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수의 규칙도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안전해야 할 방에도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순발력으로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스트레스와 공포는 이들을 극한으로 몰아간다. 경찰이던 퀜틴은 처음엔 강한 체력과 삶에 대한 남다른 의지로 일행을 이끄는리더쉽을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협조적인 워스나 부정적인 할로웨이와 갈등한다. 일행의 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데다 불안요소이기까지 한 자폐아 카잔도 귀찮아한다.
퀜틴은 점점 더 이들을 통제하려 하고, 일행의 반발이 그만큼 커지자 그는 서서히 이성을 잃는다. 워스가 이 큐브의 설계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퀜틴은 그에게 분노를 폭발시킨다. 극한의 스트레스가 폭력으로 표출되면서 그는 함정보다 위험한 존재가 된다. 의외로 카잔이 암산의 천재임이 드러나면서 결국 출구를 찾아내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고, 무사히 출구로 나가는 사람은 카잔 뿐이다.
모두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적이 있지만, 극한 상황에서 작은 사회집단을 이룬 동료들끼리 반목하는 것이 더 큰 위협이 되는 공포영화들이 있다. 좀비물인 <28일 후>의 주인공들에게 주된 적은 군인이었고, 온갖 괴물들이 활보하는 영화 <미스트>도 마트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핵심이다. <큐브>도 그 중 대표적인 영화다. 큐브에 설치된 잔인한 함정이 공포를 자아내는 주된 요소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일행 중 함정에 의해 죽는 사람은 맨 처음의 렌 뿐이다. 살아남은 카잔을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이 맞는 죽음은 인재(人災)다. 서로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게 되고 폭력을 수단으로 삼은 탓이다.
갈등이 그렇게까지 커진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회라면 나와남의 차이점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있겠지만 폐쇄된 밀실에서는 피할 길이 없으니 마찰이 심해진다. 평범한사회라면 상대와 격하게 갈등할만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자칫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스트레스 속에서자기를 통제한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자존감이 가장 강한 의사 할로웨이가 스트레스에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며, 모두를 다독이며 솔선수범하던 경찰 퀜틴이 분노 조절에 가장 크게 실패한다. 자신이 겪는 공포와 혼란에 대해 책임질 누군가를 찾아 분출해야 하는데, <큐브>에는 그 ‘적’이라 부를 만한 대상이 없고, 보이는 것은 똑같은 옷을 입은 상대방 뿐이다. 그것이 두 번째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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