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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열전

비호감의 결정체 '바스터즈'의 한스 란다 대령

by 그럽디다 2021. 7. 5.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영화 속의 악인들을 만나본다. 다섯 번째 악인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한스 란다 대령이다. 

 나치의 장교 한스 란다는 프랑스의 한 시골집에 도착한다. 부하들은 차에 대기 시키고, 집 주인 라파디트에게는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집에 들어와서 딸들의 미모를 칭찬하더니 우유를 한잔 얻어 마신다. 여기까지 7. 영화가 시작하고 7분 동안 한스는 유대인을 숨겨둔 농부 라파디트에게 어떤 위협도 하지 않았다.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다시 조용하고 정중한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나 우유를 마시고,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고, 담배를 한 대 피우는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에 상대를 긴장시키는 묘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한스 대령은 그런 식으로 라파디트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온다. 결국 라파디트는 울면서 마룻바닥 밑에 유대인 가족이 숨어있음을 자백한다. 여기까지가 20. 

 

한스 대령은 사실 라파디트가 유대인을 숨기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지만, 숨겨둔 유대인 가족의 나이와 외모까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상대를 기만하면서 20분을 끌고 가는 악취미. 이미 독으로 기절시킨 먹잇감의 몸통을 서서히 조여오는 독사같이, 한스 대령은 라파디트를 농락한다. 한스는 이제서야 부하들을 불러 바닥에 무차별한 총격을 퍼붓는다. 20분의 서스펜스 끝에 작렬하는 폭력이 화면 가득 쏟아진다.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그는 마주 보고 하는 심리전에 능하다. 처음엔 긴장을 늦추기 위해 별거 아닌 대화를 툭툭 던지면서 음식을 나누는 식이다. 오프닝 시퀀스를 포함해 총 4번에 걸쳐 한스는 상대방과 음식을 나눈다. 그때마다 우유, 스투루델(디저트의 일종), 샴페인, 포도주가 전략적으로 쓰였다. 이렇게 부담 없는 대화가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지는 동안, 건너편의 희생양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히치콕이 말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서스펜스(Suspense)’의 정석이랄까.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아무리 2시간 30분이 넘는 긴 영화라지만, 한 시퀀스로 초반 20분을 가져가는 호흡은 웬만한 내공의 연기와 연출로 만들 수 없다. 한스 대령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왈츠의 압도적인 아우라와 유독 궁합이 잘 맞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종종 평론가들에게 매니아로서 쌓아온 조각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는 재주밖에 없다고 공격받던 타란티노가, 드디어 장르영화의 재미를 자신의 방법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음을 증명한 명장면이기도다. 크리스토퍼 왈츠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 조연상을 동시 석권했다. 둘은 3년 후 <장고:분노의 추적자>로 다시 만났고, 그는 닥터 킹 슐츠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한 번 더 받게 된다.

 

크리스토프 왈츠는 악당역을 여러 번 맡았다. <삼총사 3D>에서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추기경이었고, <워터포 엘리펀트>에서는 전형적인 폭력남편이었다. <그린호넷>에서는 폭력단의 보스 추노프스키로 나온다. 묘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말에 유독 발끈하는 터라 살짝 귀엽기까지 한, 묘한 캐릭터였다. 영화는 악평 일색이었으나, 그는 <그린호넷>으로 MTV 영화제에서 최고의 악당상을 받았다.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최근 천만 행진을 마감한 <변호인> 이후, 우리는 차동영 경감(곽도원 분) 같은 악인을 애국 괴물이라고 부른다. <어 퓨 굿맨>에서 잭 니콜슨이 열연한 제셉장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얼핏 애국괴물 일 수밖에 없는 나치의 장교임에도 한스 대령은 조금 다른 악당이다. 알고 보면 그는, 잘못된 민족적 우월감이나 비뚫어진 애국심으로 동기부여가 된다기보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 움직이는 기회주의자에 가깝다. 영화의 종반 부에 이르러, 점점 기울어지는 조국에 스스로 결정타를 날리고, 뻔뻔하게도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한다. 나치 친위대의 가장 악랄한 전범에서, 하루아침에 전쟁을 끝낸 연합군의 영웅이 되고자 한다. 정말 여러모로 싫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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