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계절 봄이다. 이번 전설의 미녀는 청춘의 상징이자, 우리들의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다.
아리헨티나의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혹은Olivia Osuna)는 13살 때 영국의 TV 드라마 <The Crunch>에 아역의 출연하면서 연기인생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이 데뷔작이다. 동서양의 모든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교집합을 이룬 올리비아 핫세의 비현실적인 미모에 전 세계가 발칼 뒤집어졌다. 원작에 충실한 대사가 일반인들에게 고문에 가까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전 세계 남자들의 첫 사랑이 되었고, 비디오가 없던 시절, 수위 높은 노출씬을 보고자 남자들은 극장을 찾고 또 찾았다. (게다가 그녀는 굉장한 글래머였다.) 그러나 로미오역의 레너드 위팅과 실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지구 남자들의 억장이 무너졌다.
아마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년은 <베니스의 죽음>(1971)에 나오는 악마 같은 미소년 비요른 안데르센일 것이다. 물론,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는 <로미오와 줄리엣>(1968)의 올리비아 핫세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든 프랑크 제페렐리 감독은 <베니스의 죽음>을 만든 루키노 비스콘티의 수제자다.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를 포착하는 능력은 스승의 덕이 크다. 또한 프랑크 제페렐리 감독은 평생 햄릿을 연구한 사람이다. 연극을 만들 때도 그랬지만, 영화감독이 되어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말괄량이 길들이기>, <햄릿>, <오델로> 등을 영화화했다. 이런 연출 능력이 총집결된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고, 올리비아 핫세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줄리엣,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월드스타가 되어 할리우드에 안정적으로 입성하는 보통의 유명배우들과는 좀 다른 필모그라피를 쌓아간다. 일단, <로미오와 줄리엣> 바로 다음 작품이 태국의 괴짜 감독 필립 싸롱이 만든 <그레이트 프라이데이>(Great Friday 혹은 H-Bomb. 1971)다. 액션스타인 크리스토퍼 밋첨까지 출연한 이 영화에서 올리비아 핫세는 초국적 악덕 기업 회장의 딸이자, CIA 첩보원의 여자친구로 나온다.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했던 <썸머타임 킬러>역시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크리스토퍼 밋첨이 악을 처단하려는 킬러, 올리비아 핫세가 악당의 딸로 나온다.
<잃어버린 지평선>(1973)은 전쟁에 휩싸인 세상을 등지고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유토피아 ‘샹그라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피 끓는 청춘 조지는 답답한 그곳을 벗어나려 하고, 그런 그를 말리는 지고지순한 소녀 마리아가 올리비아 핫세다. 엉터리 중국풍 의상을 입혀놔도, 올리비아 핫세의 미모는 완벽했다.
<블랙 크리스마스>(1974)는 캐나다산 청춘 슬래셔 영화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원조 격 되는 영화로서, 전화로 살인을 통고할 때마다 공포에 떠는 올리비아 핫세의 모습은 전 세계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그녀의 필모그라피중 많은 작품이 이런 식의 범죄 스릴러물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일살인사건>(1978)에서 소녀티를 벗어가는 올리비아 핫세를 만나볼 수 있다.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유람선 버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여기에서의 그녀는 트레이드 마크인 긴 생머리를 짧게 잘랐다.
<부활의 날>(1979)은 <배틀로얄>로 유명한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작품으로, 글렌포드, 로버트 본 등의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다. 오랜만에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한 수작이었다. 그녀는 특히 일본의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어설픈 일본말로 TV 화장품 모델을 했었고, 두 번째 결혼은 유명가수 후세 아키라와 하기도 했다. 후세 아키라와는 한 명의 자녀를 두었고, 10년 정도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다국적 아름다움으로 다국적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그녀의 특이한 필모그라피는 계속된다. <첩혈쌍웅>의 이수현이 주연한 국제 범죄물 <성정풍운>(1990)에도 출연했다. 익스트림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괴작으로 꼽히는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필사의 반란>(1982)은 가상의 독재정부가 즐기는 인간사냥 게임을 다룬 고어영화였다.
90년대 전후로 그녀는 <미망의 여인>(1987), <싸이코4>(1990), <피의 피에로>(1990), <매드맨>(1995) 등의 B급 공포영화를 전전한다. 특히 물이 빠질 대로 빠진 <싸이코>의 4편에 살인마 노먼 베이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야릇한 어머니로 출연한다. 노먼 베이츠의 어머니에 대한 서술은 원작 소설에도 굉장히 제안되어있지만, 이 영화의 대부분은 그녀의 요사스러움을 설명하는데 할애된다. <싸이코>를 원작으로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 <베이츠 모텔>에서 베라 파미가가 열연 중인 팜므파탈 엄마는 올리비아 핫세에서 시작됐다고 보시면 된다. 한 가지 더, 연쇄 살인마 노먼 베이츠 역은 <E.T>의 귀염둥이 헨리 토마스였다. 두 배우가 원래의 이미지를 깨는 파격적인 연기를 보았으나, 정작 영화는 <싸이코> 시리즈 중 최악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웠다.
비교적 근작으로는 <토르티야 헤븐>(2007), 차이나맨스 챈스(2008)등이 있지만, 역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의 올리비아 핫세는 B급 호러물의 희생양이거나 국제 범죄 영화의 인질이었다. 이런 그녀의 잡다한 이력을 안타까워하는 팬이 많다. 그런 팬들에게 <마더 테레사>(2003)의 테레사 수녀 역은 작은 위안이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이 식어가는 와중에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이어온 노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우리들의 영원한 줄리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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