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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미녀

원조 베이글녀의 위엄. 올리비아 핫세

by 꿀마요 2023. 5. 4.

청춘의 계절 봄이다. 이번 전설의 미녀는 청춘의 상징이자, 우리들의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다. 


아리헨티나의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혹은Olivia Osuna)는 13살 때 영국의 TV 드라마 <The Crunch>에 아역의 출연하면서 연기인생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이 데뷔작이다. 동서양의 모든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교집합을 이룬 올리비아 핫세의 비현실적인 미모에 전 세계가 발칼 뒤집어졌다. 원작에 충실한 대사가 일반인들에게 고문에 가까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전 세계 남자들의 첫 사랑이 되었고, 비디오가 없던 시절, 수위 높은 노출씬을 보고자 남자들은 극장을 찾고 또 찾았다. (게다가 그녀는 굉장한 글래머였다.) 그러나 로미오역의 레너드 위팅과 실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지구 남자들의 억장이 무너졌다.


아마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년은 <베니스의 죽음>(1971)에 나오는 악마 같은 미소년 비요른 안데르센일 것이다. 물론,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는 <로미오와 줄리엣>(1968)의 올리비아 핫세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든 프랑크 제페렐리 감독은 <베니스의 죽음>을 만든 루키노 비스콘티의 수제자다.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를 포착하는 능력은 스승의 덕이 크다. 또한 프랑크 제페렐리 감독은 평생 햄릿을 연구한 사람이다. 연극을 만들 때도 그랬지만, 영화감독이 되어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말괄량이 길들이기>, <햄릿>, <오델로> 등을 영화화했다. 이런 연출 능력이 총집결된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고, 올리비아 핫세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줄리엣,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월드스타가 되어 할리우드에 안정적으로 입성하는 보통의 유명배우들과는 좀 다른 필모그라피를 쌓아간다. 일단, <로미오와 줄리엣> 바로 다음 작품이 태국의 괴짜 감독 필립 싸롱이 만든 <그레이트 프라이데이>(Great Friday 혹은 H-Bomb. 1971)다. 액션스타인 크리스토퍼 밋첨까지 출연한 이 영화에서 올리비아 핫세는 초국적 악덕 기업 회장의 딸이자, CIA 첩보원의 여자친구로 나온다.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했던 <썸머타임 킬러>역시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크리스토퍼 밋첨이 악을 처단하려는 킬러, 올리비아 핫세가 악당의 딸로 나온다. 

  


<잃어버린 지평선>(1973)은 전쟁에 휩싸인 세상을 등지고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유토피아 ‘샹그라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피 끓는 청춘 조지는 답답한 그곳을 벗어나려 하고, 그런 그를 말리는 지고지순한 소녀 마리아가 올리비아 핫세다. 엉터리 중국풍 의상을 입혀놔도, 올리비아 핫세의 미모는 완벽했다. 



<블랙 크리스마스>(1974)는 캐나다산 청춘 슬래셔 영화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원조 격 되는 영화로서, 전화로 살인을 통고할 때마다 공포에 떠는 올리비아 핫세의 모습은 전 세계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그녀의 필모그라피중 많은 작품이 이런 식의 범죄 스릴러물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일살인사건>(1978)에서 소녀티를 벗어가는 올리비아 핫세를 만나볼 수 있다.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유람선 버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여기에서의 그녀는 트레이드 마크인 긴 생머리를 짧게 잘랐다. 

 

  

<부활의 날>(1979)은  <배틀로얄>로 유명한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작품으로, 글렌포드, 로버트 본 등의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다. 오랜만에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한 수작이었다. 그녀는 특히 일본의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어설픈 일본말로 TV 화장품 모델을 했었고, 두 번째 결혼은 유명가수 후세 아키라와 하기도 했다. 후세 아키라와는 한 명의 자녀를 두었고, 10년 정도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다국적 아름다움으로 다국적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그녀의 특이한 필모그라피는 계속된다. <첩혈쌍웅>의 이수현이 주연한 국제 범죄물 <성정풍운>(1990)에도 출연했다. 익스트림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괴작으로 꼽히는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필사의 반란>(1982)은 가상의 독재정부가 즐기는 인간사냥 게임을 다룬 고어영화였다. 
 


90년대 전후로 그녀는 <미망의 여인>(1987), <싸이코4>(1990), <피의 피에로>(1990), <매드맨>(1995) 등의 B급 공포영화를 전전한다. 특히 물이 빠질 대로 빠진 <싸이코>의 4편에 살인마 노먼 베이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야릇한 어머니로 출연한다. 노먼 베이츠의 어머니에 대한 서술은 원작 소설에도 굉장히 제안되어있지만, 이 영화의 대부분은 그녀의 요사스러움을 설명하는데 할애된다. <싸이코>를 원작으로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 <베이츠 모텔>에서 베라 파미가가 열연 중인 팜므파탈 엄마는 올리비아 핫세에서 시작됐다고 보시면 된다. 한 가지 더, 연쇄 살인마 노먼 베이츠 역은 <E.T>의 귀염둥이 헨리 토마스였다. 두 배우가 원래의 이미지를 깨는 파격적인 연기를 보았으나, 정작 영화는 <싸이코> 시리즈 중 최악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웠다. 

 


비교적 근작으로는 <토르티야 헤븐>(2007), 차이나맨스 챈스(2008)등이 있지만, 역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의 올리비아 핫세는 B급 호러물의 희생양이거나 국제 범죄 영화의 인질이었다. 이런 그녀의 잡다한 이력을 안타까워하는 팬이 많다. 그런 팬들에게 <마더 테레사>(2003)의 테레사 수녀 역은 작은 위안이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이 식어가는 와중에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이어온 노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우리들의 영원한 줄리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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