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열전’ 여섯 번째 주인공은 현대 사회의 무관심을 상징하는 괴물, <세븐>의 연쇄살인범 존 도우다.
단테의 신곡에서 이야기한 ‘7가지 죄악’에 대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고도비만 환자는 강제로 음식을 계속 먹여서 죽이고, 미모를 뽐내던 여인은 얼굴 가죽이 벗겨진다. 탐식(Gluttony), 탐욕(Greed), 나태(Sloth), 정욕(Lust), 교만(Pride)에 대한 시체가 발견되고 분노(Wrath)와 시기(Envy)에 대한 사건만 남았다. 각각의 살인에는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밀턴의 ‘실낙원’ 등 인류의 고전들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현학적이고 탐미적인 살인이 벌어지는 동안 정년을 앞둔 형사 서머셋 (모건 프리먼)과 새로 부임한 밀즈 (브래드 피트)는 범인을 잡기 위해 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그때, 피칠갑을 한 살인마 존 도우(케빈 스페이시)가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온다.
존 도우는 서머셋과 밀즈를 데리고 두 구의 시체를 더 숨겨둔 곳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베일에 싸여있던 연쇄 살인범 존 도우의 장광설이 이어진다. 그는 세상이 너무 병들어서 정화가 필요하다고 말문을 연다. 자신은 순교자로서 사람들에게 일상의 악행을 경고하기 위해 일을 벌였다고 한다. 교양을 가장한 궤변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단호했고, 얼굴은 구도자의 미소처럼 평온했다. 그리고 같이 도착한 장소에 밀즈의 아내인 트레이시의 머리가 배달된다. 존 도우는 자신의 죄악은 아름다운 아내를 가지고 싶어 했던 시기(Envy)라 했다. 그리고 밀즈의 분노(Wrath)에 기꺼이 7번째 시체가 된다.
여러 가지 은유적인 방법으로 이 영화가 지목한 8번째 죄악은 ‘무관심’이다. 서머셋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세상은 위험하다고, 서로서로 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밀즈는 무관심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총에 맞아 죽은 동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한다. 아내가 새로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워 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존 도우 역시 외로운 인간이었다. 그의 아지트에서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2,000권의 일기장이 발견된다. 외로운 개인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엄청난 괴물이 되는 과정이 빼곡히 적혀있다. ‘존 도우 (John Doe)’라는 이름 자체도 우리식으로 치자면 ‘김 아무개’ 같은 미국식 표현이다. 경찰은 존 도우에 대한 어떤 기록도 찾지 못했다. 스스로 손가락의 피부를 벗겨 내서 지문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이 사회의 무관심을 상징하는 괴물 ‘존 도우’는 케빈 스페이스의 명연기로 완성됐다. 특이한 점은 케빈 스페이스의 이름을 오프닝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 그의 이름 자체가 ‘반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에는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와 있다.
<세븐>은 고전영화의 격조와 현대영화의 스타일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수작이다. 누와르적인 전통을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품격있게 쌓아놓았다. 드물게, 아주 따뜻하고 밝은 씬이 있었다. 밀즈의 아내 트레이시가 서머셋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먹는 장면. 수완 좋은 부동산업자에게 보기 좋게 속아서,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온 집안의 물건이 덜덜 떨어야 하는 상황이 세 사람은 그저 우습다. 무관심을 걷어내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즐거움. 헤밍웨이를 인용한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세상은 아름답고, 그래서 싸울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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