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신아리>는 <링> 짝퉁이 아니다.
<착신아리>는 얼핏 <링>의 아류작 같다. 긴 머리 여자 귀신의 관절꺾기 이외에도, <착신아리>에는 <링>과 흡사한 요소가 많다. 비디오와 휴대폰 등 통신 기기로 저주가 전달되고, 소중한 사람을 살리려면 원혼의 사연을 풀어야 한다는 점. 주인공이 남녀 콤비고, 십 대 소녀들은 그 ‘괴담’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이런 요소들이 <링>에서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착신아리>는 다른 호러 영화들과 많이 닮았다. 현재에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희생되고, 그 원인이 되는 귀신의 과거 사연을 재구성해 가는 구조 역시 오랫동안 많은 호러물이 써 온 수법이다. <착신아리>가 차별을 두는 것은 시작부터 휴대폰이라는 소재를 큰 비중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호러 장르의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에 현대적인 기기를 섞어 넣었다는 점 때문에 특히 <링>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착신아리>가 <링>의 아류작이라는 비판은 과하다. <착신아리>는 장르의 클리셰를 고민 없이 차용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상당히 영리하게 자신만의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일단 휴대폰이라는 소재는 <착신아리>의 개성이긴 해도 가장 뛰어난 요소는 아니다. 예컨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회로>는 컴퓨터 통신이라는 소재로 귀신 얘기를 하면서 관계의 단절과 현대인의 소외 같은 진지한 문제까지 다루는 데 비해, <착신아리>의 휴대폰은 소통의 본질에 관한 담론에는 별 기여를 하지 않는다. <착신아리>의 차별점은 바로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설정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생소한 정신병이 <착신아리>를 뛰어난 호러 영화로 만들어 준다.
‘허풍선이 남작’ 뮌하우젠은 도를 지나친 허풍으로 유명한 18세기 독일의 실존 인물로, 허언증이 있거나 꾀병을 부리는 사람들을 빗댈 때 그의 이름이 소환되곤 한다. 의학에서는 남의 동정과 관심을 얻고 싶어서, 꾀병을 부리거나 자해를 일삼는 이상 심리를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더 심각하고 끔찍한 문제다. 자기가 어떤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며 슬퍼하는 모습을 남들이 동정하고 칭찬하는 것을 원해서, 의사 표현 능력이 없는 반려동물이나 장애인, 심지어 자신의 영유아 자녀를 일부러 다치게 하거나, 먹여선 안 될 것을 먹여 아프게 만든다.
<착신아리>에선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으로 자식들을 학대해 온 여자의 악령이 등장한다. 남편 없이 혼자 두 딸을 기르던 그녀는 어린 자매를 자주 학대했다. 아이들은 압정을 삼키거나, 화상을 입거나, 눈에 농약이 들어가는 등의 끔찍한 사건을 겪는다. 세상에서 가장 헌신이어야 할 ‘친엄마’에서 시작된 공포는 관객의 감정을 쥐고 흔든다. 폭력과 사고, 신체 훼손 등 다양한 장치로도 쉽게 연결된다.
그러나 <착신아리>는 이렇게 효과적인 설정을 영화 중반까지 감춘다. 그사이에 감독은 거울 속으로 지나가는 귀신, 그림자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귀신, 포르말린 병에 담긴 태아의 표본들, 좀비가 되어 움직이는 시체같이 동서양 공포영화에서 자주 봤을법한 장르적 관습을 시침 뚝 떼고 신나게 나열한다. 한방을 숨겨 놓고 기다리는 공포영화계의 악동,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전략에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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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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