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시시콜콜: 알고봐야 더 재밌는 <베테랑>의 시시콜콜한 정보들
알고 보면 더 재밌고, 모르고 봐도 별 상관없는 <베테랑>의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모아봤다.
1. 개봉 미루기 전략
<베테랑>이 촬영을 마친 것은 작년 6월 30일이다. 원래 작년 하반기 개봉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편집본에서 드러난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서 CJ 배급 라인업 중 가장 확신을 할만한 작품으로 부상했다. 배급사 입장에서 이런 작품은 완성 시기에 맞춰 개봉하기보다 경쟁이 가장 치열할 때, 또는 시장이 가장 폭발적인 성수기에 승부수로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래서 처음 바뀐 개봉일이 올해 5월 14일 개봉 예정이었다. CJ 는 자사 라인업에서 최고 기대작을 7~8월 극장 성수기에 개봉시켜 왔다. 주로 제작비 100억 이상이 투입된 대작이다. 작년 <명량>이 그랬다. 그런데 올해 8월 개봉을 목표로 제작한 황정민 주연, 이석훈 감독의 <히말라야>가 후반 작업 일정상 겨울로 미뤄져야 했다. 대신, <베테랑>이 여름 시장의 대표주자로 승격되었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5: 로그 네이션>과 맞붙어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었다. <베테랑>에 대한 배급사의 신뢰가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2. ‘베테랑’이라는 단어
‘퇴역 군인’이라는 뜻의 라틴어 ‘베테라누스’ (veteranus) 에서 기원한 프랑스어가 어원이다. 국립 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는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 ‘숙련가’, ‘전문가’, ‘전문인’으로 순화” 라고 정의되어 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정의도 이와 비슷하다. 북미에서는 특히 참전 경험이 있는 퇴역 군인, 노병 등을 부를 때 쓴다. ‘베테랑’이라는 말은 기술적으로 숙련된 달인이라는 의미보다 관록이 돋보이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그리고 존경의 의미가 담긴 말이므로, 자신이 참전 용사가 아니라면, 자신을 ‘베테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 되기 쉽다.
3. 같은 제목 다른 영화 <베터런>
원제가 ‘The Veteran’인 2011년 영국 영화다. 아프간 파병을 다녀온 군인이 정보부와 마약 조직의 음모를 파헤친다는 흔해빠진 얘기로, 너무 못 만들어서 신기한 영화다. 제목의 한글 표기가 어색하다. 대개 베테랑이라고 표기하는 것을 굳이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하여 영국 영화라는 뉘앙스를 강조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더 베터런’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베터런>은 미안하지만 아무리 봐도 ‘better run’같다. 이 ‘베터 런’은 “(늦었으니 걷지 말고) 뛰는 편이 낫다”, “(맞서 싸우기보다) 달아나는 편이 낫다”라는 의미다. 액션도, 스릴러도 없는 느낌이다.
4. 영화 <베테랑> - 베테랑 감독 류승완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의 아홉 번째 장편 영화다. 1973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 마흔세 살인 류승완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 연출부 출신이다. 박찬욱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장편 영화는 열 작품이다. 62년생 임상수 감독은 여덟 편, 64년생 김지운 감독은 일곱 편의 장편 영화를 각각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과 최동훈 감독은 아직 다섯 작품밖에 만들지 않았다. 70년대 생 감독들 가운데 류승완 감독보다 장편 영화를 많이 만든 감독은 장진 감독(12편)뿐이다.
5. 베테랑 배우 황정민 1
주연배우 황정민의 필모그래피는 30편을 훌쩍 넘는다. 서른 살이 넘어서 빛을 본 대기만성형 배우지만, 영화 인생만 따지면 큰 굴곡 없이 꾸준함을 과시해 왔다. 2005년에는 <달콤한 인생>으로 남우 조연상을, <너는 내 운명>으로 남우 주연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스탭들이 차린 온갖 밥상에 숟가락을 다 얹으며 다니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관객 수가 집계된 장편영화만 놓고 봤을 때,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의 총 관객 수는 5,231만 명, 평균 271만 명이나 동원한 흥행 보증수표이기도 하다. <신세계>, <댄싱퀸> 등은 관객 4백만 명을 넘겼고, <국제시장>은 천4백만 명이 넘게 관람했다.
6. 베테랑 배우 황정민 2
황정민은 공무원을 유독 많이 연기했다. <쉬리>, <마지막 늑대>, <천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 <부당거래> 등에 이어 또 경찰관이다. <평양성>의 신라 왕도 공직자고 <댄싱 퀸>의 서울 시장 후보도 공직자(후보)다. 보험 사정원으로 출연한 <검은 집>과 사립 탐정으로 출연한 <그림자 살인>에서도 유사 수사관을 연기했으니, 공무원 연기의 베테랑 중 베테랑이라 할 수 있다.
7. 베테랑 유해진
유해진은 지금까지 40편 이상의 장편에 출연했다. 주로 조연으로만 출연하긴 하지만 감초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극의 중심이 되어 이끄는 공동 주연 역할이 많다. 어떤 캐릭터든 유해진 화 하여 관객에게 인상을 남기는 데는 독보적이다. 마스크도 강렬하지만 <타짜>의 고광렬이나 <공공의 적> '용만'의 혼을 빼는 입담은 유해진의 장기중의 장기다. 특히 산적이 바다로 가는 이야기였으나 산만한 이야기 진행으로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 날 뻔했던 <해적>이 관객 800만 명이나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100% 유해진의 공이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출연작의 관객 수를 합하면 7,958만 명, 평균 204만 명이나 된다. 류승완 감독과는 <부당거래>에 이어 두 번째 함께 했다.
8. 베테랑 오달수
오달수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 흥행 배우다. <괴물>의 목소리 출연까지 합하면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출연작이 5편이나 된다. <괴물>을 제외하고 위와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동원 관객 총 1억 1,340만 명, 평균 324만 명을 끌어모은 흥행 괴물이다. 오달수가 캐릭터에 불어넣는 친근감과 편안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50편 가까운 출연작 중 관객에게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악역을 연기한 적이 별로 없다. 있다면 <공모자들>과 <주먹이 운다>, <올드보이> 정도? 류승완 감독과는 <주먹이 운다>에 이어 두 번째 함께 했다.
9. <부당거래>와의 인연
<부당거래>의 최철기와 <베테랑>의 서도철은 둘 다 서울특별시 광역수사대 반장이다. 최철기는 광역수사대에서 ‘에이스’로 대접받는 유능한 형사였지만 실적과 승진을 위해 불법적인 일도 자행하며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이었다. 반면 <베테랑>의 베테랑 서도철은 법의 정의를 절대적으로 대변하려는 인물이다. 그는 아무리 돈이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을 수호하는 경찰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베테랑>에서 서도철이 처음 해결하는 중고차 밀매 사건은 류승완 감독이 <부당거래>를 준비하며 취재했던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애초에는 중고차 절도범을 잡는 형사 이야기를 <분노의 질주> 처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부당거래>에서 최철기의 상관이었던 천호진이 <베테랑>에서도 서도철의 상관으로 출연한다. 유해진은 친근하고 선한 참바다씨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지만 <부당거래>와 <베테랑>에서는 고급 양복을 입고 고층 빌딩을 활개 치고 다니는 악당을 연기했다.
10. 공공의 적
<베테랑>의 줄거리는 <공공의 적>을 떠오르게 한다. 서민을 대변하는 경찰과 재벌의 대결구도에서 경찰이 어렵게 승리해 악당을 끌어 내림으로서 대중의 박탈감이 해소되는 오락영화다. 다만 개인과 개인의 대결보다 계급 간의 대립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좀 더 날카롭게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는 회사 앞에서 1인시위 하는 트레일러 기사를 불러 폭행한다. 이 사건은 2010년 SK 그룹의 재벌 2세 최철원이 1인 시위하던 탱크로리 기사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 방망이로 폭행하고 맷값을 줬다는 사건을 환기한다. 또한 역시 재벌 2세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도 무관하지 않다. 조태오의 악행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대중은 재벌 3세의 땅콩회항 사건도 유사한 맥락으로 떠올릴 것이다.
대한민국의 계급 갈등은 영화 못지않게 첨예하다.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권력과 자본을 상대로 시위하는 현장들을 매일 보고 있다. 영화는 이 거대한 사회적 갈등을 조태오와 트레일러 기사의 1:1 폭행으로 압축하고,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경찰을 등장시킨다. 폭행당한 노동자와 비윤리적인 재벌 사이에서 <베테랑>의 주인공 경찰이 누구 편에서 싸울지는 뻔하다. <베테랑>의 감독과 배우들은 <부당거래>의 회색 경찰과는 다른, 약자의 편에서 성실하게 할 일을 하는 경찰상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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