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같이 강렬한 눈빛과 시원한 민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율 브린너의 대표작들을 훑어 본다.
율 브린너는 러시아 출생으로 중국, 프랑스 등을 옮겨 다니며 유넌을 보냈다. 그는 러시아, 독일, 몽골, 스위스 등이 복잡하게 얽힌 혈통을 가지고 있다. 연극배우였던 어머니의 끼를 이어받아 청년 시절엔 가수, 곡예사 등으로 활동했다. 2차 대전 참전 이후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TV 쇼나 브로드웨이에서 두각을 보이던 중 [뉴욕항구](1949)로 영화에 데뷔한다. 당시 나이 29살이었고, 아직 머리를 밀기 전이다.
마가렛 랜던의 소설을 바탕으로 연극 ‘왕과 나’의 주연을 맡았던 율 브린너는 이 작품이 영화화되면서, 태국의 왕 몽쿠트역을 맡게 된다. 영국인 가정교사 안나(데보라 카)는 몽쿠트 왕(율 브린너)의 초청을 받아 방콕에 온다. 안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왕의 언행 때문에 왕과 부딪히지만, 국민들을 위하는 왕의 노력에 매력을 느낀다. 이런 그를 돕기위해 안나는 화려한 만찬을 열어, 왕이 야만인이 아님을 열강들에 보여주고자 한다. 율 브린너는 [왕과 나]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으며 단번에 할리우드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로도 연극에서 같은 배역을 맡아 투어를 다니며 몽쿠트 왕으로서의 연기 인생을 이어간다.
율 브린너는 전설적인 명화 [십계](1956)에서 모세를 시기하고 괴롭히는 이집트의 왕자 람세스 역을 맡았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히브리인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피바람을 피해 한 아이가 강물에 떠내려오는데, 파라오의 딸 비티아가 이 아이를 우연히 주워서 ‘모세’라는 이름으로 키운다. 파라오의 아들 세티는 바른 품성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모세를 총애하지만, 야망에 불타는 세티의 아들 람세스(율 브린너)는 모세를 시기하고 질투한다. 강렬한 그의 눈빛이 유독 빛났던 작품이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열연한 [프린세스 아나스타샤](1956)에서는 러시아 장교 역을 맡았다. 러시아 제국의 부니 장군(율 브린너)은 러시아 혁명 이후 국외로 추방당한다. 파리 시내에서 우연히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공주 아나스타샤와 닮은 한 여인(잉글리드 버그만)을 발견하는데, 마침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부니는 그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아나스타샤처럼 보이도록 훈련시킨다.
대문호 도스토앱스키의 원작을 영화화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958)에서 율 브린너는 야망에 불타는 첫째 아들 드미트리를 연기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 잔인한 성품을 지닌 표도르와 4명의 아들이 벌이는 잔혹극에서, 큰아들 드미트리는 아버지의 권위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강한 남성성을 연기한다. 욕망에 충실한 수컷으로서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1959)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시바의 여왕(롤로 브리지다)은 솔로몬 왕을 유혹하여 파멸시키기 위해 이스라엘로 찾아간다. 그러나 지혜로운 솔로몬의 행동에 매력을 느끼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시바 여왕과 솔로몬이 사랑에 빠진 사이 국정은 방향을 잃고, 호시탐탐 정권을 노리던 솔로몬의 형 아도니아와의 전쟁이 벌어진다. 대머리가 아닌 율 브린너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영화다. 멋진 수염까지 있어서 남성성이 훨씬 강조된 모습이다.
서부시대 시골 마을에 칼베라(엘리 월라치)가 이끄는 도적 떼가 주기적으로 쳐들어와서 농작물을 빼앗아 간다. 마을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서 마을을 지켜줄 총잡이들을 고용한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서부극으로 리메이크 한 [황야의 7인](1960)에서 율 브린너는 7인의 개성 강한 총잡이를 하나로 일으켜 세우는 리더 크리스 역을 맡았다. [왕과 나]와 함께 율 브린너를 기억할 때 가장 많이 회자하는 작품이다.
[대장 부리바](1962)에서 다시 한 번 기마민족을 이끄는 용사로 출연한다. 폴란드에 배신당한 코사크 족의 대장 티라스 브리바(율 브린너)는 아들 안드레이(토니 커티스)를 폴란드로 보내 복수를 준비한다. 그러나 안드레이는 폴란드 귀족 처녀 나타리아(크리스틴 코프만)와 사랑에 빠진다. 율 브린너는 부족의 복수를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직접 처단하는 비정한 아버지 역할을 특유의 선 굵은 연기로 완성했다. 어떤 영화에서보다 가장 야만인 같은 비주얼을 보여줬던 영화이기도 하다.
[이색지대](1973)에는 서부의 총잡이로 출연하는데, 이번엔 특이하게 사이보그다. 서부시대, 중세시대, 로마 시대를 각각 복원한 첨단 테마파크가 문을 연다. 이곳은 단순히 환경만 비슷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사이보그를 투입해 완벽한 사회를 구현한다. 그러던 중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서부시대에 있는 사이보그 건맨(율 브린너)이 폭동을 일으킨다.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는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다소 이색적인 캐릭터지만, 관련된 레고 제품이 있을 정도로 컬트적인 지지를 받는 캐릭터다. 미남 율브린너의 얼굴이 페이스 오프(Face/Off)되는 조악하고 진귀한 장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인류가 거의 전멸한 지구. 황폐해진 토양에서 더는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사람들은 서로의 식량을 뺏고 뺏기며 험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캐롯(윌리엄 스미스) 일당은 도시의 식량을 독점하고 있고, 바론(막스 폰 시도우)을 중심으로 한 무리는 캐롯에 맞서 인류를 모두 구원할 식량을 개발하고 있다. [최후의 용사](1975)에서 율 브린너는 인류를 구원할 씨앗을 지키는 용병역을 맡았다. 이때 나이가 이미 55살이어서 액션에 노쇠한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특유의 강렬한 눈빛만은 여전하다.
그는 언제나 남성적인 욕망이 들끓는 영화에서 자신에게 주워진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남자 중의 남자였다. 다양한 스펙타클을 찾아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던 할리우드에서 그의 복잡한 혈통이 만든 이국적인 외모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고, 60년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미남 배우가 되었다. 그는 소문난 애연가였으며, 폐암으로 투병하다 1985년 세상을 떠나기 전 금연을 촉구하는 공익 광고에 출연하여 인류에게 마지막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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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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