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몰라도 상관없는, 블록버스터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들. 이번 영화는 <주피터 어센딩>이다.
1. 주피터 (밀라 쿠니스)
주피터는 로마 신화 최고 신의 이름이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에 해당한다. 또 목성의 영어식 명칭이기도 하다. 남성 신의 이름이지만 영화에선 여주인공 이름이다. 목성이 유난히 빛나던 날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지구에서 본 목성은 태양계의 행성 중 금성 다음으로 밝다. 특히 <주피터 어센딩>이 개봉한 2015년 2월 4일~6일은 지구가 태양과 목성 사이를 지나가는 시기다. 지구가 목성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때이기도 하고, 지구에서 보면 목성이 태양 빛을 정면으로 반사하기 때문에 목성이 가장 밝게 보이는 시기다. 초저녁 동쪽 하늘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다. SF 영화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공간적 배경이 목성 궤도이다. 태양으로부터 다섯 번째에 위치하는 행성이고, <주피터 어센딩>은 워쇼스키 남매가 연출한 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2. 인간과 지구
주피터는 가난한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길러졌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 외계에서 온 케인(채닝 테이텀)을 만난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원래 우주를 통치하는 외계 왕족의 공주이며 지구의 소유권을 상속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이 외계 왕족이 지구에 뿌린 일종의 ‘씨앗’으로부터 진화했다. 진화를 완벽하게 마치고 인간의 모습이 되면 ‘다 익은 것’이다. 외계인은 다 익은 인간을 ‘수확’하여 젊음의 약을 만드는 재료로 쓴다. 이 젊음의 약을 통해 외계 왕족은 영생을 누린다. 인간은 외계인의 ‘작물’이고, 지구는 그들의 텃밭인 셈이다.
3. <매트릭스>와의 비교 1
현재 인간의 운명이 알고 보니 다른 존재에게 필요한 어떤 ‘용도’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 설정의 <주피터 어센딩>은 워쇼스키 남매 최고의 걸작 <매트릭스> 시리즈와 닮았다. <매트릭스>에서의 인간은 기계들에 에너지를 공급해주기 위해 사육된다. 인간과 기계와의 전면전에서 불리해진 인간은, 기계들의 에너지원인 태양 빛을 차단하기 위해 대기를 불태워 먹구름으로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기계는 태양 대신 인간으로부터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인간들을 기르는 인큐베이터의 집합체는 거대한 발전기이며, 모피어스는 인간을 ‘건전지’에 비유했다.
4. <매트릭스>와의 비교 2
주피터는 타고난 운명을 모른 채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상상 이상의 세계에 대해 동경했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는 그녀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제거하려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전사가 찾아가 그녀를 돕고, 그녀의 운명과 우주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말살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고, 결국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이 이야기 구조는 <매트릭스> 시리즈와 같다. 매트릭스 안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던 네오는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해 고민해왔다. ‘기계’는 네오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요원들을 보낸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등이 나타나 네오를 돕고, 그의 운명과 세계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네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말살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한다.
5. 아브라삭스
자기들 소유의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작물을 기르는 외계 왕족 가문의 성은 아브라삭스(Abrasax)이다. 아브라삭스는 기원후 2세기 경 이집트의 철학자 바실리데스가 이끈 초기 영지주의 종교운동에 등장하는, 일종의 신이다.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에 관해 현재 남아있는 기록이 대부분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서술한 내용이기 때문에, 정확한 성격을 규정하기도 어렵고, 여러 가지 설이 동시에 연구되고 있다. 아브라삭스에 관해서만 얘기하자면, 아브라삭스는 이집트 신화의 신들 중 하나이며 또한 악마들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고, 기독교에서는 신과 사탄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두 면모를 한 몸에 갖춘 더 고차원적인 개념의 최고 신이라고도 한다. 또는 영적 세상과 물질적 세상을 모두 창조한 ‘최고 신’이 따로 존재하고, 아브라삭스는 그 신의 최고 대리 통치자라는 설도 있다. 아브라삭스라는 말이 이집트어에서 기원했는지, 그리스어에서 기원했는지, 히브리어에서 기원했는지 조차 분명치 않다. 어떤 설 혹은 개념으로 설명하든지 아브라삭스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는 달리 선과 악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거나, 악으로 규정할만한 신이며, 모든 영적, 물적 우주(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력을 가진 신이다.
6. 잡종 혹은 외계 유전공학
케인은 외계인 군인이었으며 사냥꾼이다. 그는 인간과 늑대의 DNA를 합쳐 만들어낸 전사로, 유전자적으로는 사람보다 개에 더 가깝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한다. 그는 아브라삭스 가문의 후손인 주피터를 찾기 위해 지구로 왔는데, 왕족 가문의 ‘유전자 냄새’를 추적해 왔다. 늑대(개)의 유전자를 조작해 후각을 극단적으로 발달시킨 것이다. 귀도 뾰족하고, 구강 구조도 다르게 보이기 위해 채닝 테이텀은 입안에 불편한 보형물을 끼우고 연기해야 했다. 그의 이름인 케인(CAINE)에 N 하나를 추가하면 ‘개 과 동물’을 통칭하는 CANINE이 된다고 보는 것은 억지스러울까? 또 다른 유전자 조작 전사인 스팅어(숀 빈)는 벌의 DNA를 가진 것이 특징이고, 이름 스팅어(STINGER)는 사전에 ‘침 있는 동물’이라고 풀이되어 있는 단어다.
7. 에디 레드메인
아브라삭스 가문의 후계자 세 형제 중 첫째인 발렘 아브라삭스는 장차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주피터를 없애고, 지구의 인간을 수확하려하는 악역이다. 발렘 역할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은 <레 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다. 마리우스는 프랑스 공화주의 혁명가들의 6월 봉기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가상의 결사체 ‘ABC의 친구들’의 멤버인데, 이 결사체 이름의 뜻이 ‘억압받는 자의 친구들’이니 참으로 얄궂은 캐스팅이다. 에디 레드메인은 얼마전 열린 72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스티븐 호킹 역으로 드라마부문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스티븐 호킹은 현대 이론 물리학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사람이고, 우주론과 양자 중력의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그래봤자 스티븐 호킹도 <주피터 어센딩>의 우주에서는 한낮 외계인의 ‘작물’에 지나지 않으니, 이 또한 얄궂은 캐스팅이다.
8. 밀라 쿠니스와 나탈리 포트만
주인공 주피터 역의 밀라 쿠니스는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오랬동안 맥컬리 컬킨의 연인이었으며, 2012년 봄부터 애쉬튼 커쳐와 사랑에 빠져 딸도 낳고 약혼도 했다. 엠마 스톤, 저스틴 팀버레이크, 제임스 프랑코, 나탈리 포트만과 절친이다. 나탈리 포트만과 밀라 쿠니스는 <블랙 스완>에 함께 출연했다. 나탈리 포트만은 워쇼스키 남매의 전작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캐스팅 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된 적이 있었고,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주피터 역할에 캐스팅 될 예정이었지만 또 무산되었다. 이후 주피터 역에 루니 마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도 거론되었다가 밀라 쿠니스로 결정되었다. 나탈리 포트만과 밀라 쿠니스는 <블랙 스완>에 함께 출연했었다.
9. 배두나와 테리 길리엄
배두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워쇼스키 남매와 함께 작업했었고, 미국 드라마 <센스8>에 이어 <주피터 어센딩>에서 세 번째로 함께했다. 그녀는 발렘 아브라삭스의 의뢰를 받아 주피터를 제거하기 위해 지구로 온 현상금 사냥꾼의 리더 ‘레이조’ 역할을 맡아 채닝 테이텀과 두 번 맞서 싸우며 짧지만 강렬한 장면을 소화했다. 레이조의 왼쪽 볼과 이마에 새긴 문신은 대한민국 국화인 무궁화 문양이라고 한다. <브라질>, <피셔 킹>, <트웰브 몽키스> 등의 걸작들을 연출한 명감독 테리 길리엄이 외계 왕국의 대신(장관)으로 출연하여 짧지만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 장면 자체가 테리 길리엄의 대표작 <브라질>에 대한 오마주다.
10. 워쇼스키 남매의 비주얼
<주피터 어센딩>은 워쇼스키 남매가 연출하는 첫 3D 영화이다. <매트릭스>에서의 720도 멀티앵글 촬영, 불렛타임 같은 획기적인 비주얼을 탄생시킨 워쇼스키 남매인 만큼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파격적이고 감각적인 영상 디자인 감각을 보여주었다. 이번 영화의 디자인도 컨셉 아트 단계에서부터 많은 SF 팬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고, 예고편도 기대감을 크게 높였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휴 베이트업은 <매트릭스> 시리즈부터 워쇼스키 남매와 꾸준히 작업한 파트너다. 촬영감독 존 톨은 <가을의 전설>과 <브레이브하트>로 2년 연속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고, <아이언맨3>, <라스트 사무라이> 등을 찍은 베테랑으로, 워쇼스키 남매와의 작업은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드라마 <센스8> 파일럿 에피소드에 이어 연속 세 작품째다. 이번 영화에서는 헬기가 와이어에 스턴트맨을 매달고 시카고 상공을 날아다니는 고난도 스턴트 장면을 찍기도 했는데, 이때 한 번에 거의 180도의 화각을 3D로 담아내기 위해 제작진은 PANOCAM이라는 장비를 개발해서 여섯 대의 카메라를 헬기에 장착했다. 원래 작년 6월 개봉 예정으로 제작에 들어갔지만, 제작사는 이 영화의 후반작업 퀄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려 아홉 달이나 시간을 더 투자하는 초 강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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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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