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 맥스가 묻는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왜 죽이지?"
살인 청부업자 빈센트가 답한다. “그럼, 아는 사람만 죽여야 하나?”
할 말이 없다. 밤새 돌아다니면서 부동산 계약을 여러 개 마무리해야 한다며, 하룻밤 자신의 기사가 되어달라던 손님 빈센트(톰 크루즈)는 알고 보니 살인 청부업자였다. 병실에 있는 맥스(제이미 폭스)의 어머니와 인사까지 한 이 살인마의 위협에, 밤새 공범 아닌 공범이 되어야 하는 상황. 당혹스러워하는 맥스에게 킬러이 장광설이 이어진다.
빈센트는 오늘도 지구에서는 전쟁으로 어차피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말한다. 거기에 몇 명의 범죄자가 더 해진들 큰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이 다윈이 말한 진화론이란다. 강한 개체는 살아남고, 약한 개체는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단다. 제국주의자들에게 좋은 핑계가 된 사회진화론적인 폭력이다.
그런데 이 살인 청부업자, 단선적인 약육강식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좀 이상하다. 살인을 직업으로 삼는 남자치고는 많이 수다스럽고, 한 번씩 다정다감하기까지 하다. 무전으로 막말하는 맥스의 택시 회사 상관을 혼내주기도 하고, 맥스의 어머니 병실에 꽃을 사 들고 가기도 한다. 몇 번이고 도망가려던 맥스를 죽이고, 새로운 택시 기사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죽은 남자를 6시간 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LA의 비정한 현실을 한탄하기도 했다.
이 악당 사실은, 외로운 게 아닐까. 친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심야의 살인이 이어지던 중, LA 한복판에서 뜬금없이 코요테와 마주친다. 거장 마이클 만이 우리 모두의 외로움을 도심에 나타난 야생 동물 한 마리에 집약시킨 이 말도 안 되는 씬은 이상한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LA 한복판에 코요테가 나타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묻는 게 불경할 정도로, 순도 높은 외로움이 화면을 압도한다. 한동안 빈센트도 맥스도 말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맥스도 외롭긴 마찬가지다. 손님들에게 자신은 리무진 서비스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으스대지만, 사실 그의 꿈은 말뿐이다. 마치, 팀장의 면상에 사표를 던지고, 몇 개월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홍대에 자기 스타일의 카페를 내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꿈만 꾸는 우리의 외로움과 다를 게 없다.
영화의 마지막. 살다가 교차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종류의 외로움이 기차선로 위에서 정면으로 맞선다. 평생 총이라고는 잡아 본 적도 없는 택시 기사가 눈감고 쏜 총에, 살인 기계 빈센트는 죽는다. 여자 검사를 지키기 위해 비로소 수컷이 된 맥스는, 빈센트식으로 말하자면 진화론의 주역이었다.
그리고 악당 빈센트가 죽는 순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LA 지하철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6시간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던 어떤 남자처럼, 이렇게 죽어가는 자신을 아무도 관심 없어 할 것이라는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그렇게 빈센트가 죽고 나서도, LA의 아침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시작된다. 우주는 넓고, 악당 한 명이 죽었을 뿐이었다.
'악인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등감은 에너지일 수 있다 '폭스캐쳐' 의 존 듀폰 (0) | 2021.07.25 |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부당거래'의 주양 (0) | 2021.07.25 |
'겟 아웃'의 이 요망한 남자 누구? (0) | 2021.07.20 |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밀양' 박도섭 (0) | 2021.07.08 |
스스로 웃긴지 몰라서 더 웃긴 스티븐 시걸 (0) | 2021.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