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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K 드라마 & 예능

우리가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 <미생>

by 꿀마요 2021. 11. 29.

2012년 다음에서 웹툰<미생>이 연재되었을 당시, 반응이 정말 대단했다. 전체 관람가였지만 유례없이 높은 연령대의 독자들이 모여들었고,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댓글 창은 터져나갔다. 

 

담담한 시선으로 직장생활의 사실적인 모습을 그린 <미생>은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겐 이렇다 할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했지만, 한 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애써 본 이들에겐 저마다의 사연을 토해내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이 있었다. 

 


2014년 드라마 <미생>이 tvn을 통해 방영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가 케이블 티비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와 안영이(강소라 분)의 로맨스를 추가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드라마 <미생>은 독자들이 '만찢'(만화를 찢고 나오다)이라는 인터넷 용어를 사용할 만큼 원작에 충실한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소 건조하게 그려내고 있음에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을 주연과 조연에 고루 포진시켰다. 주인공 장그래가 인턴 생활 초기에 왕따를 당하는 설정이나 한없이 그에게 적대적인 오과장(이성민 분)의 캐릭터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그려졌지만, 줄거리를 헤친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났다. 그렇게 <미생>은 시청률 1.7%를 시작으로 방영 3주 만에 4%를 돌파하며 “로맨스 라인이 없으면 드라마가 망한다.”라는 업계의 오랜 공식을 통쾌하게 깨트리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어리다면 어리지만 결코 아이는 아닌 스물여섯의 장그래는 평생을 바쳐 노력했던 바둑 기사의 꿈이 좌절되면서 사회에 던져진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지탱했던 과거의 노력을 송두리째 부정하며 '아직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더 잘해보겠다'고 다짐한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야.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는 선배의 말대로 굴욕과 무기력을 번갈아 견뎌낸다. 

 


장그래는 사회 경험이 전혀 없지만 바둑을 통해 어떠한 사안과 인물들을 차분히 바라보고 분석하는 통찰력을 훈련했고 대부분은 서툴지만 위기의 순간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며 살아남는다. 이런 부분은 분명한 판타지이지만, 그가 슈퍼히어로같이 극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간신히 고비를 넘기며 버텨내는 정도다. 시청자들은 매일매일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장그래가 회사에서 만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그가 속한 영업3팀은 업무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부분까지 완벽에 가까울 만큼 이상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 또한 현실에서 직장에 다녀본 사람들은 환상에 가까운 설정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이런 사람들마저도 일을 잘 해내는 것과 조직 생활을 무난히 버텨내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어찌 됐건 <미생>은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다. 드라마로 처음 접하는 이들은 숨을 죽이며 그 결말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참지 못하고 웹툰을 뒤지거나 단행본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미 만화로 만나봤던 이들은 그때의 진한 공감을 떠올리며 화면으로 살아난 캐릭터들의 호흡을 느껴보길 원한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미생>이라는 작품은 '직장인을 위로하는 최고의 판타지'이다.

이미지=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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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