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악인을 찾아가는 ‘악인열전’. 세 번째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의 작가를 동경하고, 사랑하고, 죽이려 했던 여자, 애니 윌킨스에 대한 이야기다. 폴 셸던은 ‘미저리’라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기 연애소설 시리즈의 작가다. 어느 날 눈폭풍을 만나 교통사고가 나지만 ‘미저리’의 광팬 애니 윌킨스에 의해 구조된다. 애니는 폴이 소설 속의 ‘미저리’를 죽이고 시리즈를 끝내려는 것을 알게 된 후, 외딴 집에 그를 감금한 채새로운 미저리 시리즈를 강제로 집필하게 한다.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리는 장면과 미저리의 마지막 편 원고를 불 지르는 장면. 폴 역의 제임스 칸은 <대부>에서 마피아 패밀리의 장남이자 다혈질 상남자로 나오지만, 여기서는 자신의 팬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작가역이다.
케시 베이츠가 열연한 애니 윌킨스는 전형적인 뮌하우젠 증후군(Münchausen syndrome) 환자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꾀병을 부리거나 자해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애니는 그중에서도 뮌하우젠 신드롬 바이 프록시(Munchausen Syndrome by Proxy)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돌보는 아이나 애완동물을 고의로 아프게 하고, 극진히 간호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시하면서 쾌감을 얻는 식이다. 같은 증상으로 일본에서 자신의 친딸 3명에게 수돗물과 음료수를 주사해 살해한 다카기 카오리가 있었고, 간호사 출신이면서도 스티븐 호킹을 지속해서 학대한 그의 부인이 있다.
애니도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병원의 영유아를 몰래 학대하거나 살해한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언론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드래곤 우먼’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저질렀던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놓은 것은 사람들의 관심에 목매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극 중에서 애니는 폴에게 “나 잘했어요?”라며 끝없이 자신의 역할을 확인받으려 하거나, “인기작가와 식사를 하다니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할까요?” 같은 대사를 많이 한다. 데이트 매칭을 해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빠진 그녀는 언제나 화려하고 로맨틱한 관심이 자신에게 꽂히길 꿈꾼다. 그녀가 즐겨 듣는 음악은 리바라치. 역사상 가장 화려한 피아니스트이자 미국 쇼컬쳐를 만든 장본인이었던 리바라치의 음악은, 애니가 끝없이 동경하던 판타스틱한 유명인의 인생 자체였다. (리바라치의 삶은 얼마 전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으로 개봉한 전기영화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저리>에서 케시 베이츠가 열연한 애니 윌킨스 희로애락 4종 세트
캐시 베이츠가 애니 윌킨스를 연기한 이후, 우리는 연인의 관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여자를 ‘미저리’라고 부른다. 케시베이츠는 이후 스티븐 킹 원작의 <돌로레스 크레이본>에서 또 한 번 외딴 집에서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여자를 열연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언제나 ‘미저리 아줌마’로 기억한다. 감정 기복이 심한 애니 윌킨스의 다양한 표정을 모아놓고 보면 이게 한 사람의 표정인가 싶을 정도인데, 싸이코 역할을 한 배우는 많지만, 이렇게 진폭이 큰 표정은 흔치 않다. 케시 베이츠는 이 역할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녀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는데, <후라이드 그린토마토>에서는 남편의 관심이 고픈 우울증 아줌마로 나온다. 홧김에 주차구역을 가로챈 젊은 여자들의 스포츠카를 밝게 웃으며 연속 6번 박아대는 표정은 그녀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몇 년 사이 만들어진 인터넷 용어 중에 ‘관심병자’라는 말이 있다.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하거나 허풍을 떠는 사람을 일컫는다. <미저리>는 스티븐 킹이 비행기 안에서 꾼 악몽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언론이나 팬들의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해서, 개인적인 모습을 좀처럼 노출하지 않던 스티븐 킹의 자아가 많이 반영된 작품이다. 지나친 관심이 싫은 사람이 쓴 관심병자 이야기랄까. 사람들이 주는 관심이나 인기는 정작 스티븐 킹과 같은 수준으로 얻고 나면 오히려 진절머리나는 것일지도. 그러니 타임라인에 올린 사진의 ‘좋아요’를 온종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우리들의 ‘관심병’을 제발 그만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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