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스타 비하인드

<간신>의 이유영, 청초한 시골 아낙에서 망국의 색녀로

by 꿀마요 2021. 12. 4.



오늘 라이징 스타는 <간신>에서 조선의 법도가 절대 용납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요녀, 설중매를 연기한 신예 이유영이다.

민규동 감독의 첫 사극 <간신>에는 연산군 시대, 간신 임숭재와 장녹수라는 양대 권력의 장기판에서 놀아나는 두 처녀가 나온다. 설중매와 단희는 연산군의 몸과 마음을 홀릴 단 한 명의 ‘흥청’으로 뽑히기 위해 경쟁하는 양 팀의 에이스다. 그러나 이들은 타의보다 자의로, 오로지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그들의 후원자들을 압도하는 전의를 불태운다. 설중매는 부귀영화를 위해 기꺼이 섹스를 무기로 삼는 여자로, 억압된 민중의 고통과 혁명의 욕망을 대변하는 단희와 대조된다.

&nbsp; &nbsp; 이미지=영화&lt;간신&gt;



그녀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 임숭재와의 내기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흥청이 되기 위해 직접 판부사 유자광을 설득하고, 왕비 장녹수를 만나 자신을 어필한다. 요부 장녹수는 한눈에 설중매의 색기가 막강함을 알아봤고, 적극적으로 그 무기를 갈고 닦는다. 설중매의 장기는 과감한 도발이다. 모두가 자신의 미모나 목소리나 재기를 앞세워 은근한 밀당을 시도할 때, 설중매는 처음부터 사내의 눈에 자신의 몸을 바싹 들이대며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말솜씨도 뛰어나서 영화에 나오는 음담패설 중 가장 수위 높고 기발한 대사는 대부분 설중매의 몫이다.

임숭재가 연산군을 자기 손에 놀아나게 하고자 제안한 것은 조선 8도의 1만 미녀다. 이제껏 연산군을 다룬 작품들이 장녹수의 치마폭에서 뒹굴고, 1천 궁녀와 놀아나는 연산의 모습까지는 그려냈을지 모르나, 작품 전체를 1만 명의 할렘 이야기로 끌고 간 영화는 <간신>이 처음이다. 차마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장면들을 스크린에 옮기는 영화인만큼, 배우들의 노출 수위도, 성적 묘사의 수위도 높다. 특히 처음부터 색기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결승까지 진출하는 설중매는 부담이 큰 역할이다.

이 직설적이고 야심 찬 욕망의 여인을 연기한 배우 이유영은 이 영화가 겨우 세 번째 장편 영화다. 첫 영화는 <숨바꼭질>로, 이유영은 여기서 눈에 띄지도 않는 단역을 맡았다. 아무것도 없던 그녀가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는 주인공을 맡았다. <26년>의 조근현 감독의 2014년 작 <봄>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재학 중이던 이유영은 소속사에서 이 시나리오를 받아 읽어봤다. 서정적인 풍경과 섬세한 캐릭터에 반한 그녀는 소속사 대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직접 조근현 감독을 찾아가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학생 단편영화들에서나 연기해 본 것이 다였던 무명의 대학생을 주인공에 캐스팅하는 것은 제작사 측에서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근현 감독은 이유영을 만나본 후, 주인공 민경에 가장 잘 어울릴 배우라고 확신했다.

이미지=영화 &lt;봄&gt;

<봄>은 60년대 말 어느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불치병으로 인해 삶과 예술을 등지고 우울하게 살아가는 조각가가 있다. 그의 아내는 우연히 가난한 아기엄마 민경을 만나는데, 그녀의 가늘고 긴 팔다리가 남편에게 영감을 줄 거라고 믿고, 그녀에게 누드모델 일을 제안한다. 망나니 같은 동거남에게 시달리며 두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 가난한 민경은 사모님이 제시한 금액을 듣고 일을 수락한다. 조각가는 그녀에게서 예술적인 영감을 받아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부끄럽고 두렵고 어색하기만 하던 민경도 점차 자신이 예술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봄>은 비록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소박하면서도 수려한 풍광에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돋보인 수작이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에 대한 시선은 익숙하게 본 듯하지만, 절대 뻔하지 않다. 예술이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만큼, 예술에 영향을 준 것은 사람의 순수한 모습이다. 그 순수함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에서도 발견되고, 그보다 먼저 그녀의 마르고 가냘픈 육체에서 발견된다. 사람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이 예술에 반영되고, 예술이 다시 그들의 삶에 반영되고, 그렇게 바뀐 삶의 태도가 다시 예술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 주제는 결국 이유영이라는 신인배우를 통해 시작되고 완성되었다.

서울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기에 경상도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가난에 찌든 민경의 역할을 위해 쫄쫄 굶어가며 5kg이나 감량했다. 그런 이윤영의 노력 덕분에 영화는 더욱 아름답게 완성되었고, 아리조나 국제 영화제 최우수 외국 영화상, 댈러스 국제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등 해외 영화제에서 8개나 되는 상을 받았다. 이윤영의 연기도 호평받아 그녀는 밀라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에 이어 영화 기자들이 뽑는 올해의 영화상 신인상도 받게 되었다.

이유영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피아니스트나 교사가 되고 싶어 하다가 나중에는 미용사가 되고 싶어졌다. 이유영은 굳이 대학에 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자격증을 취득해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부모님을 생각했다. 자식이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기분을 선사해 드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공부는 자신이 없었고, 실기로 도전할만한 전공을 생각해보니 연기가 가장 만만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22살의 나이에 한예종 연극원에 입학했다. <간신>에서 함께 열연한 임지연 보다 한 살이 많지만, 학번으로는 이유영이 1년 후배다.

이미지=&nbsp;영화&nbsp;&lt;고란살&gt;

수업에서는 무대 연기만 배웠지만, 한예종 영상원 학생들의 단편영화에 20여 편 출연하면서 영화의 매력을 즐기게 되었다. 최근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서정신우 감독의 단편 <고란살>에서는 독립영화계의 하정우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 원태희와 출연했는데, 영화는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오태헌 감독의 <꽃은 시드는 게 아니라...>, 남궁 선 감독의 <남자들>, 이대영 감독의 <그녀의 냉면 계산법> 등 여러 영화제를 통해 호평받은 단편영화들이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여럿 포함되어 있다.

이미지 = 영화 &lt;남자들&gt;(좌), 영화&lt;꽃은 시드는게 아니라&gt;(우)

생각지도 않았던 예술의 세계에 뒤늦게 들어선 점이나, 자신의 온몸으로 예술을 체험하게 되면서 삶이 바뀐 점에서 이유영의 삶은 <봄>의 민경과 닮았다. 민경은 조각가에게 모델 일을 시작하고 나서 행복해졌다고 한다. 뭔가 값어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남편은 두 아이만 두고 월남에서 전사했다. 남편의 전우라며 접근했던 지금의 동거남은 도박 중독에 폭력을 일삼는 망나니다. 할 줄 아는 일은 설거지와 청소가 전부였던 그녀는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모델을 하게 되기 전 그녀는 딸에게도 체념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엄마였다. 그런 그녀가 행복해졌다고 한다. “잘 살고 싶어졌습니다.” 민경의 고백은 소박하지만 힘이 있었다.

<간신>의 설중매도 이유영과 닮은 점이 있다. 데뷔작을 찍을 때도 그렇고, 차기작 <간신>에서도 그렇고, 그녀의 수위 높은 노출 연기를 걱정하고 염려한 사람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었다. 영화의 주제나 누드의 의미보다 선정적인 잣대로 필터를 덧댄 시선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 본인은 그 순간을 즐겼다고 한다. <봄>을 찍을 때는 캐릭터에 푹 빠져들었고, 자기 몸이 예쁘게 나오는 게 좋다는 생각만 들어서 즐거웠다고 한다. <간신>은 훨씬 규모가 큰 영화였고 몸도 더 힘들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즐거움에 더 집중했다고 한다. 자신의 장점을 알고 원하는 바를 알기에 세상의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기며 노력하는 설중매의 진취적인 태도는 이유영과 만나 좋은 합을 이뤘다.

이미지=영화 &lt;간신&gt;(좌), 영화&lt;봄&gt;(우)



<간신>의 설중매는 <봄>의 민경과는 많이 다른 인물이다. <간신>의 설중매는 언제 누구 앞에서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왕비인 장녹수 앞에서도 당당하게 눈을 빛내며 자신의 욕망을 표출해 보이는 인물이다. <봄>에서는 반대였다. 무기력하던 민경은 주로 눈을 내리깔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인물이다. 부끄러울 때나 뭔가를 느끼기 시작할 때는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눈빛과 표정이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끌어 내는 모티브가 된다. 그녀가 눈을 들었을 때 관객이 보는 것은 연한 갈색의 커다란 눈동자다. 좋은 눈이다. 선이 가는 마스크지만 이윤영은 그 눈으로 체념과 천진함과 야심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연기는 기술적으로 아직 미흡할 수 있다. 스물여섯 살, 2년 차 영화배우의 연기에 아직 깊이와 노련함을 말하는 것은 이르다. 하지만 단 두 작품으로 극단적인 청초함과 색기를 넘나들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누군가의 초년 시절이 엿보인다. 수년 뒤 누군가 한국 여배우의 계보를 만든다면, 이유영의 이름은 전도연이나 문소리 가까운 곳에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RUN&GU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