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늘의 악인은 억만장자로 태어나 3급살인범으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존 듀폰이다.
열등감은 에너지일 수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잘 알려진 이론대로, 인간이란 모두 보편적으로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이겨내거나 보상하는 과정에서 그 인간 자체의 발전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에서 열등감은 때로 좋은 연료가 된다. 그러나 듀폰 가(家)의 폭력적인 경제력 아래, 어린 시절의 존 듀폰에게 열등감을 스스로 극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가 부재를 느끼기 전에 이미 ‘구매’되어 있었다. 존의 사춘기 시절, 유일한 친구라고 믿었던 동급생이 존의 어머니에게서 몇 년째 돈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그를 통제하려 했으며, 한 번도 자기 아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존이 극복할 수 없는 열등감, 자체였다.
1996년 겨울, 세계적인 화학재벌 존 듀폰(스티브 카렐)은 금메달리스트이자 자신이 후원하던 레슬림팀 ‘폭스캐쳐’의 리더,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러)를 대낮에 권총으로 살해한다. 듀폰사는 세계대전에서 미군에 화약과 폭탄을 지원하면서 크게 성장했으며, 핵관련 기술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폭스캐쳐>에선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기업의 상속자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열등감이라고 설명한다.
존은 평생을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몸부림쳤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로 어머니를 넘어서고 싶었다. 미국 보수층의 갖가지 후원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애국자라고 불리길 원했다. 새나 조개 등의 연구에 광적으로 집착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류학자, 작가, 세계 탐험가, 우표수집가, 자선가 등의 허명을 늘려갔다. 하지만 그 역시 모두 돈으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슬링에도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이 후원한 대회에서 상대선수를 매수해 우승하고, 트로피를 어머니에게 내미는 식이었다. 어머니와 같은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인정받을 길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후원하는 레슬링팀 폭스캐쳐의 리더 데이브 슐츠는 분명 자신보다 우월한 인간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명성이 다가 아니었다. 가족애, 형제애, 신뢰, 의리 등 그는 소박하고 단단한 가치들로 꽉 찬 진짜 ‘어른’이었다. 억만장자 스폰서가 집으로 찾아와도, 일요일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되니 돌아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아버지’였다. 그것은 존 듀폰이 제대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팔지 않으니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눈이내린 아침, 트로피가 가득한 방은 마치 미국의 정신세계처럼 화려하게 허무하다. 자신을 황금독수리라고 찬양한 다큐멘터리를 켜놨지만,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평생을 코미디 전문 배우로 살아온 스티브 카렐의 페르소나까지 겹치면서, 시간이 멈춘듯한 이 시퀀스는 고요하고 압도적인 역설을 화면 가득 쏟아낸다. 존은 천천히 차를 몰아 다시 데이브를 찾아간다. 커다란 총소리보다 더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글로벌 기업의 총수가 보채듯이 아이처럼 내뱉은 말의 초라함이었다. “나한테 불만 있어? (Do you have a problem with me?)”
열등감은 얼마든지 에너지 일 수 있다. 마치 듀폰사의 플루토늄 대량생산 기술처럼 좋은 에너지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미지 = 영화<폭스캐쳐>, ⓒSony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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