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텍스트만으로는 단조로울 수 있는 게시글을 재미있고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짤방’이다. 영어권에서는 ‘인터넷 밈’, 간단히 ‘밈’이라고도 부르는데 특정한 상황이나 감정을 강렬하게 혹은 재미있게 표현해주는 이미지를 말한다. 이러한 ‘짤방’ 가운데 상당수가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데… 과연 어떤 작품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을까?
뱀파이어의 키스
니콜라스 케이지의 희번득 뜬 눈이 강렬한 이 ‘짤방’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상황을 묘사할 때 주로 등장한다. 이 ‘짤방’은 영어권 인터넷에서 더 널리 쓰이는데 같은 표정이지만 한국과는 용례가 조금 다르다. ‘You don’t say?’ 라는 문구를 얹어서 쓸 때가 많은데 너무 당연한 것을 물어올 때 “그걸 말이라고 하니?”하며 되묻는 느낌이다.
이 이미지의 출처는 1988년에 만들어진 영화 <뱀파이어의 키스>이다. 자신이 뱀파이어로 변해간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한 남자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다 파멸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실 사진이 주는 코믹한 느낌과는 달리 극 중에서 이 ‘짤방’은 주인공이 자신의 비서에게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주고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그야말로 ‘갑질’을 하는 상황에서 드러난 표정을 포착한 것이다.
나의 결혼 원정기
더 이상 기쁠 수 없을 정도로 환한 얼굴의 배우 정재영이 반갑게 뛰어오는 이 사진은 현생에 찌든 우리에게 택배의 은총이 내릴 때 신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짤방’이다. 이 ‘짤방’의 출처는 2005년작 <나의 결혼 원정기>다. 시골 노총각이 신부감을 구하러 우즈베키스탄에 갔다가 통역으로 만나게 된 탈북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다.
‘짤방’이 탄생한 장면은 영화의 결말에서 우즈벡에서 돌아온 후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했던 주인공 만택이 반가운 소식을 듣고 희망에 부풀어 달려가는 부분이다. 이 모습을 영화에서 확인하려면 딱 엔딩씬만 봐도 되지만, 노총각 홍만택의 한껏 부푼 마음에 공감하려면 처음부터 보는 것이 좋겠다. 매매혼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 지금 보면 다소 나이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정재영과 수애의 연기가 작은 흠결들은 눈감고 보게 만든다.
쿨 러닝
썰매 이름으로 탈룰라가 어떠냐고 하자 다같이 한껏 비웃다가 어머니 이름이라고 밝히자 즉시 태세전환해 예쁜 이름이라고 하며 수습하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한다. 온라인 상에서 대화 도중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부모를 욕되게 하고 이를 수습하려 애쓰는 상황을 일컬어 ‘탈룰라’라고 표현하게 되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짤방’이다.
이 ‘짤방’을 만들어낸 영화는 1993년작 <쿨 러닝>이다. 겨울이 없는 나라 자메이카 선수들이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경기에 참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후 만들어진 여러 스포츠 영화들의 원형이 된 작품이기도 한 만큼 이야기가 크게 새롭지는 않으나 보는 내내 주인공들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8마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을 표현해주는 이 ‘짤방’은 한국어 인터넷 유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것이다. 힙합 뮤지션 에미넴의 인생사가 모티브가 됨 영화 <8마일(2002)>이 바로 이 ‘짤방’의 원천이다. 사진 속 배우는 극 중에서 주인공의 친구인 솔 조지 역을 맡은 오마 벤슨 밀러인데, 지난 2011년 LA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그에게 한국에서의 유명세를 알려줬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해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장면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의 공식 스틸로 배포된 이미지임은 분명하지만 극 중 장면을 그대로 담은 것이 아니고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이 ‘짤방’이 너무 흥해서 영화 이야기가 묻힌다고 판단한 탓인지 2017년 재개봉 당시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 사진이 지워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셜록
“난 친구 같은 거 없어” 하는 대사가 인상적인 이 ‘짤방’은 영드 셜록의 시즌2 2화 <바스커빌가의사냥개들>의 한 장면을 캡쳐한 것이다. 다소 유치한 멘트가 마치 없던 대사를 나중에 합성한 것 같지만, 이는 실제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내용이 맞다. 극 중에서 수사 도중 감정적으로 동요한 셜록을 진정시키고자 존이 “내 말 좀 듣지 그래? 난 네 친구잖아.” 라고 하는데 셜록이 “난 친구 같은 거 없어(I don’t have friend’s’)”라며 차갑게 내뱉는 장면이다. 다음 날 마음이 상한 존에게 셜록은 어제 한 말이 진심이었다고 하며, “나한테 친구’들’은 없어. 딱 한 명 뿐이지” 하는 멘트로 존의 마음을 돌리려 하고 둘은 티격태격하며 화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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