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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K 드라마 & 예능

여자사람이 본 군대 이야기 : 리얼한 각본의 <푸른거탑> VS 각본같은 리얼리티<진짜 사나이>

by 꿀마요 2021. 11. 24.

다양한 군대 예능이 판치는 요즘, 추억의 군대 소재 방송물을 돌아본다 

여자가 군대 이야길 듣는 건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고등학생쯤 되면 이제 이런 저런 오빠들 특히 가깝게 지내던 교회오빠 절오빠들이 영장을 받아들고 훈련소로 향한다. 그러면서 다들 신신당부를 하지. 편지 꼭 써주라. 그렇게 착한 여고생은 반드시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기타 치고 노래하고 센스 좋은 유머를 구사하던 이런 저런 종교오빠들이 군대에서 총 쏜 이야기, 축구하다 골 넣은 이야기, 더러는 간첩을 잡을 뻔한 이야기 등등 종잡을 수 없이 재미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걸 목격하게 된다. 오빠들은 편지 말미에 반드시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렴. 군에 와보니 모든 것이 후회되고 반성이 되는구나. 공부 열심히 해서 다음번 모의고사까지 반드시 등수 올려라. 할 수 있다. 군에 와보니 불가능도 가능해지더라. 그러니까 너도 해보는 거다. 아 이 오빠 진짜 왜이래. 완전 재미없어졌어. 그나마 여고생은 짜증을 누르며 군에 간 오빠들을 편지로 상대하면 그 뿐이지만, 대학생이 되면 어떨까. 영장 나온 선배들, 휴가 나온 선배들, 얼마 전에 제대한 예비역 선배들, 그들은 모두 학교 앞 노가리 맥주집에서 우리를 붙잡고 군대이야길 한다. 반드시 한다. 가야할 군대, 가 있는 군대, 그리고 갔다온 군대에서 총을 쏘고 공을 차고 간첩을 잡을 뻔한 이야기를.

 

나는 그렇게 스물한살이 되던 해 1시단 전진부대 3사단 백골부대 8사단 오뚜기부대 9사단 백마부대 27사단 이기자부대까지 줄줄 외우게 되었다. 그런데 다들 말 안해도 알지? 군대 이야기 정말 더럽게 재미 없다. 이 재미없는 군대 이야길 듣고 또 들어야 하는 시기는 후배들까지 모두 제대하고 얼추 이십대 중후반 쯤엔 끝나는가 싶더니, 직장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어디서 조상님도 아니고 시조새 군번을 달고 계신 어르신들의 군대 무용담을 회식자리에서 들어야 한다. 아 제발,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제발  징병제부터 없애주세요 하느님 제발.

 

 

이렇게 관뚜껑 덮는 날까지 바뀔 거 같지 않던 군대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은 <진짜 사나이>라는 예능 프로를 통해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서 군대에서 뭘 먹고 뭘 하는진 큰 관심 없었다. 오로지 군복 입은 류수영, 베레모 쓴 류수영, 위장크림을 바른 류수영, 그리고 탕수육을 튀기는 류수영만 보면 되는 것이었다. 남자가 저렇게 매사에 긍정적일 수가 있나. 세상에 운동도 잘하고, 암기력도 좋아.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데 눈부신 미소를 잃지 않아. 아 빠져든다. 멋있어. 강한 군인. 늠름한 군인. 무엇보다 잘생긴 군인! 그렇게 난데없이 등장한 군대리얼버라이어티에 빠져들다보니, 어리버리한 호주오빠도 눈에 들어오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꽤나 재미가 있어진 것이다. 유격왕 장혁이 완벽한 L자세로 레펠 하강하는 모습을 보고 뿅 가고 애기병사 박형식은 그냥 보기만 해도 광대가 하늘로 승천한다.

 

남자들은 반발했다. 군생활의 힘든 점은 훈련이 아니라 내무생활이 80%인데 저게 무슨 리얼버라이어티냐고. 근데 어짜피 남자분들도 <우리결혼했어요> 보면서 시월드 갈등 따위 없는 30평대 아파트에서 갚아야 할 대출이자 압박도 없이 천장에 풍선 매달아놓고 소녀시대가 자기들 발 닦아주는 신혼의 단꿈을 꾸고 그랬잖아. 다 똑같은 거라고.

 

 

<진짜 사나이> 21세기형 <배달의 기수>. 우리군은 막강한 군사력과 멋진 전우애를 모두 갖추었다. 그리고 잘 생겼다! 며칠을 지내다 떠나면 고만인 이방인들의 병영체험극에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부대껴야 할, 나랑은 죽어라고 안맞는 고참의 갈굼에 대한 이야기는 다뤄질 시간이 없다. 그들은 빨리 다른 부대로 옮겨가 새로운 군장비의 위용을 자랑해야 한다. 공중파 티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면들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기에, <진짜 사나이>는 그들의 힘든 훈련과 단편적인 군대 내 먹거리 에피소드에만 집중한다. 불편한 건 우리 서로 보지 맙시다. 아주 영리한 작전이다. 선수들이 얼마나 진짜처럼 아파하고 얼마나 그럴싸하게 기뻐하는지에 집중하는 재미로 프로레슬링을 보듯이, 물론 PT체조 8번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여러차례 간증을 들어봤지만, 시청자 입장에서야 애초부터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만 그려지는 위기와 절정과 결말을 마음 편히 즐기면 고만인 것이다. 그런데 <푸른거탑>은 달랐다. 보고나면 반드시 좋아하게 될 거라는 믿을만한 조력자의 추천으로 첫번째 에피소드를 보게된 날, 한달음에 모든 에피소드를 보고 말았으며 이게 바로 진짜였다. 이제껏 살면서 수백 아니 수천번도 넘게 들어왔던 얼토당토한 군대 이야기들은 과연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웃기다니!    

 

혹한기 훈련 에피소드만 해도 그렇다. 그 많던 예비역들이 귀에 딱지가 앉게 들려줬던 '똥도 어는 살인같은 추위'라는 말에 '더럽게 그래서 어쩌라고' 응수하던 나를 바꾸어 놓았다. 모든걸 얼려버리는 추위 속에서 웃기면서 짠한 일들이 벌어지다 결국 언 밥을 부셔먹고 입김을 내뿜으며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니까 안쓰러운 마음마저 스멀 올라오더란 말이다. 물론 말년 최병장과 싸이코 김상병의 얼굴만 봐도 저절로 웃음이 터져버려 비장하고 감동적인 <배달의 기수> 느낌은 전혀 나지 않지만, 말도 안되는 캐릭터들이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하며 그야말로 계급이 깡패인 극한이기주의를 통해 상황을 점점 북망산으로 몰고가는 웃기고 자빠진 와중에도와 군대가 정말 힘든 곳이구나.” 이 평범한 한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푸른거탑>이 가진 결정적 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두 프로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진짜 사나이>는 그들이 짜놓은 이야기의 틀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고, 되려 철저히 각본대로 촬영 된 <푸른거탑>을 통해 진짜 군대가 저럴 것이다 빠져들게 되는 것. 그래서 어느 쪽이 더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상당히 고민스러워 지는데, 역시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 설정따윈 절대 나오지 않는 현실감 100%<푸른거탑> 쪽의 손을 들어줘야겠다. 그렇다고 해서 잘생긴 군인오빠들을 보는 재미를 포기해겠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지말입니다.

 

 

 

화면캡쳐 MBC

화면캡쳐 tvn

 

글쓴이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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