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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교실

부조리한 세상의 축소판 <큐브> 3편

by 그럽디다 2021. 7. 25.

 

<큐브> 일행이 갈등하게 되는 원인  하나가 누가  큐브를 만들었는가 대한 질문이다. 이런 거대한 살인 기구를 만든자는 대체 누구며,  살인 기구의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들이 선택된 것인지에 대한 질문. 스트레스성 히스테리  아니라편집증까지 있는 할로웨이는 이런 짓을  놈들은 정부거나  산업체 뿐이라며 거대한 음모론을 펼쳐 놓는다. 이런 그녀를 피해망상이라 생각하는 퀜틴은 기껏해야  많은 싸이코의 짓일 거라고 한다.  건물의 외벽 설계자였음이 밝혀진 워스는, 큐브의 배후는 노바디(NOBODY) 혹은 에브리바디(EVERYBODY)라고 한다.

 

큐브는 어떤  사람 혹은 단체의, 하나의 목적에 의해,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시설이 아니다. ‘사람 죽이는 함정을 달고 움직이는 큐브 같은 것을 어디에  먹는다고, 누가 이따위 것을 만들겠는가? 처음부터 전체를 고민한 사람은 없었고,  결과를 예상하고 허락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돈이 돌고 있었고,  일이 있었을 뿐이다. 각자  받은 만큼 맡은 일만 했을 뿐인데, 합치다보니  결과 런 엄청난 시설이  것이다. 이미 돈을 들여 나온 결과물이니,  설계도가 쓸모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 일을 진행시킨다. 돈을 들여 시설을 짓는다. 악순환은 반복되며 일이 점점 커졌다.   돈을 들여  시설을 지어 놨으니, 써먹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사람을 납치해서  안에 집어 넣어 시설을 사용한다. 목적은 불분명했지만, 시설이 실용적이라는 것은 증명된다. 돈을 지불할 명분은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워스의 결론은 큐브를 통제하는 권력은 없다는 것이고, 실제 <큐브> 워스의 세계관 안에서  이상의 설명 없이 완결된다. (<큐브> 프리퀄 격인 속편 <큐브 제로>에서 굳이 배후 세력에 대해 묘사하며 음모론을 제안하지만, 자극적 요소만을 부풀렸을  원작의 본질적 재미를 오해한 결과다. 많은 시리즈가 그렇지만, <큐브> 본편의 진수를 제대로 즐기려면 속편들은 무시하는 편이 좋다.) 이미 존재하는 권력이 없다는 것은 질서,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폐쇄된 큐브 안에서 방향을 잃은 인간들은스스로 방향을 정한다. “출구가 과연 존재할까요?” 존재한다고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 방향을 정하는 것은 새로운 질서,  새로운 권력이다. 경찰 출신인 퀜틴은 누구보다도 먼저 질서의 필요를 느꼈고, 권력자가 되려고 나선다. 하지만 탈옥 전문가 렌이 등장하자 권력은 그에게 집중되었고, 렌이 죽고  후엔 수학 전문가 리븐이었다. 퀜틴이 리븐을 컨트롤하면서 권력 가까이 머물려 한다. 수학도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니 질서는 흐트러졌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 사이에 생산적인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통제하려는 의지가 가장 강한 퀜틴이 다음 권력을 가지려 했고, 그의 수단은 힘과 강요였다.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반발이 생겼고, 상황만 더욱 심각해졌다. 겨우 다섯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은 합리적이지 못했고, 큐브만큼이나 잔혹했기에 결국 모두가 망했다.

 

이런 무의미한 시설이 만들어지고 희생자가 생긴 원인은, 아무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큐브는 우리가 만든 세상의 축소판이다. 지금처럼 비대해진 자본주의 시스템은 돈과 노동만 있으면, 모두가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얼마든지 유지된다. 다만  결과는 큐브처럼 무의미하고도 위험한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여섯 사람은 무고한 희생자이기만 한가? 그들도  비뚤어진 시스템에 저마다 조금씩 기여했을 , 그에 대해 책임지려  적은 없다. 큐브에 갇힌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눈앞의  걸음에만 집중했고,  나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소통을 피하기만했다. 그래서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카잔이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은 희망이라고   없다. 출구 밖에 빛이 있다. 워스는  속으로 나아가길 거부했다. 바깥세상은 어차피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을 테니까. 워스가 거부한  속으로 나간 것은 카잔 뿐이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과연 자유와 평화가 있는지 설명해주지 못한 ,  속으로 사라진다.

 

 

이미지=영화 <큐브>(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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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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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의 규칙도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안전해야 할 방에도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순발력으로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스트레스와 공포는 이들을 극한으로 몰아간다.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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