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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교실

자기 자신이 무서워지는 공포영화 '큐어'

by 그럽디다. 2021. 8. 4.
**본문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지 = 영화 < 큐어 >

 

 목과 가슴부위가 큰 엑스(X)자로 베인 시체가 계속 발견되자,
베테랑 형사 다카베(야쿠쇼 코지)가 수사를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이 살인 사건들을 저지른 범인이 모두 다르다. 순순히 죄를 인정한 범인들은 자기가 피해자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딱히 이유를 대지 못한다. 엽기적인 신체훼손이 나오지만 <큐어>는 일반적인 슬래셔 무비와 방향이 다르다. 그렇다고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리는 범죄 스릴러도 아니다. 살인 사건들의 배후인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 초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일찌감치 잡혀버린다. 그의 살인 교사 방법이 최면술이라는 역시 금방 밝혀진다. 의대에서 최면술을 연구했던 그는 어떤 계기로 심각한 기억 상실증에 걸렸고, 정신 이상자가 떠돌아다녔다. 반년 동안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에게 최면을 걸어 살인을 저지르게 했다. 그러나 경찰에 잡힌  마미야를 아무도 감히 취조하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누구든 암시에 걸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 영화 < 큐어 >

 

 

얼핏 데이빗 핀쳐의 <세븐> 이야기 구조가 닮은 부분이 많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차별 엽기 살인이 계속되고 범인이 금방 잡힌다. <세븐> (무명씨라는 , 케빈 스페이시) 스스로 손가락의 피부를 뜯어 지문을 없애고 익명을 자처했으며, <큐어> 마미야는 심각한 기억상실증 환자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범인은 이미 잡혔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기에, 형사와 범인 간의 심리 대결이 펼쳐진다. 형사는 범인의 계획에 휩쓸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지만, 영화는 범인의 편이고, 파국을 향해 차근차근 다가간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세븐>에서 도는 타락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종교를 근거로 사람들을 단죄했다면, <큐어>의 마미야는 죽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없다. 마미야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있다. 다시 말해 죽은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가 늘어나는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 영화 < 큐어 >

 

기억상실증으로 낯선 곳을 방황할 때 마미야를 도와주려는 사람의 친절에, 그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질문을 되돌렸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러는 당신은 누구지?” 상대는 성의껏 답하지만, 마미야는 방금 나눈 대화마저 잊고 마는 중증 기억상실증이다. 그래서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당신은 누구지?” “말했잖아요.” “그래? 그래서 당신은 누구지?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의미 없고 부조리한 대화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 질문이 깊어지면, 상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미지 = 영화 < 큐어 >

 

 

그렇게 우연히 마미야를 도와주려 했던 맘씨 좋은 초등학교 선생이 마미야의 암시에 걸려든다. 분홍색 네글리제를 입고 있던 여자가 아내인가?라는 마미야의 질문에 교사는봤어요?라며 발끈한다. 짧은 대화에서 교사는 평소 아내의 정숙하지 못한 모습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런 식으로 동료에게 사소한 불만을 품고 있던 경찰이, 남자들의 성희롱을 견뎌온 여의사가, “당신은 누구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마미야의 함정에 빠진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원인을 떠올린다. 너를 견뎌야 하는 , 나는 진정한 내가 되지 못해.이런 결론에 다다른 그들은 상대를 지우기 위해 커다란 엑스(X) 그리고 살인자가 된다. 영화는 이렇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존과 관계 사이의 공포를 건드리고 있다.

 

 

형사 다카베에게도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있다. 편의점에 갔다가 길을 잃기 일쑤고, 생고기를 저녁이라며 식탁에 내놓는다. 다카베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견디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 다카베가 드디어 마미야와 본격적인 대화를 나눈다. 마미야는 다카베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누구지?다카베는 이 저주를 이겨낼 있을까? 만약 당신이었다면, 이 저주를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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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