적 여성상의 면모를 갖고 있는 편인데, 영화에서의 미나는 두 남자의 등, 퇴장에 맞춰 오락가락하는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여성 캐릭터로 퇴행했다. 드라큘라와 미나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 비극성을 부여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성숙한 두 남녀의 성격까지 사춘기 애들처럼 만든 것이다.
코폴라 감독이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야기가 심오하냐 진부하냐 하는 문제와는 무관했던 것 같다. 오히려 이 통속성, 신파성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뚜렷한 강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0년 동안 B급 호러 문화의 왕자가 된 소재를 A급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오히려 이 작품과 장르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 같다. 대중적인 문화 상품의 과장된 취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식을 더하기로 하고, 그 장식이 전형성과 독창성의 균형을 통해 완성되어야한다는 것을 더 우선시한 것 같다.
코폴라는 미술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필름에 담고자 했다. 19세기 통속극의 대중성을 마술쇼나 패션쇼에 버금가는 화려한 볼거리로 극대화 시킨 것이다. 중세와 19세기 건축 양식을 철저히 구분한 세트는 다분히 서구적이다. 그러나 그 안에 인물들이 입는 의상들에는 동양적 색채를 진하게 가미했다. 일본인 의상 디자이너 에이코 이시오카가 디자인 한 의상들은 일본 전통 공연 예술인 가부키를 모티브로 했다. 원작이나 기존 드라큘라 영화나에서 드라큘라는 언제나 검은 의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핏빛 갑옷과 가운 등은 더욱 강렬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의 의상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모티브로 삼아 영화의 주제를 더욱 강조했다.
필름에 담긴 수많은 특수효과에는 디지털 눈속임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한 화면에 여러 장소와 시간대의 그림이 겹치는 장면이 많다. 회상, 그리움의 대상이나,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불안감은 그 대상이나 눈동자가 같은 화면에 나타난다. 이는 대부분 2중 노출이나 매트 촬영에 의한 합성이다. 지도를 들여다보는 조나단 하커의 얼굴에 지도의 경로가 보이는 장면이나 창밖의 붉은 하늘에 드라큘라의 눈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 등은 프로젝터의 적절한 활용을 이용해 현장에서 필름에 담은 그대로다. 그 밖에도 미니어쳐, 대역 등의 아날로그적 트릭을 적절히 사용했다. 그래서 완성된 영화의 신기한 장면들은 CG의 생경함보다 마술쇼 같은 친숙한 느낌이 든다.
코폴라의 철저한 대중 취향 공략은 성공적이었다.
급부상하는 청춘스타 키아누 리브스는 목석 같은 연기로도 많은 여성 팬들을 끌어들였고, 그들은 현란한 색채의 화면에 감탄하면서 드라큘라와 미나의 400년에 걸친 애절한 사랑에 감격했다. 개봉 첫 주 3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의 극장 수입을 올렸다. 재정난을 겪고 있던 코폴라 자신의 제작사의 오랜 부채를 이 한방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 <드라큘라>의 본질은, 가장 돈이 궁한 순간에 현실적인 타협을 택한 거장의 유연함이 탄생시킨 걸작 오락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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