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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열전

스스로 웃긴지 몰라서 더 웃긴 스티븐 시걸

by 그럽디다 2021. 7. 7.

영화 '마셰티'

생긴 것만으로 범죄인 남자가 있다. 대니 트레조는 실제로도 중범죄를 저질러서 감방에 드나들었던 전과자이자, 200여 편의 영화에서 단골로 악역을 도맡아 온 액션 배우다. 그의 엄청난 얼굴은 B급 영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대니 트레조가 단독 주연이자 정의의 사도로 나오는 영화 [마셰티]에는, 데칼코마니처럼 대척점을 이룰만한 악역이 필요했다. 오늘의 악인은 스티븐 시걸이 [마셰티]에서 열연한 마약왕 토레스다. 

영화 '마셰티'

멕시코의 유능한 연방요원 마셰티는 마약왕 토레스를 잡으려다가 실패한다. 부인마저 토레스에게 살해당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마셰티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루하루 비참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다시 한 번 음모에 빠져 상원의원 저격범으로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영화 '마셰티'

, 사실 줄거리 따위 아무렇거나 상관없는 영화다. 마셰티가 시원하게 악당들에게 칼부림할 이유만 있으면 그만이다. 평소 악당의 대명사였던 대니 트레조가 사연 많은 연방경찰 마셰티, 90년대 액션 영웅 스티븐 시걸이 멕시코의 마약왕 토레스로 등장한다. 토레스는 주로 멕시코의 호화 저택에서 비키니 미녀들과 노닥거리며, 노트북 화상채팅으로만 미국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는 마약 시장을 계속 독점하기 위해, 상원의원 맥로린(로버트 드 니로)과 모종의 커넥션을 유지하는 수완가이기도 하다. 능글능글한 표정과 비열한 웃음이 영락없는 악당 중의 악당이다. 알고 보면 현실에서의 스티븐 시걸도 그다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탈세 혐의를 받기도 했고, 여러 명의 여성에게 성추행 혐의로 자주 고소당하곤 한다. 

영화 '마셰티'

토레스가 보낸 자객들은 마셰티를 제거하지 못한다. 마음처럼 되지 않자, 직접 미국으로 건너온 토레스. 드디어 마셰티와 토레스의 결전이 벌어진다. 대니 트레조는 자신의 배역 이름대로 마셰티(Machete, 정글용 칼)를 양손에, 스티븐 시걸 역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일본도를 양손에 들었다. 영화를 만들던 2010년 당시, 이미 환갑 이쪽저쪽인 두 마왕의 액션은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느릿하지만,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온 두 배우가 마주 선 것만으로 팬들은 감격했다. 그래서 이 씬은 마셰티가 어떻게 이기는지 만큼이나, 토레스가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했다. 결국, 마셰티에게 결정적인 공격을 당한 토레스는, “이렇게 배에 칼을 맞은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너를 이길 수 있지만, 명예롭게 죽겠다.”며 일본식 할복자살을 택한다. 과연 이 정도 앞뒤 없는 허세가 있어야, 마셰티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마셰티'

 

미국 사회에서 마초 바보캐릭터로 놀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 스티븐 시걸의 허세 에피소드는 끊이질 않는다. 스티븐 시걸이 보완관 대리로 부임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스티븐 시걸 : 로우맨]에선, 잘 못된 정보를 들고 선량한 주민 집에 쳐들어간 적도 있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그 집 개가 죽는 사건이 벌어져 욕을 먹었다. 이종 격투기 선수들과 교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몇몇 유명 선수를 자신이 가르쳤다고 헛소문을 내다가 격투가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요즘은 웬일인지 푸틴 대통령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데, 소치 동계 올림픽 당시, ‘푸틴과 내가 지키고 있는 러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으나, 그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였다. 갑자기 주지사에 출마하겠다고 떠들지를 않나, 소련이 만든 AK 47 소총의 모델이 된다고하질 않나, 하여간 이 형님에 대한 허세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영화 '마셰티'

 

그럼에도 이 노배우의 악역은 고마운 일이다. 로드리게즈 감독이 B급 영화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밀어 붙인 이 영화는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스티븐 시걸의 출세작 [복수무정]과 많이 닮아있다. [복수무정]의 명대사 내가 보증하지.”를 오마주하는 장면도 있다. 지금까지 배우로서 쌓아온 자신의 이미지가 영화 안팎으로 어떻게 소비되든 간에, 그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물론, 그래서 더 웃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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