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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열전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달콤한 인생' 백대식

by 그럽디다 2021. 7. 6.
영화 속의 악당들을 만나본다. 오늘의 악인은 [달콤한 인생]의 백대식 사장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

아버지의 힘을 빌려 사채업을 하던 백대식(황정민)이 새로 벌인 사업은 무려, 연예기획사다. 러시아 쪽 무희들 대신 자신이 계약한 동남아 연예인들을 구역 나이트클럽에 넣어보려고 수작을 부리던 중, 김선우 실장(이병헌)과 부닥친다. 딱 부러지게 전화를 끊어버린 김선우 실장에 대한 분풀이를 부하들에게 해대는 속 좁은 인간.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하게 나오는 비겁한 악당, 백대식의 등장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

 백사장은 보통의 비겁한 인간들이 그렇듯이, 강한 자에게는 또 한없이 약하다. 조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김선우 실장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각 조직의 보스가 모이는 자리에서 아버지 백 회장을 등에 업고, 상대편 보스인 강 사장(김영철)에게 슬쩍 농을 던진다. 그러나 강 사장의 눈빛 한 번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내 사과하는 볼품없는 남자다. 

영화 '달콤한 인생'

 사실 [달콤한 인생]에서 이 비겁한 악당의 분량은 많지 않다. 장르영화를 잘 주무르는 김지운 감독이 솜씨 좋게 배치한 담배 연기, 줄무늬 양복, 다이얼 전화기 같은 소품처럼, 누아르에 꼭 등장하는 필수 요소의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의 정수는 대부분 백사장을 통해 전해진다. 달콤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인생의 단면은 억울해? 억울한 거야?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라는 대사에 압축되어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A Bittersweet Life’.

영화 '달콤한 인생'

 

감독은 이런 인생의 양면성을 어둠과 빛이 극명하게 갈리는 조명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조명이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얼굴과 만났을 때, 영화의 결이 깊어진다. 저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 빙상장씬이 대표적이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김선우를 맞닥뜨린 백사장은 당황하는 척하더니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잭나이프로 김선우를 수차례 찔러댄다.참 비겁하고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의외의 일격에 쓰러진 김선우에게 억울하냐며 바짝 약을 올리지만, 김선우의 총격 한방에 우습게 허우적대며 목숨을 구걸한다. 

 

영화 '달콤한 인생'

생각해보면 이 싸움은 어차피 정의의 사도와 명분 있는 악당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부닥치는 멋들어진 결투가 아니었다. 방심한 틈을 타서 비겁하게 찔러댄 백사장도 백사장이지만, 영문 모르고 불려 나온 상대에게 총을 들이댈 계획을 세우고 있던 것은 김선우였다. 

 

촬영하는 날 갑자기 장소를 정하게 되었다는 이 빙상장씬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김지운 감독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스타일 과잉의 전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폼나게 걷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얼음판 위에서, 한 세상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온 비겁한 인간이 차가운 최후를 맞기에 참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마지막 단어는 체념하듯이 뱉은 욕 한마디였다. 억울하진 않았다. 인생은 어차피 고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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