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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영화 속 패션 '청춘의 불타는 티셔츠'

by 꿀마요 2023. 5. 4.

가장 흔하고도 가장 획기적인 패션 티셔츠. 영화 속 티셔츠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이야기해보자. 

 

가장 획기적인 패션 아이템이 무엇일까? 어릴적 보았던 과학 잡지에 나오는 미래적인전신타이즈복장이나 제5원소의사이버복장이 아직 일상화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금까지 인류사에 등장한 가장 획기적인 패션 아이템은 아마도 티쳐츠이지 않을까싶다. ‘? 세상에서 가장 흔한 패션 아이템인 티셔츠가 획기적이라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차근차근 설명 해 보겠다.

 

원래 유럽인들은 수세기동안 거의 몸을 씻지 않았다고 한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규칙적으로 몸을 씻는 고대의 습관이 부활한 것은 18세기 말엽이나 되어서였다. 그 전까지는 오로지 속옷을몸의 때를 겉옷에 뭍지 않도록 막아주는역할로만 사용했고, 속옷을 보인다는 것은 그저 특수한 상황(간통죄를 저지른 여성을 재판장에 세울때나 적의 포로들에게 굴욕감을 줄때)에서만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쯤되면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티셔츠는 원래 속옷이었다.

 

티셔츠를 처음으로 착용한 사람들은 19세기의 광부들과 부두 노동자들이었다. 당시에는 위아래가 붙은 모직 내의가 보편적이었는데(유니언 수트라고 부른다), 이게 막상 입어보면 엄청나게 따끔거려서 작업하는 도중 활동하기도 불편하고 여러모로 위생상 좋지 못 했다. 그러던 중 면으로 짠 소매가 짧은 속셔츠가 등장하자 인부들은 가볍게 입을 수 있다며 크게 환영했다. 이 속셔츠는 T자와 비슷하게 생겼었고, 자연스레 이것은 티셔츠라 불리우게 되었다. 티셔츠는 이후 미국-스페인 전쟁동안 해군 병사들에 의해 널리 애용되었고, 더럽고 고달픈 참호전이 지속된 1차세계대전 동안 병사들의 필수품이 되었으며,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전간기(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사이의 기간)동안에 발전하여 신사들의 내의가 되었다.

 

“ 서부전선 이상없다 ” 에 등장하는 독일 군인들 . 군복 안으로 티셔츠가 보인다

티셔츠는 지속적으로 운동복, 작업복등으로 사랑받음과 동시에 신사들의 내의로 애용되다가, 클라크 게이블이 주연한어느날 밤에 생긴일”(1934년작)의 엄청난 히트 이후 잠시 인기가 주춤하게 된다. 그 이유는 클라크 게이블이 셔츠를 확 젖히는 유명한 장면에서 셔츠 안에 티셔츠를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맨살에 셔츠를 입는것이 더 섹시하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 신사들은 한동안 티셔츠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티셔츠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전후 세대를 주름잡은 비트닉(Beatnik)과 티니바퍼(Teenybopper)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티셔츠는 그 자체로 이제 겉옷의 기능을 하게 된다. (비트닉: 1950년대에 발흥한, 일군의 젊은 문학가들로부터 시작한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자유롭고 반항적인 젊은이들/ 티니바퍼 : 1950년대에 발생한 서브컬쳐로, 팝음악과 로큰롤에 열광하는 10대 소녀)

 당시에는 티셔츠를 겉옷으로 이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획기적이고, 저속했다. 치기어린 젊은 놈들이나 할 짓으로 여겨졌다. 이제까지 속옷으로 사용되던 옷을 쟈켓 안에 하나만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허름한 차림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청춘영화에 잘 담겨있다. 다시말해, “청춘또는젊은이의 패션으로 여겨지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 바로 이 시기에 정착된 것이다.

1955 년작 “ 블랙보드 정글 ”( 한국명 “ 폭력교실 ”) 에 출연한 시드니 포이티에 ( 오른쪽 ) 가 티셔츠를 입고 있다 .
1953 년작 “ 와일드 원 ” 에 등장한 말론 브란도 . 이 패션 이후로 전세계의 반항아들은 가죽재킷에 티셔츠를 착용하게 된다
1951 년작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에 등장한 말론 브란도 ( 왼쪽 ). 이 영화 이후 티셔츠는 젊은이들의 패션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티셔츠는 20세기를 거치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얻게 된다. 바로 프로파간다로서의 기능을 지닌 상징물로서의 의미다. 나염과 실크스크린 기술이 발달하면서 각양각색의 무늬와 구호, 메세지를 담은 티셔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티셔츠는 젊음의 상징을 넘어서 기존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도구로 작용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1960년대의 히피 시대에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티셔츠가 범람하면서시위 아닌 시위를 가능케 했으며, 또한 화려한 나염 티셔츠가 발달하여싸이키델릭한 패션을 정착시킨 것도 이 즈음이다. 1970년대 펑크의 시대에는 무시무시하게도 나치(!)의 갈고리 십자가 문양이나 온갖 외설적이고 저속한 문구가 적힌 티셔츠가 등장했는데, 청춘들은 경찰과 관계 당국에게 자유의 한계를 시험하고자 도발할 목적으로 입었다. 이후의 시대에는 헤비메탈이나 영화 팬들이 각자의 팬심과 동질감을 획득하기 위해 티셔츠를 착용했다.

1969 년 우드스탁에서 공연 중인 죠 카커. 화려한 나염 티셔츠를 입고 있다.
데렉 자만의 “ 주빌리 ”(1977) 에 등장한 리틀 넬이 펑크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God save the Queen” 티셔츠를 입고 있다
웨인스 월드 (1992) 에 출연한 다나 칼비 ( 왼쪽 ) 이 하드록 밴드 에어로 스미스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

 

물론 이제는 일상복으로 기능하게 된 티셔츠는 더이상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티셔츠는 입기에도 좋고 입어서 보기에도 좋은 아이템이다. 그리고 전복적인 구호나 괴팍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노인을 생각하기란 아직도, 특히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여담이지만 “Be the reds”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노인들은 한국에서 종종 발견되긴 하는데, 일부 외국인들은 한국에 공산당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곤 했다고 한다). 무더위가 엄습하는 이 시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을 담아낸 티셔츠를 입고 편안한 시간을 만끽해보자. 없으면 DIY(Do-It-Yourself),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젊고, 좋은것 아니겠는가.

 

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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