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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열전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부당거래'의 주양

by 그럽디다 2021. 7. 25.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주양 검사는 업무과정에서 상대기관을 배려하자는 부하직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는 정글 같은 이 세상에서 한번 얕보였다간 그걸로 끝이라고,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호의는 자기기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악인열전 오늘의 주인공은 잘 차려입은 수트위로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 모사꾼, <부당거래>의 비리검사 주양이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는 대한민국 권력의 먹이사슬이 어떻게 형성되고 흘러가는지를 고발한 영화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대통령은 경찰청장에게 특별 지시를 내린다. 경찰청장과 강국장(천호진)은 광역수사과의 에이스 최철기(황정민) 반장에게 가짜 범인을 내세워 사건을 종결시킬 것을 명한다. 최철기는 다시 건설입찰과 관련한 편의를 미끼로 건설 깡패 장석구에게 가짜 용의자를 겁박해 범행을 인정하게 시킨다. 대통령에서 시작한 압박이 극빈층인 가짜 용의자까지 내려오면서, 이 대국민 사기극이 세팅 되는 동안 가족’, ‘식구’, ‘형님’, ‘커뮤니케이션 등의 단어가 유독 많이 오간다.

 

주양 검사는 이렇게 줄 세워진 대한민국의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검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능글능글한 말투로 자신의 힘을 한껏 과시한다. 주 검사가 탈세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건설사 태영의 김 회장을 빼준 후, 김 회장이 주양에게 답례하는 자리. 이미 집과 양복을 선물 받은 후였지만, 김 회장은 다시 고가의 시계를 내밀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나 자신이 검찰에 잡혀있는 동안 경쟁사 해동건설의 장석구(유해진) 사장에게 입찰을 빼앗겼다며, 자신을 빨리 빼주지 않은 주 검사를 타박한다. 갑자기 정색하는 주 검사. 주 검사는 아버지뻘 되는 김 회장에게, 겸상을 오래 해주니까 대한민국 검사를 우습게 보냐며 소리를 지른다. 상대에게 먹이 사슬에서 자신이 상위에 있음을 분명히 해둔다. 자신의 호의가 김 회장의 권리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내 꼬리를 내리는 김 회장. 주 검사는 멋쩍은 듯 자리를 떠나지만 김 회장이 준 시계를 챙기는 것은 잊지 않는다. 

 

 

이렇게 암묵적인 거래가 오가는 중에, 상황은 장석구를 앞세운 최철기와 김 회장을 앞세운 주 검사의 대리전 양상이 된다. 그러나 주 검사가 접대골프를 즐기던 중, 같이 있던 김 회장이 살해되자, 주 검사는 먹이사슬에서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최철기 반장에게 약점을 잡힌다. 너스레를 떨며 최철기에게 눈감아 줄 것을 제안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다시 검사의 지위를 악용한다. 주 검사는 최철기 주변 인물을 무작위로 소환해 최철기를 공격한다. 그는 거들거리면서 최철기에게 이야기했다. “자꾸, 나랑 경쟁구도를 만들려고 하지마.”

이야기의 마지막, 김 회장과의 비리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주 검사는 결국 궁지에 몰린다. 기자들을 뚫고 검찰청에 출근하는 주 검사를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인어른이 따뜻하게 다독인다. 언론에서 어떻게 떠들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혐의를 벗을 것이다. 그동안 악인열전에서는 연쇄살인마부터 마약왕까지 참 다양한 종류의 악당을 다루었지만, <부당거래>에서 흉기 한번 휘두르지 않은 주 검사가 특히 싫은 이유는, 우리가 속한 이 사회의 먹이사슬 어느 끝에선가, 주 검사 같은 인간이 정말 존재할 것만 같다는 불쾌감 때문이다. 

 

영화는 권력자들이 가짜 범인으로 몰아세운 용의자가, 사실은 진짜 범인이었다는 반전을 던진다. 이 사회의 먹이사슬에서 강자는 악하고 약자는 선하다는 식의 속 편한 메시지를 기다리던 관객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인것이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악다구니를 쓰는 세상에서 약자도 선하긴 힘들다. 여기에 주 검사가 싫은 두 번째 이유가 있다. 그러고 보면 상대에게 권리가 될까 봐 호의를 베풀지 않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마치 인생을 똑똑하게 사는 법이라고 여기고 있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주 검사에게서 야릇한 동족혐오를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지=영화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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