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멕시코 출신 감독이 아카데미를 평정할까?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을 평정하고 있는 멕시코 출신 감독들. 올 해도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수상이 유력하다.
할리우드를 평정한 멕시코 감독들
영화 <로마>에 대한 반향이 심상치 않다. <로마>는 1970년대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클레오와 소피아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 12월 첫 주에 후보작 명단을 발표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감독상과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넷플릭스 투자작이라는 이유로 극장개봉 여부가 관심을 모았는데,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독립상영관 위주로 소규모 극장개봉을 하기로 결정했다. 북미에서 극장 개봉을 한 이상 아카데미 영화제에 후보로 오를 자격은 갖춘 셈이며, <치욕의 대지> 등 넷플릭스 작품이 아카데미 영화제 후보로 오른 선례가 있기 때문에 <로마>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혹은 감독상을 수상할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넷플릭스 작품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주목할 만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올해 감독상이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에게 돌아간다면 최근 6개년도 가운데 5번의 감독상을 멕시코 감독들이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2014년도에 <그래비티>로 알폰소 쿠아론이 멕시코 출신 감독으로서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했고, 2015년과 2016년도에는 <버드맨>과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감독이 이례적이게도 두 해 연속으로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2018년도 트로피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라라랜드>로 데미안 셔젤이 수상한 2017년을 제외하면 최근 5년간 4차례나 멕시코 감독들이 감독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쓰리 아미고스
이들이 할리우드로 건너온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멕시코에서 만들어낸 첫 장편영화로 각광을 받은 뒤 바로 다음 작품부터 미국에서 작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유사하다. 알폰소 쿠아론은 첫 장편인 <러브 앤 히스테리(1991)>가 토론토영화제 초청되어 할리우드 프로듀서들의 눈에 든 것을 계기로 LA로 이주했으며 1995년작인 <소공녀>를 통해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특수분장과 특수효과 전문가로서 활동해오던 기예르모 델 토로가 첫 영화 <크로노스>를 발판삼아 국경을 넘은 것은 몇 년 후다. 미라맥스로부터 제안을 받고 <미믹(1997)>을 연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와인스타인 형제들에게 너무 시달린 바람에 아메리칸 드림을 접고 멕시코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손을 잡고 스페인으로 건너 가 <악마의 등뼈(2001)>를 감독하는데 이 작품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선전하면서 다시금 미국으로 향해 <블레이드 2>, <헬보이> 등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감독이 시기적으로는 가장 늦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행자와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뒤늦게 영화를 시작해 첫 작품인 <아모레스 페로스>를 만든 것이 1999년이었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동시에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미국에서 연출한 첫 영화는 2003년작인 <21그램>으로 나오미 왓츠와 베네치오 델 토로를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부문에서 후보에 올리며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증명해 보였다.
이들 세 감독은 ‘쓰리 아미고스(스페인어로 ‘세 친구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을 정도로 실제로도 절친한 사이다. 알폰소 쿠아론이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판의 미로>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고, 서로의 이름을 영화 크레딧 중 스페셜 땡스 투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종내는 ‘차차차필름(Cha Cha Cha Films)’이라는 제작사를 함께 차려서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감독의 <비우티풀>을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제작해오고 있다.
멕시코 영화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감독들
이들이 일찌감치 미국으로 향한 데는 할리우드가 모든 영화인들이 꿈꾸는 ‘기회의 땅’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 멕시코 영화계가 그만큼 척박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 친구들’은 멕시코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서 힘을 모으고 있기도 한데,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차례로 만나 자국 영화 진흥에 대한 정책과 지원을 요청하고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출연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다.
감독들의 노력 덕분인지 2000년대 초반에는 자국영화가 한 해에 20편도 만들어지지 않을 정도로 산업 기반이 빈약했던 멕시코 영화계가 급속도로 성장해 2016년에 이르러서는 제작편수도 160편으로 늘어나고 멕시코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차지하는 매출 또한 3배 규모로 증가하게 되었다. (출처 : 2016 Statistical Yearbook of Mexican Cinema)
멕시코 출신 스태프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 또한 눈에 띈다.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손발을 맞춰 왔던 기술 스태프들을 데려가 그들에게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카데미 촬영상 3회 수상자인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영화학교 친구로 첫 작품부터 함께 해왔으며 미국으로 온 뒤 쿠아론, 이냐리투 등 멕시코 감독들 외에도 코엔 형제, 팀 버튼 등 최고의 감독들과 협업을 하게 되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감독과 데뷔작부터 손발을 맞춰 온 로드리고 프리에토 촬영감독이나 기예르모 델 토로 작품의 촬영을 맡아온 기예르모 나바로, 미술을 책임져온 유지니오 카바예로 역시 같은 사례다.
올해 오스카 감독상 트로피를 알폰소 쿠아론이 다시 한 번 손에 넣게 되건 그렇지 않건 중요한 점은 세 감독들이 앞으로도 자기 색깔이 분명한, 그러면서도 관객들에게 매번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를 어떻게 비틀어 보여줄지 기대해봐도 좋겠다. 차기작 소식이 아직 들려오지 않은 나머지 두 감독 역시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나타나건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그러나 매혹적인 작품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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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앤건 = 글: 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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