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시시콜콜] 명작으로 만든 명작 ‘오리엔트 특급살인’
1. 케네스 브래너 감독 : 셰익스피어 전문가의 우아한 영국 영어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연출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토르: 천둥의 신]과 [신데렐라]를 감독했다. 이러면 얼핏 디즈니 전문 감독, 또는 블록버스터 전문 감독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를 가장 잘 대변하는 수식어는 '셰익스피어 전문 감독'이다.
그는 영국 로열 드라마 아카데미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졸업 후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 들어가 윌리어 셰익스피어 원작의 '헨리 5세' 공연에서 극단 역사상 최연소 주인공으로 직접 무대에 올랐다. 이 연극에 대한 호평 이후 그는 이 작품 [헨리 5세]를 영화로 만들어 연출과 주연을 겸했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및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케네스 브래너의 나이는 29살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헛소동], [햄릿], [사랑의 고통이 사라지다], [당신 좋으실대로] 등의 셰익스피어 원작 영화를 연출했으며, 모든 영화에 주연 및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는 셰익스피어 외에도 메리 셸리 원작의 [프랑켄슈타인], 모차르트 뮤지컬 [마술피리] 등의 고전적인 영화들을 연출하고, 출연했다. 마블 스튜디오가 [토르: 천둥의 신] 연출을 케네스 브래너에게 맡긴 이유는, 그가 토르 및 다른 '아스가드'인들이 쓰는 고풍스러운 영국 고전 영어 대사, 우리나라로 치면 '사극풍 대사' 등을 가장 우아하게 연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2. 아가사 크리스티와 에르큘 포와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은 150편 이상의 드라마 및 영화로 만들어지거나 인용되었다. 탐정 캐릭터만 따지면 셜록 홈즈의 팬이 세계에서 가장 많겠지만, 추리소설 작가로는 크리스티가 코난 도일보다 뛰어난 작가로 여겨진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1974년 시드니 루멧 감독의 걸작 영화 외에도 2001년 TV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으며, 2015년에는 일본에서 일본을 배경으로 각색되어 2부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
크리스티의 소설에는 이번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 외에도 미스 마플, 배틀 총경, 토미&터펜스 부부 등의 명탐정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각각 몇 편의 시리즈가 집필되었다.
이 중 포와로가 주인공인 소설 중 영화화된 작품으로는 [푸른 열차의 비밀], [13인의 만찬], [커튼], [나일강의 죽음], [백주의 악마], [13인의 만찬], [죽음과의 약속] 등 다양하며, 35편 이상의 영화 및 TV 드라마와 두 편의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3. 1974년 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1974년 거장 시드니 루멧 감독에 의해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으로 먼저 영화화된 적 있다. 이 작품은 훌륭한 원작과 훌륭한 스태프, 화려한 출연진으로 개봉 전부터 크게 화제가 됐었다.
시드니 루멧은 [12명의 성난 사람들], [밤으로의 긴 여로], [형사 써피코] 등의 영화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반열에 올라 있었고, 007 제임스 본드 역할로 한창 주가가 오르던 숀 코너리나 최고의 여배우인 잉그리드 버그만 등이 조연으로 등장할 만큼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당시 84세였다. 그녀는 이전에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영화나 TV 작품에 만족한 적이 없었고, 이 작품의 영화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을 듣고 영화화를 허락했고, 완성된 영화에 대해서도 큰 만족을 표했다. 유일한 불만이 포와로(알버트 피니)의 콧수염이었다. 소설에서 포와로의 콧수염은 "영국에서 가장 멋진 콧수염"이라고 묘사되며, 이 콧수염에 대한 정성과 자부심은 포와로라는 캐릭터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상영회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생전에 공식석상에 참석했던 마지막 행사였다.
4. 오스카 대결 - 1974 : 2017
1974년 영화와 2017년 영화가 얼마나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지를 아카데미와 관련된 숫자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
먼저 1974년 영화에서 주요 배역의 배우들이 이제껏 수상한 오스카 트로피의 개수는 여덟 개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무려 3회 수상자다. 그 밖에도 숀 코너리,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존 길거드, 마틴 발삼, 웬디 힐러 등이 아카데미 상을 하나씩 받았다.
포와로 역의 알버트 피니는 지금까지 오스카 후보에 다섯 번이나 오른 명배우다. 히치콕의 걸작 [싸이코]의 주인공 안소니 퍼킨스, 험프리 보가트의 아내였던 로렌 바콜 등도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그 외에 레이첼 로버츠와 리처드 위드마크 등도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배우들이다.
2017년 영화는 배우들의 커리어도 현재진행형인 만큼 트로피 개수는 적다. 오스카 수상자는 둘 뿐이다. 주디 덴치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각각 오스카 여우 주연상을 하나씩 받았다.
케네스 브래너는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까지 총 5차례 후보로 지명됐었다. 두 영화에서 포와로 역을 연기한 배우가 아카데미 5회 후보라는 점이 우연히도 일치한다. 그리고 조니 뎁과 미셸 파이퍼가 3회, 윌렘 데포가 2회 후보에 올랐었다.
5. 오프닝과 엔딩 이야기
영화의 오프닝에서 12명의 용의자가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과 동일한 구도로 세팅되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 위로 흐르는 노래 'Never Forget Me'는 출연자 중 한 명인 미셸 파이퍼가 불렀으며, 영화음악을 담당한 패트릭 도일 외에도 연출자인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미셸 파이퍼는 뮤지컬 영화인 [그리스 2]의 여주인공이었으며, [이스트윅의 마녀들], [사랑의 행로], [업 클로즈 앤 퍼스널] 등 다수의 OST를 부르기도 했다.
6. 70mm 영화
케네스 브래너 인스타그램
이번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것도 영화에 흔히 쓰는 35mm 필름이 아니라 대화면용 65mm 필름으로 촬영해, 일부 극장(북미)에서는 70mm 영사기로 상영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인 2010년대에 70mm 필름 영화라니 고풍스럽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에이트],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 등이 65mm 포맷 필름 촬영을 거쳐 70mm 영사기로 상영됐던 2010년대 작품들이다.
케네스 브래너는 1996년 작 [햄릿]도 같은 포맷으로 찍은 적이 있다.
7. 요즘 잘 나가는 작가
영화 [에일리언: 커버넌트]
이번 영화에서 원작 소설을 각색해 시나리오를 쓴 이는 작가 겸 프로듀서 마이클 그린이다. 그는 [섹스 앤 더 시티] 드라마에서 작가로 데뷔, [스몰빌], [히어로즈] 등 히트 드라마의 프로듀서 겸 공동 작가로 참여했다. 그리고 HBO 걸작 SF 미니시리즈 [킹스]의 크리에이터로 절정의 재능을 꽃피웠다.
영화 시나리오는 망작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 첫 작품이었고, 이후 3년가량 쇼비즈니스를 떠나 있었다. 망한 영화 경험으로 인생 수업을 제대로 받았는지,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대본에 참여하면서 복귀한 이후에는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로 바뀌었다. 복귀 이후 그가 쓴 작품은 [로건], [에일리언: 커버넌트], [블레이드 러너 2049], [오리엔트 특급살인]까지 모두 대형 프로젝트였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흥행에 힘입어 후속작으로 결정된 [나일강의 살인]도 집필할 예정이다.
8. 실존하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정확히 오리엔트 급행열차)는 19세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 운영됐던 프랑스 파리~이스탄불 구간의 정기 급행 열차를 말한다. 1882년 10월, 벨기에의 CIWL(국제 침대차 회사)이라는 기업의 창업주인 조르쥬 나겔마커가 호화 열차인 '빛의 호화 열차'에 VIP들을 초청해 파리에서 빈까지 여행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6월 파리에서 빈 사이를 정기운행하는 호화 열차 노선을 개설하면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의 정기 열차편이 생겼다.
이 노선은 그해 10월 부다페스트와 부쿠레슈티를 경유해 루마니아의 지우르지우까지 연장되었고, 2년 뒤엔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해 이스탄불까지 가는 노선이 생겼다. 그리고 1889년 6월 1일, 두 노선이 합쳐져 파리에서 출발해 스트라스부르, 뮌헨, 비엔나, 부다페스트, 부쿠레슈티를 거쳐 이스탄불로 직행하는 노선이 완성됐다. 이 노선은 1차 세계대전 탓에 운행이 중지되었다가 1918년에 재개되었다.
1919년에는 파리 출발~이탈리아 밀라노, 베니스 및 베오그라드 경유~이스탄불로 가는 노선이 추가됐고, 1930년에는 런던 출발~프랑스 칼레~스위스 취리히, 인스부르크 경유~이스탄불로 가는 최장 오리엔트 급행이 생겼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멀고 호화로운 오리엔트 급행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고, 파리~이스탄불 직행열차는 1977년 5월에 운행이 끝났다. 이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이름과 호화 열차는 파리-부다페스트/부쿠레슈티 구간으로 축소된 채 운행되었다. 2001년에는 다시 파리-빈 구간으로 축소되고 난 뒤 2009년 12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의 정규열차 노선은 완전히 폐지되었다.
현재는 1980년대부터 관광열차로 운행되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있는데, 차량만 과거의 호화열차를 재현한 것이고, 운행 구간은 파리~베니스에 그친다.
저작권자 ⓒRUN&GUN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본 영화 또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영화 속 레이스 순위 경쟁, 나도 참가할 수 있다 (0) | 2022.01.03 |
---|---|
'위대한 쇼맨'은 사기꾼을 미화했나? (0) | 2021.12.30 |
토르 4 보기 전에 복습하는 ‘토르: 라그나로크’ TMI 모음 (0) | 2021.12.28 |
알고 보는 만큼 더 재밌는 [블레이드 러너 2049] (0) | 2021.12.28 |
‘WE ARE X’ 일본 팬들은 어떻게 봤을까? (0) | 2021.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