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이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틈새에서 개봉했다. 그런데 이 영화, 도무지 흥행시키기 어렵다는 여배우 투톱 영화인 데다 감독도 신인이다. 인기 감초 배우도 없고, 조연의 상당수가 신인이거나 무명에 가깝다. 베일에 싸인 남자 탕 역할의 조복래는 조금 다르다. 최근 들어 눈에 익기 시작한 얼굴이다. 특히 그 목소리가 기억난다. 조복래는 얼마 전 <쎄시봉>에서 송창식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던 바로 그 배우 조복래다.
조복래는 198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그는 애니메이션 성우를 꿈꿨다. 일요일 아침이면 디즈니 만화를 꼬박꼬박 챙겨봤고, 일본 애니메이션들도 섭렵했다. 고3 때는 성우 스터디 모임에도 나갔다. 그는 성우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연기를 전공하려고 했다. 그래서 다니기 시작한 연기학원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크나큰 매력을 느끼고, 진로를 수정했다.
그는 원래 관심사가 다양했다. 고등학교 시절 프로 복서로도 활약했고, 밴드부 보컬도 했다. 흔한 사춘기 남자애들처럼 메탈 음악에 빠졌다가 산울림의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취향은 점점 포크와 민중가요 등으로 향했다. 2000년대의 십 대 소년이었지만 송창식, 김광석, 조용필을 좋아했다. 검열과 규제가 심했던 70, 80년대 가사의 은유적 표현들에 감동했다. 직접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연기에 몰두하게 되면서, 스타일이나 연애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2005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극단 목화에 들어가 연극을 했다. <템페스트>, <서툰 사람들>, <리턴 투 햄릿> 등 10여 편의 연극에 참여했다. 매일 같은 장면을 연습하는 것이 연극이었지만,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항상 생각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비좁은 고시원에 살면서도 연극을 할 수 있었기에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노래>와 <디셈버> 등의 뮤지컬에도 참여했다. 그는 앙상블을 담당하여 합창에 입 모양만 보탰을 뿐, 독창은 한 소절도 없었다. 조복래도 한때는 밴드부 보컬이었는데, 뮤지컬 배우들과의 실력 차이는 컸다. 노래에 자신을 잃고, 콤플렉스까지 생겼다. 그런데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다. 리허설을 하고 있으면 다른 배우들의 노래를 몰래 따라 부르곤 했다. 이런 모습을 다른 배우에게 들켜 비웃음을 산 적도 있다. 어느 날 한 배우가 갑자기 공연에 불참하는 일이 생겼다. 앙상블 담당의 조복래는 그 사람 역할을 자기가 때우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캐릭터가 부르는 솔로는 웅얼거리듯 스치는 단 한 소절뿐이지만, 그거라도 꼭 부르고 싶었다. 결국 무대 위에서 그 한 소절을 부르고 난 조복래는 왠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터뜨렸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한 대목이었다고 한다.
2013년 12월 대작 <명량>에 참여하기 전에는 독립영화도 찍어본 적이 없다. 조복래의 역할은 이순신 장군에게 목을 베이는 조선군 탈영병 역이었다. 6년을 모신 장군님이지만 열두 척으로 330 척이랑 싸우면 죽을 게 분명한데 어쩌냐며 울면서 하소연하는 장면이었다. 눈물과 메이크업이 범벅이 되도록 혼신을 다해 연기했다. 앞에 서있던 최민식이 지금은 풀샷이니 그렇게 디테일한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해줬다. 카메라는 멀리 산꼭대기에서 찍고 있었다. 막상 클로즈업 연기를 해야 할 때는 눈물이 메말랐다. 카메라 연기의 기본조차 모르는 초짜 영화 배우의 첫 영화는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다음에는 장진 감독의 <하이힐>에 캐스팅되었다. 악역 오정세의 오른팔 역할이었다. 두 번째 영화인데도 잘 적응되지 않았다. 오정세의 유연한 연기와 김민교의 만화같은 리액션 옆에서 조복래는 어색할 정도로 딱딱하고 심각한 캐릭터였다. 이를테면, 매사에 고지식하고 FM으로만 일관해서 재미없는 직장 동료를 보는 듯했다. 혼자 어두운 표정을 하고, 남다른 저음으로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부하라는 역할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그의 캐릭터는 점점 살벌해졌다. 정보를 얻기 위해 망설임 없이 상대를 고문한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죽어버린 자기 보스를 보고 “아이고, 우리 회장님 가셨네~”라며 이제껏 감춰둔 능청을 떨더니, 번개 같은 발차기를 선보이며 관객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반전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냉정하고 잔인한 캐릭터를 연기해오고 있었다.
진짜 반전은 한 달 후에 개봉한 다른 작품에서 펼쳐졌다. 옴니버스 영화 <원나잇 온리> 중 김조광수 감독의 <하룻밤>에서 조복래는 고3 남학생 용우 역을 맡았다. 용우는 자연스런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수다스럽고 호기심 많고 다소 방정맞은 게이 소년이었다. 전작 <하이힐>과는 180도 달라진 연기를 선보여 어느 모습이 진짜 조복래의 모습에 가까운 지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도 출연했다. 오랜만에 부활한 장진표 코미디 <우리는 형제입니다> 였다. 여기서 조복래는 소매치기 형제로 출연했다. 충청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어머니가 쌍꺼풀 수술 잘못해서 주무실 때도 눈을 감지 못하신다며 울부짖는 코믹연기는 차세대 신 스틸러의 등장을 예감하게했다.
그 외에도 <몬스터>에서 경찰 역, <소원>에서는 인형 탈 알바역 등 단역으로도 출연한 것을 포함, 스물아홉 살 조복래의 영화 이력은 일단 이 정도 수준이었다. 그는 자기 외모가 어떤지 잘 알고, 자기처럼 생긴 배우가 이른 나이에 뜨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한 일이라는 것도 알았기에 초조해 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현석 감독의 <쎄시봉> 오디션 소식을 접했다. 송창식의 젊은 시절을 연기할 배우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노래로는 뮤지컬 배우들을 이길 수 없겠지만, 외모와 감성은 충분히 어필해볼만 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자기만큼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복래는 어릴 때부터 송창식의 음악과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동경해왔다. 팬심으로 오디션을 본 셈이다. 송창식의 감성이라면 자기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현석 감독이 조복래에 대해 기억하는 것도 비슷하다. 경쟁률 250:1의 오디션은 지난했다. 여러 A급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 실력도 송창식의 느낌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결국 노래 면을 포기하고 외모와 느낌 위주로 뽑기로 마음먹었을 때, 조복래가 보였다. 그는 개량한복에 부분 가발까지 쓰고 담배 가게 아가씨를 불렀다. 가창력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송창식처럼 자유로우면서도 싼티 나지 않는 표현력이 돋보였다고 한다. 윤형주 역의 강하늘과 대비되는 외모도 송창식과 닮아 보였다. 자유분방한 옷차림에 대한 시선도 아랑곳 않고, 무대에 서면 당연하다는 듯 관객을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자신감을 기대할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조복래는 자신의 우상을 연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숙제는 이제부터였다. 영화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래 연습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송창식의 경지를 넘볼 수는 없었다. 송창식의 알려진 모습이나 노래를 모사하기보다 다른 면을 표현하기로 했다. 그는 지금의 송창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송창식이라는 캐릭터의 순수했던 청년 시절을 해석해내야 했다. 그 표정과 감성을 가져오고, 그것을 자신의 이십 대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 시절의 서울말도 연습해야 했다. 영화가 공개된 후, 조복래는 실제 쎄시봉 멤버와의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배우로 꼽혔다. 강하늘과 정우, 한효주의 사랑 이야기에서 조복래는 때로 이야기의 균형을 잡고, 감초 역할도 해냈다. 복고 감성의 첫사랑 이야기라는 데서 착안, <건축학 개론>의 납득이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그의 연기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쎄시봉>은 신파와 낭만이 지나쳤다는 아쉬운 평가를 받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했다. 하지만, 조복래의 얼굴과 목소리는 영화팬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이번에 <차이나타운>에서 조복래가 맡은 역할은 탁이라는 베일에 싸인 남자다. 그는 보관함에 버려진 어린 일영(김고은)을 엄마(김혜수)에게 팔아버린 장본인이다. 이후 일영의 왜곡된 삶은 탁에게서 비롯된 셈이다.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단지 돈이 필요했을 뿐이고, 그 이상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었는 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대가를 치르듯, 탁의 삶도 일영으로 말미암아 곤란해진다. 말 수가 적고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그로 인해 영화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조복래는 앞으로도 여러 영화를 통해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이미 촬영을 마친 <소수의견>은 개봉을 둘러싼 외압의 논란이 있지만 잠정적으로 6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소수의견>에서 함께 출연한 윤계상과는 다음 작품 <극적인 하룻밤>에서도 또 한 번 조우한다. <극적인 하룻밤>은 연우무대의 동명 연극이 원작으로, 각자 실연에 상처받은 두 남녀가 원나잇 스탠드 이후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다는 로맨틱 코미디다. 조복래는 윤계상이 연기할 정훈의 친구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또 2006년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인 <탐정>에서 형사인 권상우와 성동일에게 쫓기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쎄시봉>에서 드러낸 실력만큼 비중이 큰 역할들은 아니다. 하지만 조복래는 꾸준히 자신을 보여줄 것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속도에 관해 얘기하곤 했다. 서른의 나이가 늦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연기자 조복래에게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젊음과는 상관없다고 여긴다. 늦어지더라도 그만큼 연기 내공을 더 쌓고 자신감이 생겼을 때 관객을 만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배역에 맞게 변신하는 판단력과 순발력이 남다른, 명민한 배우임을 보여줬다. 그는 어떤 기회도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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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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