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러교실

완성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퍼즐, <장화, 홍련>

by 그럽디다. 2021. 7. 12.

장화홍련_감독:김지운

영화는 수미(임수정)가 정신병원에서 의사와 상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의사는 수미에게가족사진을보여주며 "이사람이누구인것같은지"를물어본다. 수미의대답이생략된채회상처럼장면이바뀌면, 수미와수연(문근영) 자매가아빠(김갑수)와함께시골저택으로돌아온다.

 

집에선젊고아름다운계모은주(염정아)가호들갑스럽게자매를반기지만자매는냉랭하게대한다. 자존심센계모는이런자매를굳이인내하지않고불쾌한감정을드러낸다. 수미와계모는노골적으로대립하는데갈등의폭은줄어들여지가없어보인다. 아빠는이들의갈등에대해무관심으로일관한다.

 

설상가상, 집에는귀신들도출몰한다. 그바람에여자들의스트레스는심해지고, 특히계모의기행이극에달한다. 사진속계모의얼굴이자매에의해훼손되고, 애완용잉꼬마저죽은채발견되자계모는겁많고연약한수연이를폭행하기시작한다.

 

계모는 수연이를 장롱에 감금하는데이어, 자루에 담아 피가 배어 나올만큼 구타하기까지한다. 아빠가 들인 여자가 수연이를 괴롭힌다며 수미는 아빠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에 대한 아빠의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반전은 한번으로 그치지않는다. 지금까지 비약과 생략으로 혼란을 거듭하던 이야기, 즉 수미의 기억의 빈틈새들이두번의반전을 계기로 퍼즐처럼 메워진다.

 


 

첫번째반전, 수미가애지중지돌보던동생수연이는사실이미죽었다.

즉, 지금까지나온수연이는유령이었다. 그렇다면계모는어떻게존재하지도않는수연이를학대할수있었을까? 이에대한해답인두번째반전, 진짜계모는내내서울에있었고, 지금까지계모는사실수미의이중인격이었다. 즉, 집에는아빠와수미만살고있었는데, 정신분열을앓는수미가때때로자신이계모인듯행동한것이다. 안방침대에서아빠를기다린계모나, 수연이(유령)를폭행한계모는사실수미였고, 계모와수미의말다툼도모두수미혼자만의행동이었던것이다.

 

장화홍련_감독:김지운

 

알려진대로영화의원전은조선후기의소설<장화홍련전>이다.

 

하지만 영화가 원전에서 차용한 것은 자매와 계모의 갈등이라는 대략의 설정뿐이다. 원전은 계모가 뚜렷한 악인으로 등장하고, 그녀의 사악한 계략에 의해 죽게 된 자매가 원귀로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다. 영화의 이야기도 전반부는 사이코계모에의해자매의안위가점점위태롭게 되는 과정을보여주었다. 하지만 제반 전들을 기점으로 자매의 죽음과 복수의 이야기는 사라져버린다.

물론 영화<장화, 홍련>의 이야기는 애초에 원전과 다른 방향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 이야기 또한 자매와 계모의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다가 계모의 폭행이 심해지는 지점까지 흘러갔다는 점은 변함없다. 그리고 제반 전들은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든지 간에, 모두 원점으로 되돌린다.

모든 것 이수미 혼자의 1인극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악인도 갈등도 사건도 피해자도 없었다는 것 이이 반전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70~80분간 끌고 온 이야기의 긴장을 허공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분명충격적인반전이다.

사실 모든 것이 수미의 망상이 만든 내면세계의이야기였다는것이드러났다면, 그 내면세계의 변화는 이후 외부세계의 이야기에어떤식으로든영향을주어야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여태까지 드러난 외부세계의이야기는없다시피하다. 수미가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것과 아빠가무기력하다는정도가전부다. 반전은주 인공 인수 미가 처음의 정신병원으로돌아가는것이외의결말을끌어내지못한다. 이야기가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아니라이전의이야기를부정하고원점으로돌려놓았을뿐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데 이 빗린치의솜씨까지는아니라고해도, <아이덴티티> 의내면세계와외부세계가맺어가는유기적관계를생각해본다면, <장화, 홍련> 의 반전퍼즐은성급한면이있다 .

 

장화홍련_감독:김지운

 

외부세계의진짜사건이벌어지는것은주인공수미의역할이끝난이후의일이다. 수미가정신분열에걸리게된원인이된사건(수연의죽음)을회상으로보여주고, 그집에남은귀신(수연)이진짜계모를습격하는것으로급하게복수극이등장하고완성된다. 이복수는회상에서드러난계모의잘못에대한복수다. 반전이전의이야기에서계모의악행은모두수미가수연의허상(유령)을향해저지른것이었다고결론내린이상, 복수가그이야기속계모(사실은수미)를향한다면이는불공정하다. 따라서주인공수미의입장에서이뒷부분의이야기는앞선 80분간의기행을설명해주는역할만할뿐, 반전이전의이야기에서유기적으로발전하여도달한결론이아니다.

 

관객의기대를배반했다는것만으로도대중영화에서반전의효과는충분하다. 영화를즐기는방법이반드시완결성을갖춘서사를따라가는것에국한될필요는없다. 실제로많은관객은엔딩크레딧이올라간이후영화에나왔던여러단서와암시들을복기하며퍼즐을맞추는것을즐겼다. 여러<장화, 홍련>분석리뷰들을보면, 관객들은이영화에서아빠와수미사이의근친상간코드를발견하거나, 더나아가자매간의동성애코드, 소아성애코드까지발견하는등다양한층위의해석들을하고있다. 침대귀신이암시하는것이수미의낙태라는분석도있다. 이들대부분나름의논리가있고, 설득력이있다.

 

장화홍련_감독:김지운

 

그런데이런다양한해석이가능한이유가, 영화의풍부한암시와상징때문만은아니라는게아쉽다. <장화, 홍련>은서사의완결성대신반전자체에중점을두는탓에너무많은디테일이생략되거나비약되며, 또스스로설정해둔규칙들을많이어기고있다. 때문에퍼즐을다맞추고난뒤에너무많은조각이남고, 또너무많은빈공간이남는다. 이것을퍼즐의완성이라고할수있을까? 이런오류가드러난가장뚜렷한예는, 수연이죽었다는사실이드러난이튿날아침, 계모는 (아마도) 수연을자루에넣고구타하고, 수미는수연을찾아다니는시퀀스다. 수연은이미죽었다는정보가없었다면이시퀀스는계모의히스테리가절정에도달하고, 그로인해자매가최대의위기에빠지는클라이맥스가되었을것이다. 하지만방금수연이죽었다고선언해버렸기때문에이어지는이강렬한시퀀스를설명할논리가사라져버렸다. 결국이시퀀스는안타깝게도절정의긴장감대신혼란만가중시키고말았다.

 

<장화, 홍련>은공들인미술과배우들의에너지로가득채운화면, 섬세한장면연출을즐기는것으로충분히그진가를맛볼수있다. 12년이지난현재까지도이만큼아름답고안타까운한국공포영화는없었다. 이야기의논리적인인과관계보다, 벗어날수없는죄책감, 그로인한절망등의감정을저절로따라가게되는영화다. 반전과논리의불완전함에잠시주춤거린다해도<장화, 홍련>이성취해낸것들이훼손되는일은없을것이다.

이미지=영화<장화, 홍련>

 

 

저작권자 ⓒintersection, 삶은영화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