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 “파시스트보다는 돼지가 낫지” (2부)

1부에서 계속...

인간이 아니면 뭐가 좋길래? 일단 겉모습이 돼지라는 점 말고는 그가 보통 인간과 다른 점은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다른 인간들에게서 벗어나 아웃사이더로 지낼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칭송하지만, 그와 더 친해지려는 사람은 없다. 마르코를 이긴 커티스가 인기인이 된 것과는 다르다. 이런 고립은 마르코 스스로 원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관심이 깊어지면 귀찮아한다. 이것은 차별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혼자이고 싶어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애니메이션<붉은 돼지> ⓒSTUDIO GHIBLI 

그는 소꿉친구이자 옛 동료의 아내인 지나와도 거리를 둔다. 다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지,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눈치채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해가 지면 그녀가 있는 아드리아노로 발걸음을 옮기고, 낮에는 그녀 근처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가 군에 재입대하거나, 더 큰 무대로 진출하는 대신 아드리아 해에 남아 있는 진짜 이유는 지나를 곁에서 지켜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좋은 남자가 아니라며 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순정마초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미지=애니메이션<붉은 돼지> ⓒSTUDIO GHIBLI 

전반적으로 마르코는 무정부주의자다. 가치가 떨어진 돈처럼 사랑도, 애국도 그에게는 집착할 대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비행기 S.21이 늘 건강하고, 언제든 자기를 태우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돼지다. 적들의 위협이 있고, 파시스트 군대의 감시를 당하고 있어도 상관 않는다. 자유가 무엇보다 좋은 것이다. 커티스와 공중전을 치른 마르코의 생사를 걱정하던 지나는 마르코가 연락하자 화를 낸다. “네가 로스트 포크(돼지구이)가 돼서 돌아오거나, 그런 너를 장례 치르는 건 싫어!” 자신을 걱정해주는 여자에게 마르코는 얄밉지만 반박하기 곤란한 대답을 한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이미지=애니메이션<붉은 돼지> ⓒSTUDIO GHIBLI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 문장은 이것을 돼지에 빗대 말하고 있다. 말 그대로 보면, 돼지를 돼지답게 만드는 것이 자유라는 말이다. 그러면 자유가 없는 인간은 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정말 중요한 가치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경고다. 과거의 마르코는 군대, 돈, 사랑과 같은 세속적 가치에 얽매여 있을 때의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을 떠나고, 돈 가치가 떨어지고, 사랑에 거리를 두면서부터 그는 자유로워졌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커진 탓에 인간의 모습마저 벗어 던졌다. 자유로울 수 있다면 돼지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이 남자. 존경한다.

이미지=애니메이션<붉은 돼지> ⓒSTUDIO GHIBLI 

<붉은 돼지> “파시스트보다는 돼지가 낫지” (1부)

<붉은 돼지> “파시스트보다는 돼지가 낫지”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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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