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에서 이순신이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은 바로 부하 장수 안위다. 안위 역의 이승준은 이순신이 말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을 몸소 겪으며, 그 두 감정의 변화를 절제된 표정 연기로 잘 표현했다. 40대 배우다운 원숙함뿐 아니라 마치 신인처럼 자신의 다채로움을 뽐내고 있는 배우, 이승준이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
1. 2000년대 초반 : 독립 영화들과의 만남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극단 인혁에서 연극을 하던 중, 몇 편의 단편영화에 출연한다. <킬미> 양종현 감독의 <개집이 있던 자리>(2001)에서는 문정희와 연기 인연을 맺었고, <우리동네> 정길영 감독의 <정말 몰랐습니다>(2001)에서는 순진한 대학생으로 출연, 당시 아직 학생이던 이선균이 연기한 건달과 유쾌한 맞짱 한판을 벌인다.
2. 무대의 주인공, 스크린의 단역
<플라스틱 오렌지>(2001)나 <관객모독>(2005) 등의 연극에서 그의 역할은 점점 비중이 커진다. 반면에 영화와의 인연은 별로 깊지 않아 <오! 브라더스>(2003)의 모텔 벨보이 역할이나 <빙우>(2003)의 펍남1, <썸>의 사이버 수사대 검색대원 등 단독샷도 거의 없는 ‘아르바이트’ 수준의 배역만 연기한다. <완벽한 부부>(2006)라는 드라마에서도 검사 역할로 몇 장면 출연하는데, 이지적인 마스크가 브라운관에도 적합함을 보여주었다.
3. 2000년대 후반: 계속된 독립영화 출연과 김한민 감독과의 만남
김지운 감독의 조연출이던 황동궁 감독의 단편 <한강대교>(2008), 영화아카데미 출신 소상민 감독의 장편 <나는 곤경에 처했다>에서 주인공의 선배 역할 등 독립영화 진영에서 다시금 활발하게 연기하던 중, <핸드폰>에 출연하면서 김한민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4. 지식인과 마초남의 양면
의료인 역할이 잦다. 같은 소속사 배우인 박해일의 <심장이 뛴다>(2010)에서 비중 있는 의사 역할을 맡았고, 연극 <33개의 변주곡>에서 남자 간호사였다. 한편 tvN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에서는 13회부터 형사 역할로 출연해 선 굵은 마초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2011년 김한민 감독과의 두 번째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쥬신타의 오른팔 무장 완한 역할로 꽤 긴 러닝타임동안 등장하는데, 용맹하면서도 지략가인 캐릭터도 좋았고,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대중적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계기가 된다.
5. 2011~12년: 마초 이미지를 벗어나 보자
김조광수 감독은 <최종병기 활>(2011)의 마초 중 한 명에게 게이 연기를 꼭 시켜보고 싶었고, 이승준은 계속된 마초 역할에서 벗어난 연기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이승준은 극 중 감초들인 게이 5인방 중 다혈질 게이 마담 경남 역을 맡으며 자신에게 생소한 캐릭터도 노련하게 소화해냈다.
6. 공중파 드라마 고정 배역
2012년 MBC 주말극 <닥터 진>에서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의료 연구기관인 활인서 삼인방 중 한 사람인 권익주 역할로 출연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입지는 단단하진 않았다. <풍년빌라>에 이어 케이블 드라마 출연으로는 두 번째로 <뱀파이어 검사>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데, 이것이 그의 배우 커리어에 중요한 발판이 된다.
7. 2013년: 국민 친구 한영훈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의 김병수 감독은 <뱀파이어 검사>에서 이승준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 이진욱의 절친이자 의사인 한영훈 역에 캐스팅하기로 한다. <나인>은 케이블이 아니라 공중파였다면 평균 시청률 30% 이상이 나왔을 거라고 하는 팬들도 많다. 그런 히트작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유일한 절친이며 담당 의사이기도 한 한영훈은 이진욱을 향한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국민 친구’라는 별명도 붙었다. 송승헌 주연의 <인간중독>에서도 주인공의 친구이자 주인공의 지병을 관리해주는 의사였다.
8. <막 돼먹은 영애씨>로 포텐셜 대폭발
케이블 방송의 신화, <막영애>의 12시즌부터, 영애의 새 직장 사장인 이승준 역으로 나온다. 마른 몸에 가는 테 안경, 도시적인 패션으로 전문직 종사자의 느낌이 나는가 싶은데, 이 인간이 말이 좋아 사장 직책을 유지할 뿐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초면에 막말을 서슴지 않는 진상 무개념 캐릭터다. 유행어는 “아우~ 소름끼쳐”. 팬클럽에서의 애칭은 ‘사장님’이다.
9. 현재: 히트작의 연속, 그 정점 <명량>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에게 가장 충직하면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장수 안위 역할에 이승준을 캐스팅한다. 두려움은 이성적인 판단에서 비롯되고, 용기는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온다. 의사, 검사 등의 이성적인 역할부터 다혈질 게이, 무사, 도박중독자 같은 감정적인 역할까지 노련하게 소화해내는 이승준이 안위의 캐릭터에 잘 부합한다. 실제로 <명량>의 촬영은 <막영애>를 시작하기 전에 끝났는데, 후반 작업이 길어지면서 <막영애>보다 나중에 개봉한 것이다. <나인>의 촬영 또한 <명량>과 촬영 일정이 겹쳤다고 한다. <막영애>에서 마르고 까불거리던 진상 사장의 모습은 <명량>의 안위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안위 역할을 위해 살을 더 찌운 것이 아니라, <막영애>의 캐릭터에 맞게 살을 뺐어야 했던 것이다.
10. 이후: 여전히 다양한 캐릭터와의 만남
<명량>의 성공으로 인터뷰도 늘어나고 알아봐 주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그의 차기작 행보는 한결같고 겸손하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는 주인공 에릭의 주변인으로 출연, 실제로는 띠동갑도 넘게 차이나는 김슬기와 로맨스 구도를 형성 중이다. 박해일이 주연하는 <제보자>의 예고편에도 슬쩍 얼굴을 비쳤다. 올가을에 개봉할 <카트>(2014)에서는 비정규직 종업원을 부당해고한 대형마트 회사 측의 입장을 옹호하는 최 과장 역을 맡아, 왜군이 아닌 아줌마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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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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