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이 제작하고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하는 '랑종'. 트레일러 공개 이후 장르 팬들의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을 세계 장르팬들에게 알렸던 초기작 '셔터'를 소개합니다.
사진작가인 턴과 애인 제인은 밤길에 한 여자를 친다. 두려움에 뺑소니를 저지르는 두 사람. 죄책감 때문인지 둘은 정체불명의 귀신에 시달리게 되고, 턴이 찍은 사진에서도 이상한 것들이 찍힌다. 제인은 이 불길한 일들이 자신의 뺑소니 때문이라고 여기지만, 그날 그 장소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턴의 대학 친구들이 최근 하나 둘 씩 자살했으며, 남은 친구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제인은 턴의 심령사진에 관해 추적하다가 학교 과학실에서 귀신이 나온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날 밤, 차로 친 여자와 똑같이 생긴 나트레라는 여자의 존재에 관해, 그리고 턴이 그녀와 연인이었던 사실에 관해 알게 된다.
턴은 사실을 고백한다. 언제나 외톨이던 나트레는 친절을 베푸는 턴과 잠시 연인으로 지냈지만 그에게 지나치게 집착했고, 이로 인해 턴이 힘들어하자 친구가 해결해주겠다며 나선 뒤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제인은 턴의 친구들이 자살하는것과 나트레의 실종, 그리고 자기들 주변에 계속해서 출몰하는 귀신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트레의 불행한 자살과, 자살의 원인이 된 추악한 진실이 드러난다.
<셔터>의 이야기에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다. 한 맺힌 원귀가 출몰하고, 그 한의 근원을 찾아 풀어주는 이야기다. 원한이나 죄책감이 지배적인 감정이며, 권선징악의 결말이지만 해피엔딩은 아니다. 시간순으로 진행되다가 설명이 필요할 때는 별 고민 없이 회상 장면을 이용한다. 귀신이 나오는 동양 공포영화를 몇 편만 봤어도 다음 전개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전형적인 이야기다.
<셔터>만의 차별점은 이야기를 진행하고 해결하는 데 카메라와 심령사진이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심령사진이라는 것은 사실 이 당시(2004년)에도 이미 식상한 소재였다. 다만, 이제껏 단편적인 사연을 담은 개개의 사진으로떠돌던 것들을, 90분짜리 서사로 확장한 방식이 그럴싸하다. 사건에 관한 힌트를 심령사진에서 얻고, 심령사진을 통해 찾아간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 심령사진이 되고, 그 심령사진이 다른 심령사진으로 이어지며,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론 다음 상황이 짐작되는 뻔한 이야기와 심령사진 몇 장만으로는 관객을 사로잡는 공포를 만들어내기에 부족하다. 그럼 <셔터>가 별로 무섭지 않은 영화인가? 정 반대다. <셔터>는 어지간한 공포영화 팬들이 아니고서는 두 번 보기 싫을 정도로 무서운 영화다. 익숙한 스토리는 관객을 적당히 집중시키고, 심령사진은 집중한 관객을 적당히 긴장시킨다. 그리고이런 준비된 관객이 공포를 한껏 즐기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일단, 긴 머리의 여자 귀신이 수시로 출몰한다. 분명 나오겠구나 싶은 장면에서 반드시 나타나는데, 등장 타이밍은 정교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술도 뛰어나서 알고도 당한다. 음산하거나 놀라게 하는 음향 효과도 많다. 사운드 디자인도 좋고, 역시 짐작되는 타이밍에 터지며, 이 또한 알고도 당한다. ‘남발한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다.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루즈하게 진행될 것 같으면 빠짐없이 무서운 장면이나 음향이 성실하게 등장한다. 대단한 건 역시 타이밍이다. 관객 반응 통계에 근거해서 최적의 타이밍을 찾아내기라도 한 듯, 마치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의 투수 교체처럼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효과적이다.
그리고 주로 등장하는 귀신의 모양새가 뛰어나다. 분장도 최선을 다해 기괴하고 섬뜩하게 만들었고, 등장하는 태도도 무섭다. 귀신 역할을 한 배우의 원래 외모까지도 무섭게 느껴질 정도다. <링>이나 <장화홍련> 등에서는 귀신을 아주 결정적인 한 두 장면에만 아껴서 등장시킨 것과 달리, <셔터>의 귀신은 수시로 얼굴을 비추고, 전신을 드러내며, 다양한 행동들을 한다. 저 두 영화를 비롯한 다른 귀신들은 동작의 목적을 읽을 수가 없는 분위기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등장하지만, <셔터>의 귀신은 마치 좀비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며, 또한 집요하다.
익숙한 이야기와 익숙한 공포 효과는 <셔터>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말초적인 자극은 공포영화를 보는 주된 목적이다. 그래서 <셔터>의 넘치는 장르적 클리셰들을 관객은 알면서도 기꺼이 당한다. 전형적인 킬링 타임용 공포영화다. 두번 보기 싫은 영화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처음 볼 때도 이미 두어 번 본 영화 같은 기시감이 있다. 두 번째 볼 때도 똑같은타이밍에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세 번을 봐도 재미있을 영화다. 마치 인기 차트 아래쪽에 오래 남아있는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것과 같다. 공포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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