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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 또 보기

이민호, 김래원의 <강남 1970> 보러가기 전에 알아두어야 TMI

by 꿀마요 2021. 11. 30.


알고 보면 더 재밌고 모르고 봐도 상관없는 <강남 1970>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봤다. 
 
1. 문학과 영화
시인 유하는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이라는 시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을 비롯하여 <무림일기>,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등등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 석사를 마친 후, 자기의 시를 모티브로 한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를 장편 영화로 만들어 감독 데뷔했다. 소설가 이창동이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아 영화계에 입문한 것과 같은 해다. 두 번째 장편영화를 찍기까지는 8년이 걸렸지만 이후로 대략 3년에 한 편씩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강남 1970>은 그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2. 폭력 3부작
유하 감독의 영화들 가운데 2004년 작 <말죽거리 잔혹사>, 2006년 <비열한 거리>, 그리고 <강남 1970> 까지 세 편을 ‘거리 3부작’ 혹은 ‘폭력 3부작’이라고 부른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1978년의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군사 정권의 제도교육이 어떻게 폭력성을 키워내는가를 다뤘고, <비열한 거리>에서는 2000년대 중반의 철거깡패를 통해 돈이 어떻게 폭력성을 소비하는가를, <강남 1970>에서는 1970년대 초 정치깡패의 삶을 통해 권력이 폭력을 소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각각의 시대나 캐릭터는 다르지만 항상 시스템에 의해 좌절된 청년의 욕망이 제도의 바깥을 향하게 되고, 폭력으로 분출되며 방황하거나 소멸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3. 강남 시리즈
유하 감독은 1974년에 서울로 이사했을 때, 논밭과 아파트 건설 현장이 공존하던 강남의 당시 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 목가적인 소년 시절의 흔적은 사라지고 원주민이던 친구들은 더 남쪽 땅으로 쫓겨나다시피 떠났다. 그러고는 급작스럽게 기형적인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바뀌어버린 이 욕망의 땅에서 그는 많은 것을 보았다. 그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압구정동이 배경인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지금의 양재역 주변의 옛 모습을 그린 <말죽거리 잔혹사>, 그리고 개발 이전의 강남을 그린 <강남 1970>까지, 강남이라는 공간 자체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다.

 



4. 정치깡패
<강남 1970>의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얼떨결에 동네 건달 조직인 길수파의 ‘일’에 머릿수를 채워주기 위해 따라가게 된다. 그 일은 바로 야당의 전당대회를 방해하는 일이었고, 당시 정권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 벌인 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종대와 용기는 헤어지게 되지만, 둘 다 정치 깡패의 길을 걷게 된다.

실제로는 1976년 5월, 유명한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사건이 있었다. 강경한 김영삼 신민당 총재 대신 온건파인 이철승 국회의원을 신민당의 새 총재로 선출시키기 위해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은 조직폭력배 김태촌을 사주하여 신민당사를 공격하게 했다. 이 때 김영삼 총재는 다리가 부러지고, 김태촌은 대의원 명단을 태우고 직인을 훔쳐갔다. 그리고는 얼마 뒤에 열린 새 총재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도 또 김태촌과 부하들이 난입했다. 그들은 각목을 휘두르며 김영삼 측 대의원들의 출입을 강제로 막고, 이철승 의원을 대표로 선출하게 했다.

 



5. 강남 개발과 투기
영화에서 독재 정부는 조만간 한강 이남을 개발하여 서울을 확장 이전하려 한다. 정식으로 이 계획을 공개하기 전, 500년을 이어온 수도를 확장 이전하는 명분을 구상하는 단계인데, 다음 대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건달들을 앞세워 개발될 땅을 미리 사들인다. 영화에서 이 계획을 주도하는 이는 중앙정보부장과 여당의 두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각각 영등포와 명동의 조직폭력배들을 거느리고 있고, 수원에서 올라온 작은 조직의 말단이던 종대가 우연히 이 정보를 가지고 땅투기에 참여하면서 아전투구로 변한다.

 



6. 정부 주도의 강남 집중 개발
한강 이북의 서울이 북한의 사정권에 있다는 현실은 박정희 정권에게 강남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해주었다. 1963년에 강남 일대를 서울시에 편제하고, 66년 ‘대서울도시 기본계획’ 전시회를 시작으로 본격 강남 개발이 시작되었다. 1968년 김신조 사건과 미 해군 푸에블로함 납치사건으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 강남 개발은 더욱 빨라질 수 있었다.

불도저식으로 추진한 경부고속도로와 제3한강교(한남대교) 건설이 69년에 완성되었다. 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서초구의 주 시가지가 마련되었다. 1970년부터는 영동 제2지구 구획정리사업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사업에 의해 상공부와 산하 12개 단체가 이전 입지하게 되어 삼성동에 한국전력공사, 그 건너편에 한국무역진흥공사가 자리잡게 되었다. 또 이 사업 촉진을 위해 논현동에 영동 공무원 아파트 입지가 조성되고, 다음으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건설되게 된다.

1972년에는 서울 지하철 1~5호선의 노선 계획이 확정되는데, 원래 영등포부터 왕십리까지 계획되었던 2호선이 영등포부터 대림, 사당, 영동, 잠실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전 명문고로 불리던 고등학교들을 강남으로 이주시켰다. 명분은 도심 교통난 완화였고, 유인책으로는 저렴한 학교용지 불하, 각종 시설과 세제 지원책 등을 썼다. 1976년에는 경기고가, 1978년에는 휘문고가 이사하면서 이후 80년대에 숙명여고, 서울고, 중동고 등 거의 대부분의 명문고가 강남으로 이전해 지금의 8학군을 형성했다.

 



7. 넝마주이
종대와 용기는 아마도 전쟁 고아다. 둘은 고아원에서 만나 형제처럼 자라왔다. 가족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두 청년은 사회의 극빈층이었다. 수원 변두리의 개천가에서 고물을 주워 팔며 생활해야 했다. 이들은 ‘넝마주이’라고 불리웠다. 쓰레기 수거, 재활용 시스템이 전근대적이던 1970년대 이전,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 속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고물을 모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로, 리어카 대신 망태를 등에 지고 집게를 들고 다니며 고물을 수집했다. 노숙자나 거지들과는 달리 버젓한 거처가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8. 이민호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등의 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귀공자로 큰 인기를 누리는 이민호는 이 영화에서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은 검게 그을린 얼굴의 정치 깡패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꿨다. <강남 1970>은 이민호의 첫 영화 주연작인데, 일각에 잘못 알려진 것처럼 영화 데뷔작은 아니다. 구준표로 급부상하기 전,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 공공의 적 1-1>과 <울학교 이티>에서 주요 배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강철중>에서 맡은 하연이라는 역할은 학교 문제아들 중 한 명이었다가 이원술(정재영)의 조직에 ‘취직’하여 조직 폭력 범죄에 휘말리는 캐릭터였다.

9. 김래원

 


김래원은 데뷔 초부터 서글서글하고 선한 인상으로 로맨틱 코미디나 청춘 멜로물의 단골 남자 주인공이었다.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어린 신부>였다. 그런데 <어린 신부> 이후 김래원의 작품들은 이전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2005년 <미스터 소크라테스>, 2006년 <해바라기>와 함께 <강남 1970>의 용기 역할은 벌써 그의 세 번째 조직 폭력배 연기다. 일각에 또 잘못 알려진 것처럼 <강남 1970>이 그의 5년만의 영화 복귀작은 아니다. 2009년 <인사동 스캔들> 이후 <마이 리틀 히어로>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저예산 영화여서 홍보가 많이 안되었고 흥행 성적이 저조해 덜 알려졌을 뿐이다.

10. 개봉 이모저모
영화는 4개월 반에 걸쳐 촬영했으며 촬영 회차는 95회에 달했다. 후반부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묘지터 패싸움 장면은 150명이 동원되어 하루 12시간씩 꼬박 1주일간 찍어 완성한 장면이다. 개봉 전 <강남 블루스>라는 가제로 알려졌으나, 개봉을 11월로 예정하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이후 관객이 적은 11월보다 관객이 많이 드는 1월로 개봉일을 연기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핸디캡을 안고 있으면서도 1월 넷째 주 개봉작 중 가장 예매율이 높았으며, <허삼관>, <오늘의 연애> 등이 주춤해지면서 700개에 가까운 스크린을 확보해 개봉 첫날 15만명의 일일관객수를 기록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은 가장 많을 때 전국 966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었었고, 같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6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던 <아저씨>의 개봉일 관객수는 13만 766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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