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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명작<아메리칸 스나이퍼>

by 꿀마요 2021. 11. 29.


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몰라도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정보들. 이번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전쟁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다.

1. 크리스 카일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크리스 카일이라는 퇴역 네이비 씰 중사가 쓴 동명의 자서전이 원작이다. 크리스토퍼 스콧 카일(1974. 4. 8~ 2013. 2. 2)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적을 사살한 스나이퍼로 기록되어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1999년)에 입대했지만 아버지와 사냥하러 다니며 일찌감치 총기를 접한 덕에 사격술이 뛰어났다. 그는 이라크전에 네 차례 파병되었고, 10년간의 군 생활 동안 총 160명의 적을 사살했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255명이라고 한다). 그의 명성은 아군에게는 전설로 통했지만 반군들에게는 8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린 타도의 대상이었으며 ‘샤이탄 알 라마디 (라마디의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러한 전훈으로 그는 2개의 은성훈장, 5개의 동성훈장, 해군과 해병 근무 유공훈장 2개 등의 훈장과 기타 여러 표창을 받으며 미국의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2009년 전역 후에는 전쟁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전역 군인들을 위해 헌신하며 스나이퍼 훈련 교관, 보안업체 대표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2. 자서전


크리스 카일은 2012년 자서전을 펴냈다. 자서전의 원제는 '아메리칸 스나이퍼: 미국 군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였던 사나이의 자서전'이다. 미국에서만 15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20주간 1위를 기록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명성과 공적을 미화하기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안에서 살아야 했던 한 개인으로서의 상처와 고뇌, 전쟁터라는 지옥을 드나들어야만 했던 전우들에 대한 연민과 존경심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래는 본문에 실린 그의 말이다.

“전쟁을 대비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내 공포에 질려 있었다. 비록 공식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군은 이미 위험한 작전을 하고 있었다. (중략) … 나의 불안감은 여러 다른 형태로 표출되었다. 먼저 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눈가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자꾸 보였다. 불을 켜놓지 않고서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으며,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기 전까진 항상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혼자 있지 않고, 무엇인가 골몰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본문 p.100)



3. 스나이퍼


스나이퍼의 주요 임무를 요인 암살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는 바로 아군을 보호하는 일이다. 멀리서 부대의 주변 상황을 넓게 파악하면서도 효과적인 엄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라크에서 미군은 자살 폭탄 테러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스나이퍼였다. 

이라크에서 크리스 카일은 유니폼을 입은 적군보다 민간인이 섞여 있는 반군을 상대해야 했다. 때로는 소년이, 때로는 여성이 미군에게 폭탄을 안고 뛰어들기도 했다. 크리스 카일에게는 언제나 선택의 고뇌가 따랐다. 판단이 성급하면 민간인을 죽이게 된다. 망설이다가 그가 폭탄을 안고 투신하면 그 민간인은 역시 죽을 뿐 아니라, 아군에게 막대한 피해가 온다. 자서전에서 카일은 자신의 첫 저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저격수였고, 그 여성을 저격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단지 그녀가 우리 해병대원들을 길동무로 삼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본문 p.15) 카일은 단호했기에 수많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까지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4. PTSD


전쟁을 겪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스나이퍼들이 겪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각하다. 스나이퍼는 조준 단발 사격을 한다. 상대의 목숨을 빼앗겠다는 분명한 악의를 가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싸이코패스가 아닌 한 윤리적 혼란이 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거의 항상 전우들과 떨어진 채 혼자(또는 2인조로) 전투를 치러야 한다. 그 고립감이 스나이퍼를 더 힘들게 만든다. 무엇보다 스나이퍼는 엄청난 배율의 조준경으로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을 생생하게 바라보게 된다. 조준경 안에 보이는 적의 병사 역시 지쳐있다. 옆의 전우가 농담했는지 웃는다. 내 또래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면 저 녀석의 삶이 끝난다. 나의 전우보다도 가까이 느껴지는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딜레마가 스나이퍼의 숙명이다.

크리스 카일은 이러한 PTSD 증세로 시달리던 전역 군인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중에는 아직 25세였던 해병대 스나이퍼 출신 에디 루스도 있었다. 카일은 에디 루스의 치료에 도움을 주고자 그에게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는 직접 자신의 차에 루스를 태우고 집 근처에 있는 한 사격장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루스는 갑자기 발작하며 돌변했고, 그를 진정시키려던 카일을 포함, 두 사람을 사살했다.

당시 카일의 나이 만 39세였다. 그의 자서전이 영화화되기로 결정되고, 브래들리 쿠퍼가 주연을 맡기로 한 직후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미국의 전쟁영웅이었던 그의 장례식은 댈러스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 거행되었고, 텍사스 주립 묘지에 안장되었다. 장례식 당일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의 행렬이 300Km 이상이었다고 한다.

5. 잭 리쳐


톰 크루즈 주연 영화 <잭 리쳐>는 리 차일드의 소설 ‘잭 리처’ 시리즈 열일곱 편 중 2005년 출간된 아홉 번째 작품 ‘원 샷(One Shot)’을 영화화한 것으로, 퇴역 스나이퍼의 PTSD에 의한 묻지마 살인을 소재로 삼고 있다. 피츠버그 도심에서 6발의 총성과 함께 5명의 시민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현장의 모든 증거는 ‘제임스 바’라는 전직 파병 스나이퍼를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이라크전 참전 당시에도 똑같이 민간인에게 총격한 전력이 있었다. 당시 정치적인 문제로 사면받고 불명예제대를 했으며, PTSD에 대한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또 같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잭 리처는 훈련받은 전문 스나이퍼 제임스가 더 좋은 위치를 두고도 그런 어설픈 포인트에서 어설픈 흔적들을 증거로 남겨 가며 저격했을 리 없다는 의심을 바탕으로 다른 각도로 사건을 파헤친다. 그리고 사건의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된다.

6. 스나이퍼 영화


1993년 루이스 로사 감독, 톰 베린저, 빌리 제인 주연의 <스나이퍼>가 있다. 미국에서 1,900만 달러를 버는 데 그쳤지만 국내에서는 서울관객 10만 명으로 선전했다. "원 샷 원 킬"의 광고 카피로 유명한데 한글 포스터에 쓰인 문구는 "한 방에 한 놈씩"이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2차대전 소련 스나이퍼 영웅 바실리 자이체프에 관한 영화다. 장 자끄 아노 감독이 연출을, 주드 로가 주연을 맡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잭슨이라는 스나이퍼가 나온다. 도중에 독일군 스나이퍼와 잭슨의 대결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안톤 후쿠아 감독의 <더블 타겟>은 스티븐 헌터의 소설 '탄착점(Point of Impact)'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해병대 저격수 밥 리 스웨거 중사가 대통령 저격 미수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이에 반격하는 내용으로 마크 월버그가 주연을 맡았다. 그 밖에도 토니 스콧 감독의 <스파이 게임>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1차 걸프전 스나이퍼로 나오고, <레옹>이나 <킬 빌>, <첩혈쌍웅>과 같은 살인 청부업자에 관한 영화들에서 스나이퍼들이 나온다. 국내에는 <쉬리>에서 스나이퍼 스파이를 다룬 적이 있다.

7. 브래들리 쿠퍼


이 책의 영화화 판권을 산 것은 브래들리 쿠퍼였다. 판권을 살 무렵에는 크리스 프랫(<가디언 오브 갤럭시>)에게 주연을 맡길 예정이었지만 마음을 바꿔 자신이 크리스 카일 역을 맡기로 했다. 크리스 카일이 사망하기 불과 몇 주 전 두 사람은 전화로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 카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쿠퍼는 그의 명예와 유족을 위해 자신이 이 역할에 더욱 몰두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카일의 탄탄한 체격을 재현하기 위해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8개월간 하루 네 시간씩 운동했으며, 매일 8천 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해 체중을 18kg이나 불렸다. 텍사스 토박이인 카일의 말투까지 재현하기 위해 이틀에 한 번씩 카일과 관련된 영상을 보며 연습했고 보컬 코치까지 고용했다. 카일의 스나이퍼 파트너에게 스나이퍼 교육을 받았고, 네이비 씰 훈련까지 소화해냈다. 그의 노력 덕에 카일의 동료였던 네이비 씰 대원들은 브래들리 쿠퍼를 만났을 때 카일이 살아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8. 세 명의 감독


처음엔 데이빗 O. 러셀 감독이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보였으나 하차했다. 그는 1차 걸프전을 배경으로 <쓰리 킹즈>라는 걸작을 찍은 적이 있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에 이은 차기작이 될 뻔했다. 그는 당초 거대 로봇의 액션을 그리는 <로보포칼립스(Robopocalypse)>를 만들 예정이었지만 각본 수정으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차기작을 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예산 문제와 관련하여 스티븐 스필버그도 하차하고, 결국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가폰을 잡았다. 1995년에도 두 사람은 한 작품의 연출 자리를 주고받은 인연이 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원래 스필버그가 연출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하차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어받아 1억 8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9.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보수당인 공화당 지지자이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어떤 나라의 자칭 '보수'들과는 달리 명예와 책임을 강조하며 영화를 통해서는 정치적으로 열린 태도를 견지하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다룬 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뿐만 아니라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 등의 영화를 통해 미국의 기성세대가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에 관해 늘 고민해왔다. 그랬던 그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통해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부하다가 망가진 미국과, 그런 미국이 저질러온 폭력에 관해 어떤 시선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10. 용서받지 못한 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1993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남우 조연상 (진 해크만)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명작이다.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왕년의 명사수이자 무법자였지만 나이가 든 후 평범한 노인이 되어 그때의 죄책감과 허무함에 젖어 사는 윌리엄 머니로 등장한다. 서부극의 아이콘이자 총잡이의 대명사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본인이 장르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미국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 영화였다. 크리스 카일의 고뇌가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통해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 또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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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