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리트머스]
눈물도 한숨도 이유가 필요하다. <왕가네 식구들>
대략 20년 전에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시청률 61.1%를 찍으며 역대 최고 시청률 7위를 기록했는데 제목에서 풍기는 냄새 그대로 드라마 사상 최초로 남아선호사상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희애가 연기한 후남은 최수종이 연기한 쌍둥이 동생 귀남과 평생 비교당하며 엄마로부터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자란다. 정혜선이 연기한 후남 엄마는 귀남을 제외한 다른 딸들도 모두 구박하지만 유독 후남에게 친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고약하게 군다. 후남이 대학에 붙고 귀남이 떨어졌을 때는 “귀남이보다 먼저 나온 것부터 너는 평생 후남이 앞길 막을 년”이라고 악담을 퍼부어서 요즘처럼 악한 엄마/시엄마 캐릭터가 흔치 않던 그 시절에 시청자들로부터 엄청난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그런데 20년 전 후남 엄마가 다시 돌아온 거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기 막힌 엄마가 등장했다. 이 분은 며느리나 의붓딸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 흔해빠진 드라마 속 엄마들과의 비교를 거부한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계신 분. 바로 <왕가네 식구들>에서 수박과 호박을 차별하는 이앙금 여사다. 이 양반은 특이하게도 구시대적 남녀차별의 정서의 발로로 아들 딸을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자매를 차별한다. 연배로 봐서는 후남 엄마의 딸 벌 되는 분이신데, 대체 어떤 이유로 자기 자식을 이토록 차별 하는가, 혹시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받은 차별에 대한 악의적인 대물림인가, 저 정도라면 거의 둘째 딸에 대한 정신적 학대 수준인데 전문의의 도움은 아니더라도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에 한번 나가보시는 건 어떤가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은 인물이다.
극이 12회까지 진행되면서 설마 이 집안에 둘째 딸과 관련된 기구한 사연이 있는 것이겠지 아니라면 저럴 리가 없다며 기다려봤지만, 어릴 적 구타당한 기억까지 꺼내며 오열하는 호박에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시전하는 이앙금을 보며 이제는 채널을 과감히 돌려야할 시점이 온 건 아닌지 진심으로 울화통이 터지고 마는 것이다.
아마 문영남작가는 호박을 극한의 상황 속에 내던지는 것으로 이 불합리한 연속극의 주된 흐름을 잡고 싶은가 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막장 친엄마의 괴롭힘, 무능력한 주제에 바람까지 피우려는 속터지는 남편, 그 틈에서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돌보며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착하고 안쓰러운 여주인공의 그림을 그리고 싶으신가 본데, 이보세요 작가님. 아무리 과장된 인물과 자극적인 설정을 MSG처럼 첨가해서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고 해도 시청자들 또한 어느 정도 명분이 있어야 같이 웃고 우는 것이 아닌가요.
문영남작가는 흔히 임성한작가와의 비교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다. 공감이 어려운 설정으로 승부를 보기엔 임성한작가의 벽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분은 코미디프로를 보며 웃다 죽는 캐릭터,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중년 남자를 이미 공중파로 전국에 쏴버린 분이 아닌가. 백수건달을 좋아하는 예쁘고 돈 많은 아가씨랄지, 비어있는 명품유모차 끌고 다니는 미스코리아 정도의 설정으로는 대적할 수 없음을 빨리 깨달으셔야 한다. 언제부턴가 생겨난 라이벌 구도에 압박감은 있겠지만, 그럴수록 과감히 시청자의견에 귀를 기울이셔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악독하리만큼 제 자식에게 모진 이앙금에게도, 친엄마에게 구박당하며 남편에겐 눈치도 천치인 답답이 호박에게도 납득할만한 사연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만 시청자들도 돌아앉으려던 마음을 되돌릴 것이다. 원래 갈매기 우는
사연 하나 없는 집안은 없으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 KBS
글쓴이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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